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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의 작은 사치

두피에게 자유를 달라

샴푸와 작별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두피에게 자유를 달라

두피에게 자유를 달라

단옷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전통도 노푸의 일환이다.

미국 유명 여배우 제시카 심프슨과 귀네스 팰트로, 가수 아델, 유명 남자 배우 로버트 패틴슨과 조니 뎁, 그리고 영국 해리 왕자까지. 이 멋지고 매력적인 셀러브리티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노푸족이라는 것이다.

노푸(No poo)는 ‘no shampoo’의 줄임말로 샴푸 없이 물로만 머리를 헹궈내는 것을 뜻한다. 미지근한 물로 두피를 10여 분 이상 마사지하고 찬바람에 바짝 말려주는 게 전부지만, 탈모 방지에 효과적이고 두피를 비롯한 모발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지면서 노푸족이 늘고 있다. 물론 탈모 방지는 아직 검증된 바 없다. 머리숱이 살짝 아쉬운 해리 왕자가 노푸를 한다 해도, 탈모 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여전히 미약하다. 노푸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화학성분에 지친 두피를 달래주면 자연스럽게 최상의 기능을 회복해 두피가 건강해진다고 주장한다.

반면 샴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잘 헹궈내지 않는 게 문제라며 샴푸가 두피를 해친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나아가 노푸가 오히려 두피에 해롭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두피가 상대적으로 지성인 사람에겐 노푸가 적절한 방법이 아닐 수 있다. 물만으로는 두피에서 생기는 기름기를 다 씻어내지 못해 두피가 상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걸 샴푸업계의 방어 논리이자 홍보 수단으로 보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달라지는 샴푸 트렌드

노푸족이 늘어날수록 샴푸나 린스 등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는 손해를 본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샴푸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미 친환경 비누와 천연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노푸도 이런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결국 기존 기업들에겐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들이 친환경 샴푸를 직접 제조, 판매해 새로운 기회를 마련하기도 한다. 화학성분을 빼고 단기간 냉장 유통하는 샴푸 등 노푸족을 위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다. 노푸를 지향하는 헤어클리닉 서비스도 등장할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에 따라 비즈니스는 계속 변신하고 진화하는 법이니까.



단옷날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전통도 노푸의 일환이다. 샴푸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두가 노푸를 한 셈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남을 위한 일보다 자신을 위한 일에 더 적극적이게 마련이다. 환경이 아닌 자신을 위해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환경에도 좋다는 게 노푸의 매력이다. 노푸는 슬로워싱(느리게 씻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샴푸를 이용해 좀 더 빠르고 편하게 머리를 감아왔다면, 이제 샴푸 없이 물만으로 느리고 불편하게 머리 감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5분 걸릴 일이 30분이 걸릴 수도 있다.

자연과 가깝고, 좀 느려도 여유 있는 삶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는데 노푸도 그런 흐름 가운데 하나다. 노푸는 샴푸와 린스는 포기하지만, 그 대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건강을 위한, 그리고 환경을 위한 느리지만 불편한 일상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건 일상의 새로운 풍요가 될 수 있다. 하나를 버리면 하나를 얻는다. 샴푸와의 작별로 우리는 뭔가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

두피에게 자유를 달라
노푸를 시도했다 포기한 사람도 적잖다. 샴푸 거품이 주는 개운한 느낌이 없고 머리를 감은 뒤에도 찝찝한 기분이 들어 포기하게 된다. 오랜 기간 샴푸 거품에 익숙해졌던 이가 하루아침에 그걸 버리기란 쉽지 않다. 대개 2~6주 적응기가 필요하다는데, 노푸족은 물로만 샴푸했을 때의 찝찝함을 해소하고자 베이킹소다를 물에 한두 숟가락 희석한 뒤 그것으로 샴푸하듯 마사지를 해 먼지, 기름기, 냄새를 없앤다. 단, 베이킹소다가 두피를 건조하게 할 수도 있으므로 조금만 쓰고 잘 헹궈야 한다. 뻣뻣해진 머리에는 린스 대신 식초를 물에 희석해 쓰면 부드러워지는데, 식초 냄새가 불편하다면 충분히 헹구면 된다. 식초 대신 레몬즙이나 구연산을 사용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의 두피가 다 같지 않은 만큼 노푸가 모두에게 다 맞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따로 돈이 드는 게 아니니 부담 없이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노푸족으로 거듭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적당한 불편함이 주는 가치나 환경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도 가끔 노푸를 한다. 주로 일 없이 노는 날에 한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남에게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날이 적기다. 물론 머릿결은 샴푸를 썼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뻣뻣하고 스타일도 살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노푸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가끔 노푸로 샴푸 사용량을 조금이라도 줄인다는 데 의미를 둔다. 휴가철 또는 일이 없는 시기에는 일부러 머리를 감지 않거나 면도를 하지 않기도 한다. 샴푸나 보디워시 등에 대한 내 나름의 소심한 단기 이별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머리 감는 게 대수라고? 한 번 도전해봐

두피에게 자유를 달라
노푸가 전 세계적 이슈가 된 것은 전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셀러브리티 덕분이다. 누군가는 “머리 감는 게 뭐 대수냐”고 반문할 거다. 하지만 현대인은 하루에 최소 한 번씩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다. 당연하게 써온 샴푸를 버리겠다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현대인의 소비 태도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노푸는 간과해서는 안 될 이슈다.

전지현, 고소영, 이효리, 김사랑, 한채영, 성유리, 문채원, 그리고 한때 예뻤던 미국 여배우 멕 라이언까지. 이들은 모두 샴푸 회사의 광고모델이었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미인은 샴푸 광고모델의 정석이었는데, 마치 샴푸를 써야 저렇게 된다는 강력한 유혹처럼 느껴진다. 두피 케어나 비듬 방지 등 각종 기능적 특성이 강조된 샴푸는 그걸 사는 것만으로도 맘을 놓게 만들었다. 화학물질이 두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샴푸 성분이 물에 씻겨 내려가면서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노푸는 그런 생활습관에 균열을 일으킨다.

노푸가 탈모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피 건강과 샴푸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는 적잖이 기여할 수 있다. 노푸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다. 빠른 것, 편리한 것이 좋은 이에겐 여전히 샴푸만한 게 없겠지만, 적당한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느리지만 자신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픈 사람에겐 노푸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주간동아 2015.03.23 980호 (p70~71)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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