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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키우려는 건 반역자, 현재와 불화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최진석 ‘Future New School’ 건명원 원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우리가 키우려는 건 반역자, 현재와 불화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우리가 키우려는 건 반역자, 현재와 불화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단순함은 아름답다. 지적이기 때문이다’라는 명제를 정당화하시오. 정당화할 수 없다면 그 근거를 제시하시오.’

3월 4일 문을 연 ‘Future New School’ 건명원(建明苑)의 입학시험 문제다. ‘Future New School’이라는 낯선 수식어는 건명원이 스스로 붙인 것이다. 현재의 사고체계로는 이해하기 힘든 ‘완전히 새로운’ 학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학교 면면은 ‘완전히 새롭다’. 최진석 서강대 교수(철학),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개천 국민대 교수(건축학) 등 우리나라 최고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커리큘럼을 짰다. 라틴어 고전부터 물리학 복잡계 이론까지, 수업 주제는 인문과 과학과 예술을 넘나든다.

게다가 모든 수업이 완전 ‘공짜’다. 자수성가한 사업가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해 서울 북촌로(가회동)에 그림 같은 한옥 교사를 마련했다. 학생 전원은 무료로 정규 강의를 듣고, 교재비도 내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씩 세계적 학자를 초청해 토론수업을 열고, 1년 과정 수료자에게는 한 달간 세계 어디든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여행비를 주는 등 부가혜택까지 풍성하다.

“내 생애 가장 거룩한 날”



지난해 가을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건명원 설립 계획이 발표됐을 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건 당연한 일이다. 1월 23일부터 2월 4일까지 진행한 신입생 모집 전형에는 지원자격을 만 19~29세로 제한했음에도 900명 넘게 원서를 냈다. 이 중 건명원 입학자격을 얻은 건 불과 30명. 1차 서류전형과 바칼로레아를 방불케 하는 2차 에세이 시험, 그리고 두 번에 걸친 심층압박면접을 통과한 이들이다. 과연 이 학생들은 누구이며, 앞으로 1년간 ‘Future New School’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생활하게 될까. 여러 궁금증을 안고 3월 초 건명원을 찾았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한옥 교사에서 마주 앉은 최진석(56·사진) 건명원 원장은 무척 들뜬 듯 보였다. 최 교수는 노장 철학 분야에서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뤘고, 탁월한 대중강연으로 많은 팬까지 몰고 다니는 스타 학자다. 그러나 건명원에 대해 말하는 순간만큼은 새로운 시도 앞에 가슴 설레는, 스무 살 풋풋한 청년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3월 4일 열린 입학식에서 건명원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배철현 교수가 ‘오늘 이 순간을 내 일생에서 가장 거룩한 날로 기억하고 싶다’고 했어요. 함께 개교를 준비한 8명 교수 모두 똑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아름답고, 의미 있으며, 꼭 해야 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는 기쁨. 그것이 지금 우리 교수들과 이사장님을 움직이고 있어요. 우리 학생들도 같은 마음을 갖는다면, 건명원은 머지않아 정말 아름답고 의미 있으며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공간이 될 거예요.”

얼핏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들린다. 그러나 최 교수는 이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일 수는 없다고 했다. 그가 직접 지은 ‘건명원’이라는 이름도 바로 이런 목표를 담은 것이다.

“건명원(建明苑)은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라는 뜻이에요. ‘명(明)’은 해(日)와 달(月)을 합친 글자죠. 대립된 듯 보이는 두 가지가 한 글자로 합쳐져 비로소 밝은 빛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밝은 빛이란 새로운 빛입니다. 대립된 양편 가운데 어느 한편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대립을 품어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어버리는 힘 있는 빛이죠. 그런 빛을 세우는 장소라는 뜻으로 ‘苑’ 자를 쓴 건, 어떤 경계에도 갇히지 말자는 뜻에서입니다. 많은 언론이 ‘건명원’의 한자로 ‘園’을 썼던데, 이 글자는 구획된 틀, 잘 정비된 공간을 뜻합니다. 반면 우리가 사용한 ‘苑’은 열린 공간이에요. 자유롭고 심지어 야성적이기까지 한, 그래서 해와 달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바로 그런 공간입니다.”

