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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취업, 고시가 되다 03

영어 공부 헛발질에 찌드는 청춘

취업 필수 코스 공인영어시험 준비…토익점수 업무에 큰 도움 안 돼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영어 공부 헛발질에 찌드는 청춘

영어 공부 헛발질에 찌드는 청춘

취업준비생들의 스펙이 상향평준화되며 대학에서도 새내기때부터 공인영어시험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1 ‘토익(TOEIC)이 낮아도 토스(TOEIC Speaking)가 높으면 괜찮을까요?’

2월 25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취업카페 ‘닥치고 취업&스펙’에 올라온 질문이다. 공인영어시험인 토익이 800점이 안 되는데, 토익스피킹 레벨이 7(만점)이면 괜찮으냐는 질문에 ‘토스가 7이면 토익은 더 올려야 할 것 같다’ ‘요즘 토스를 많이 보긴 하지만 토익이 기본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2 대학 3학년인 김정화(22) 씨는 최근 토익을 공부하던 중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 공인영어시험 점수로 토익이 아닌 토익스피킹, 오픽(OPIC) 점수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씨는 “이 기업에 붙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토익을 공부할 시간에 토스까지 파야 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인터넷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10명 중 9명(89.7%)은 토익 등 공인어학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위해 한 달 평균 33만 원을 썼다. SK그룹이 올해 공개채용(공채)부터 입사지원서에서 증명사진, 수상 경력 외에도 공인영어시험 성적 입력란을 삭제해 취업시장에 ‘탈(脫)스펙’ 바람을 불러일으켰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공·사기업은 지원자의 스펙 가운데 하나인 공인영어시험 성적에 따라 가산점을 주거나 지원 자격 제한을 두고 있다. CJ그룹은 전 계열사 및 직무에 오픽 IL, 토익스피킹 110점(레벨 5) 이상으로 동일한 어학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계열사별로 입사지원 시 요구하는 최소 어학 기준이 오픽 IL~IM, 토익스피킹 레벨 5~7로 각각 다르다. 취업준비생이 탈스펙 바람에도 공인영어시험 점수 만들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응시료 비싸고 채점 기준은 모호



대표적인 공인영어시험인 토익은 미국 대학유학자격시험인 토플(TOEFL), 미국 대학원 입학공통시험 GRE 등 미국 공인시험의 80%를 관장하는 비영리단체 ETS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전 세계 직장인의 영어통용력을 국제기준으로 평가하고자 1979년 만든 최초의 국제 공인 비즈니스 영어시험이다. 국내에는 국제교류진흥회가 토플 및 토익 주관사인 미국 ETS와 계약을 체결하고 1983년 1년 6개월간 시장조사 끝에 상륙했다. 사법시험, 군법무관시험,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국가 중견공무원 선발 외교관후보자시험의 영어시험은 2004년부터 토익 등 민간 영어시험으로 대체됐고, 5급 공채(행정·기술) 입법시험은 2005년부터 대체된 상태다. 변리사시험, 공인회계사시험, 세무사시험 등의 영어과목도 토익으로 바뀌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등록된 전국 4년제 대학 202곳 가운데 지난해까지 졸업인증제에서 토익을 활용한 대학은 총 99개교였다. 대학 자체 졸업 영어시험, 졸업논문으로도 대체 활용되며, 조기졸업과 졸업시험 면제 기준으로도 쓰이고 있다.

졸업 전후로 취업을 생각하는 학생은 보통 대학 3학년 때부터 토익을 준비한다. 토익점수의 유효기간이 2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청년실업이 장기화하면서 인턴십, 해외 봉사 경력 같은 또 다른 스펙을 쌓기 위해서도 공인영어시험 성적이 필요해진 것. 이 때문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자마자 토익학원에 등록하거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안내를 받고 공강시간에 별도의 토익 강의를 듣는 학생도 부지기수다. 남학생에게는 입대라는 복병이 있지만, 기왕 공부할 거면 카투사까지 지원할 요량으로 1학년 때부터 영어 공부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대학 도서관이나 어학원에서 두꺼운 토익책에 얼굴을 파묻은 앳된 얼굴을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공인영어시험의 높은 응시료도 대학생에게는 큰 부담이다.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은 한 해 평균 토익시험에 9회 응시, 연간 59만 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이 인정하는 공인영어시험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주로 선호되는 건 토익, 토플, 텝스(TEPS)와 영어 말하기 시험인 토익스피킹, 오픽 정도다. 이 중 서울대 TEPS관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텝스를 제외하면 오픽은 미국외국어교육평가전문위원회(ACTFL)에서, 토익·토플·토익스피킹은 ETS에서 주관한다. 1회 응시료는 텝스가 3만6000원으로 가장 저렴하고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를 모두 보는 토플이 170달러(약 20만 원)로 가장 비싸다. 원하는 점수를 얻고자 온라인 강의나 학원 수업을 들으면 부담은 더 커진다.

