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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인디라는 소우주의 빅뱅

1995년 4월 5일을 기억하며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인디라는 소우주의 빅뱅

인디라는 소우주의 빅뱅

서울 홍대 앞 클럽문화를 소개한 ‘동아일보’ 1998년 10월 30일자 지면.

올해는 ‘인디(Indie) 20주년’이다. 누군가 태어난 날도 아니고 제품의 생산 시작일도 아니다. 문화 현상이란 사후에 관찰되고 명명되는 법. 뚜렷한 시작점을 잡기 애매하다. 하지만 한국 인디는 예외다. 이전의 언더그라운드와 명확히 구분되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 4월 5일. 아직 식목일이 휴일이었을 때다. 그해 식목일은 특별했다. 한 해 전 여름 서울 홍대 앞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펑크 전문클럽 드럭에서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다. 너바나, 그린데이, 섹스 피스톨즈, 클래시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던 드럭은 그전까지는 술집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루저’들이 서로의 취향을 나누며 술을 마시는 곳이었다.

1994년 4월 5일 스스로의 머리에 방아쇠를 담긴 코베인은 그들 모두의 우상이었다. 사망 1주기를 앞두고 누군가가 낸 아이디어에 꽂혀 말 그대로 뚝딱뚝딱 공연을 만들었다. 싸구려 앰프와 드럼을 갖다 놓고 역시 싸구려 악기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들은 ‘드럭 밴드’라는 이름으로 너바나의 노래들을 카피했다. 이때 보컬과 기타를 맡았던 이가 이우성이었다. 서울대생이었지만 학교보다 드럭에서 노는 것에 열중하던 스물네 살 젊은이였다. 그리고 이 공연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 순간이 됐다.

그날 이전, 한국 록계에는 오랜 불문율이 있었다. 헤비메탈이 로커 지망생의 이상이었던 시대다. 악기를 다룬다고 아무나 공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메탈리카, 세풀투라를 카피하려면 고난도 연주력이 필요했다. 독학으로 그런 기량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이 흔할 리 없으니 기존 연주자에게 레슨을 받아야 했다. 노래를 만들기보다 기술을 쌓는 데 시간이 투자된다.

공연에서도 자작곡보다 카피, 그것도 오리지널에 근접한 카피가 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어느 밴드의 노래가 좋다’보다 ‘어느 밴드가 메탈리카를 똑같이 카피한다’가 입소문의 촉매제였다. 1990년대 헤비메탈 시대를 견인했던 크래쉬가 처음 이름을 알렸던 배경 역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세풀투라를 기가 막히게 카피한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우성을 비롯한 ‘드럭 죽돌이’들이 모여 급조한 드럭 밴드는 그런 불문율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아니, 알기나 했을지 의문이다. 드럭 밴드에게 필요했던 연주 기술은 너바나의 노래에 쓰이는 코드 몇 개가 전부였다.

모인 이들 또한 속주 기타와 고음역 샤우팅을 감상하러 온 게 아니었다. 1980년대와는 다른, 90년대의 감각을 원했다. 그것은 너바나, 그린데이, 그리고 뒤늦게 소개된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시의 감성이었다. 테크닉이 아닌 에너지였고, 재현이 아닌 표현이었다. 그리고 태도였다. 펑크의 이데올로기였던 ‘너 스스로 해라(Do It Yourself)’와 ‘다 엎어버려(Fuck Shit Up)’ 말이다.

그 이데올로기는 공연 마지막에 구현됐다. 드럭 밴드는 기타와 드럼과 앰프를 부쉈다. 관객들의 열광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헤비메탈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카타르시스였다. 서양 라이브 실황 비디오에서나 보던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그날, 카메라와 마이크는 담아낼 수 없는 에너지가 생성됐다. 하루만 불타고 사라진 게 아니었다. 드럭 밴드는 그 후 매주 공연을 가졌다.

1994년 4월 5일. 천지창조의 시작점에 있었을 법한 카오스 에너지가 점화된 날이었다. 빅뱅을 기점으로 우주가 만들어졌듯, 이날 공연을 기점으로 홍대 앞의 음악 술집들은 공연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음악에 목말랐던 이들이 하나 둘씩 기타를 들고 홍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인디라는 소우주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주간동아 2015.03.23 980호 (p78~78)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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