최 교수는 이 안에서 학생들이 흔들리고 불안을 느끼며 매순간 고통과 직면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밝음을 세우기 위해 기꺼이 감당해야 하는 어둠, 그 자리를 건명원이 떠맡겠다는 뜻이다. 그는 “미래를 향한 밝은 빛은, 불안하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개척해낸다. 기존 시스템에 안정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미래를 끌어올 수 없다”고 했다.

“신입생 선발과정에서도 그런 불편함, 그리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어요. 세상이 정해놓은 걸 돌파하려는 뜻과 힘이 있는지 보기 위해 면접하면서도 줄곧 지원자들을 곤란한 상황으로 밀어붙였죠.”

최 교수는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배출하려는 인재상이 ‘창의 전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창의 전사

‘전사’라는 단어에서는 비장한 기운이 물씬 풍긴다. 건명원 신입생 모집 안내문에서 ‘학문은 해볼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맹수 앞에서 가만히 돌을 쥐는 동작처럼 필연적인 실천이다’ 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났다. 건명원에서 가르치려는 ‘학문’은 사회 전반에서 인기몰이 중인 ‘교양 인문학’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최 교수는 “다른 인문학 강좌들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만 우리는 남들이 이미 해놓은 생각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개개인의 삶을 철학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그러더니 불쑥 “이번엔 내가 하나 물어보겠다. 요즘 자동차 디자인을 보면 곡선이 두드러지는데 과거에는 대부분 직선이지 않았나.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아나”라고 질문을 건넸다. 갑작스러운 ‘한 방’에 당황해 더듬더듬 생각을 정리하는데 다행히 최 교수가 먼저 답을 내놨다.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 유체역학, 공기저항 등에 대해 말을 꺼내요.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곡선형으로 디자인된 차를 사는 사람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죠. 인간의 취향이 직선선호형에서 곡선선호형으로 바뀐 겁니다. 보통 사람은 이런 변화를 의식하지 못해요. 그저 현상을 볼 뿐이죠. 그러나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인간의 욕망이 왜 달라지는지,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어떤 구조로 이동하는지 보게 됩니다. 철학자 헤겔은 ‘철학은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하는 일’이라고 했어요. 그게 바로 이런 뜻인 거죠.”

최 교수는 “구체적인 세계, 움직이는 삶의 모습들을 관념으로 포착할 수 있는 자질이 바로 철학적 능력”이라며 “그걸 가진 사람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 수 있고, 그 장르를 만드는 힘이 산업으로 연결되면 새로운 문명을 말하는 제품이 나온다. 그것이 경제적 토양이 되고, 국가적 힘이 되고, 선도력이 된다. 우리가 말하는 ‘창의 전사’는 바로 이런 구실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기준에 따라 최종 선발한 30명은 연령이 19~29세에 두루 퍼져 있으며, 남자 16명, 여자 14명이다. 직장인과 학생도 반반 수준. 비율을 고려하지 않고 선발했는데 균형이 맞아 교수들도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앞으로 이들은 40주 동안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건명원에 모여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강의를 듣고 토론하며 자신의 벽을 깨나가게 된다. 교수 8명도 함께 수업을 듣고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특징. 최 교수는 “건명원에 참여한 교수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해온 이들이다. 오 이사장이 학교 설립 뜻을 굳히고 배 교수에게 의지를 전한 뒤 그간 이심전심 마음을 알아온 이들을 모아 지금의 진용을 짰다. 지난 몇 달 간 이들과 함께 커리큘럼을 구성하면서 의기투합해 지금은 ‘8인의 특공대’가 된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새 교육’ 만드는 8인 특공대

“우리가 키우려는 건 반역자, 현재와 불화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절차적인 부분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도 있지만 큰 방향에서는 놀라울 만큼 뜻이 통해요.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고요. 그래서 자신이 강의하지 않는 날에도 매주 수요일, 모두 다 이 자리에 모여 강의를 듣기로 했습니다. 그 사실에 모두 약간씩 들떠 있는 상태예요. 저만 해도 김대식 교수의 뇌과학이나 정하웅 교수의 물리학 수업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날 걸 생각하면 가슴이 뛰거든요.”