2013년에는 국내에서 토익을 주관하는 YBM시사닷컴 등 어학시험 사업자들이 수수료 환불규정을 어기고 취소수수료를 부당하게 챙겨오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기도 했다. 당시 시정조치를 받은 관련 어학시험은 토익, 토플, 텝스, 지텔프(G-TELP), JPT, JLPT, 신HSK 등 7개였다. 그럼에도 토익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선호되는 이유는 점수를 올리기가 가장 쉽고, 또 가장 많이 보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한 현직 영어강사는 “토익은 다른 공인영어시험에 비해 유형이 잘 알려져 있고 스터디나 수업을 꾸리기에 용이하다. 교재나 무료 강의도 많아 초기에 진입하기 쉬운 시험”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개발한 텝스의 응시료가 저렴함에도 선호도가 낮은 이유에 대해서는 “텝스는 토익에 비해 단기간에 점수를 올리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보통 토익점수보다 텝스점수가 50~100점 가까이 낮게 나온다. 입사지원서에 점수를 쓸 때 기왕이면 높은 점수를 쓰겠다는 생각에 토익을 많이 본다. 급하게 점수가 필요한 취업준비생이나 진급에 어학 성적이 필요한 직장인은 오픽이나 토익스피킹을 주로 본다”고 설명했다.

취업준비생은 일부 공인영어시험의 석연치 않은 평가 기준으로도 고통받고 있다. 대학 졸업반인 김모(24) 씨는 지난해 12월 오픽에 응시하고 IM2 레벨을 받았다. 평균적인 취업준비생이 최소 IH 레벨 이상의 점수를 제출하기 때문에 김씨는 더 높은 점수를 서류에 쓸 요량으로 학원에 등록해 2개월간 공부한 후 2월에 다시 시험을 봤다. 그런데 결과는 NH(novice high). IM2보다 두 단계 낮은 점수였다. 김씨는 “NH 레벨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No Head 점수로 불린다. 그만큼 낮은 등급이다. 녹음파일이 누락된 것은 아닌지, 제대로 채점됐는지 국내 시험 주관 업체인 크레듀 본사에 문의했으나 미국으로 녹음파일이 넘어갔기에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픽의 1회 응시료는 7만8100원. 답변 내용을 바탕으로 개선이 필요한 항목을 진단하고 평가자의 코멘트를 받을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지만, 시험 보기 전 신청했을 때만 가능하고 이 경우 추가금 3만 원이 붙는다. 토익스피킹은 시험이 끝나면 목소리가 제대로 녹음됐는지 들어볼 수 있지만, 오픽은 시험이 끝나면 확인이 불가능하다. 결국 김씨는 취업준비를 위해 가장 이른 일정의 오픽에 재응시하기로 했다. 황당한 경험을 한 건 김씨만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살다 왔다는 대학생은 김씨에게 “지난 시험에서 AL 레벨(만점)을 받았는데 새로 친 시험에서 NH 레벨을 받았다. 크레듀에 연락했는데 미국 본사에 직접 연락해보라고 하더라.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데 같이 할 생각이 있느냐”는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도 IM 레벨에서 NH 레벨을 받았다며 “두 달간 성적을 떨어뜨리려고 공부한 것 같아 화가 난다. 토익스피킹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 공부 헛발질에 찌드는 청춘

취업준비생 10명 중 9명은 토익 등 공인어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토익 고득점, 영어 실력과는 별개