최 교수는 정말 반짝 눈을 빛냈다. 이런 강의 및 토론 수업과 더불어 건명원이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커리큘럼은 고전 강독이다. 최 교수가 중국어, 배 교수가 라틴어를 맡아 1년간 학생들과 함께 각각 노자의 ‘도덕경’과 키케로의 ‘국가론’을 원문으로 읽어나갈 계획이다. 최 교수는 “인간은 세상에 무늬를 그리며 산다. 인간이 그린 무늬가 바로 인문이고, 그것의 정수가 문자다. 문자를 배우는 건 단순히 글자를 익히는 게 아니라 가장 정련된 인류의 문화 활동을 체험하는 것이고, 그를 통해 이룩된 문명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라며 “서양문명의 핵심인 라틴어와 동양문명의 핵심인 중국어를 배우는 건 학문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겨우 1년 만에, 그것도 격주에 한 번씩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두 개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 가능할까. 이 ‘우문’에 최 교수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꿈을 꿀 때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가능성을 이야기하려면 기존 시스템의 틀 안에서 사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에요. 가능한지 아닌지는 우리 관심사가 아닙니다.”

어쩌면 이것은 두 평(6.6m²)짜리 공장에서 단추를 만들어 팔기 시작해 의류 부자재 분야에서 국내 최대 기업을 일군,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창의 전사 양성’에 기꺼이 쏟아붓기로 결심한 건명원 이사장의 뜻이기도 하다. 오 이사장은 입학식에 참석해 신입생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다음 “마지막으로 교수님들께 당부드립니다. 이 학생들을 이 시대의 반역자로 키우십시오. 이 시대를 거역해야 다음 시대의 중심에 서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그 말씀에 더욱 힘을 얻었다”고 했다.

“아무런 바람 없이, 오직 미래 교육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만으로 이런 공간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 정성과 진심이 우리 교수들을 움직였고, 학생들도 움직일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 정말 건명원이 길러낸 ‘창의 전사’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의 뒤에서 동료 특공대원들과 함께 흐뭇하게 미소 짓기를 바라는 스승, 최 교수의 바람이다.

◆ 건명원 교수진과 전공 분야

· 인문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 기호학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역사학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고대근동종교와 언어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중국철학

· 예술

김개천 국민대 실내디자인학과 교수/ 건축 및 디자인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 미학

· 과학

김대식 KAIST 전자 및 전기공학과 교수/ 뇌과학

정하웅 KAIST 물리학과 석좌교수/ 물리학-복잡이론

강의 일정

3~12월 10개월(40주), 매주 수요일 저녁 6~10시

커리큘럼

매달 첫째, 셋째 수요일 - 인문학, 과학, 예술 분야 강의 및 토의

1.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최진석 교수

2. 뇌와 현실 : 김대식 교수

3. 복잡계 네트워크와 데이터 과학 : 정하웅 교수

4. 근대 세계사 읽기 - 바다와 대륙 : 주경철 교수

5. 일반 매체학 서설 : 김성도 교수

6. 철학과 문학을 통한 생각 연습 : 서동욱 교수

7. 신의 질문, 인간의 질문 : 배철현 교수

8. Grand Beauty(위대한 예술과 건축) : 김개천 교수

매달 둘째, 넷째 수요일 - 고전 원문 강독 및 암송

1. ‘도덕경’과 지배자 : 최진석 교수

2. 라틴어와 로마문명 : 배철현 교수



주간동아 2015.03.16 979호 (p38~40)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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