문제는 힘들게 공인영어시험을 공부했어도 실전, 즉 입사 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사 5년 차인 직장인 정모(30) 씨는 대기업 홍보팀에서 국내 언론사 기자들을 상대한다. 입사 당시 토익 950점, 토익스피킹 레벨은 7이었다. 정씨는 “외국인을 응대할 일이 많지 않아 왜 그 고생을 하면서까지 점수를 땄나 싶을 때도 있지만, 서류합격을 위해 공부한 거라고 위안하고 있다. 토익을 공부하면서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토익 900점이 넘는 입사 동기도 수두룩하지만 외국인에게 전화라도 오면 심호흡부터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입사 6년 차인 직장인 이모(29) 씨는 “통역 없이 해외 출장을 가거나 영어로 자료를 찾는 등 생각보다 회사에서 영어를 쓸 일이 많지만, 입사 때 제출한 영어 점수가 실력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토익 고득점과 독해, 말하기는 별개 문제”라며 “젊은 후배는 다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인 줄 아는 회사 선배들 때문에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영어회화 공부를 위해 학원 주말반에 등록했다.

신길자 취업컨설턴트는 “공인영어시험 점수는 지원자의 영어 실력이 아닌 성실성을 나타내는 척도”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시장에서 탈스펙이라는 트렌드가 있지만 모든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고 중견·중소기업도 공인영어시험 점수를 보기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원자의 스펙이 상향평준화하면서 어학 성적 자체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이 됐다. 회사 처지에서 지원자의 공인영어시험 점수는 영어 실력을 입증한다기보다 그 사람의 성실성을 보는 척도다. 회사에서 성실성을 증명할 요소로 쓰는 게 출신 대학, 학점, 영어 성적과 자격증 유무 등이다. 따라서 토익 고득점에 지나치게 집중하기보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기준치 이상의 점수만 있다면 그다음에는 자신만의 매력을 갖추는 게 현실적인 취업준비 방안이 될 것이다. 포괄적인 취업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취업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에게 물었다

해외에서도 취업할 때 토익 점수 물을까


국내 취업시장에서 ‘공인영어점수’ 획득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떨까. 국내에 거주 중인 외국인 대학원생들에게 자국에서 취업준비 시 공인영어시험이 차지하는 비율을 물었다.

국내에서 대학원 수업을 듣는 태국인 튠 산티아누체(27) 씨는 “태국은 현지 회사에 입사할 때 토익 같은 공인영어점수가 필수는 아니지만, 영어 점수가 있으면 월급을 더 많이 받는 등 좀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고, 특히 외국계 회사에 취업하려면 영어 점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국은 수출입 관련 산업이 발달해 영어를 잘하는 게 경력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취업하는 데 영어 실력이 중요한 것은 대만도 마찬가지. 그러나 영어 점수 제출이 의무는 아니다. 대만에서 온 우이진(23) 씨는 “영어 점수를 제출하는 게 플러스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지원하려는 업무에서 영어가 필요하지 않다면 취업 전형에서 영어 점수를 제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현지 기업에서 인사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마얀 마사드(29) 씨는 “이스라엘에서는 대다수 학생이 영어로 말하는 데 능숙한 편이라 취업 전형에서 별도의 영어 점수를 요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높은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의 경우, 면접 중 몇 가지 질문을 영어로 진행한다. 면접관이 직접 영어 점수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영어 점수가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인 요시다 하루카(25) 씨는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취업 활동에서 영어의 중요성이 굉장히 낮은 편”이라며 “스펙에만 집착하는 것을 기피한다. 영어를 전문적으로 배웠다거나 영어 능력을 강조할 만한 경력이 있지 않는 한 면접에서 그런 걸 어필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그런 걸 강조하는 걸 터부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항공사나 호텔 등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 확실한 기업 면접에서는 영어 점수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대부분 제출할 필요가 없다. 기업에서는 지원자가 조직에서 얼마나 잘해나갈 수 있는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따라서 영어 점수가 부족해도 합격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기업들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우리와 상황이 비슷했다. 베이징에서 온 이성원(28) 씨는 “중국에서는 대도시에서 직장을 가지려면 영어 듣기, 읽기, 쓰기를 평가하는 중국 본과 대학영어 4급(CET-4) 이상의 점수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기업이거나 업무상 영어가 필요 없어도 최소한으로 받아야 하는 점수가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5.03.16 979호 (p26~28)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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