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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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로 인한 손해배상 죽을 때까지 간다

  • 류경환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5-02-09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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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국가에서 범죄에 대한 처벌은 국가가 정한 법에 따라 이뤄진다. 형법, 형사소송법 등에 의한 형사적 처벌과 재산 또는 가족관계를 다루는 민법, 민사소송법 등에 의한 처벌이 그것이며, 이 두 법체계는 서로 구별되는 게 보통이다. 형사소송은 수사→기소→재판→형의 집행 순서로, 민사소송은 제소→재판→판결의 집행 순으로 처벌 절차가 진행된다.

    불법행위 가운데는 형사와 민사 접점에 위치하는 영역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소송이다. 일단 빚을 갚지 못하면 채무불이행으로 민사소송을 당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갚지 않을 생각으로 빌렸다면 형법상 사기죄가 적용된다. 이 경우엔 형사적으로 처벌받는 것은 물론, 불법행위로 입힌 손해에 대해 배상까지 해줘야 한다(민법 제750조).

    일반적으로 사기나 횡령 같은 범죄로 피소된 사람은 교도소에서 형을 살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형사적 책임만 끝마친 것일 뿐이다. 민사적인 손해배상 책임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된다(민법 제766조 제1항). 예를 들어보자. 한 기업의 직원이 거액을 횡령해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있는데, 그 형기 안에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권 시효가 소멸할 수 있다. 회사가 시효 소멸을 방지하려면 손해배상을 구하는 재판을 진행해 판결문을 받아둬야 한다. 판결을 받으면 3년의 단기 소멸 시효는 사라지고, 판결일로부터 10년간 시효가 보장된다. 10년 시효가 만료될 때쯤에는 다시 재판을 받아 시효를 10년씩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교도소에서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내더라도 민사 책임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건 아니며,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권 시효를 묵인한 경우에만 반사적인 효과로 책임을 면하게 될 뿐이다. 범죄행위는 엄격히 금지돼 있고 가해자에게는 민형사상 책임이 병존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근래 경제 불황으로 취업 또는 창업 사기사건이 적잖게 일어나고 있다. 취업이나 창업 과정에서 최초 약속한 조건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이를 단순한 채무불이행이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한발 더 나아가 사기행위라고 판단할 것인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이론적으로는 최초 이행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경우 사기가 되겠지만, 실제 생활에선 이의 정확한 판단이 매우 어려우며 심지어 개인마다 시각차도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형사처벌됐다면 사기행위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불법행위가 증명되면 가해자는 자신이 그 행위로 큰 이득을 얻지 못했을지라도 피해자의 모든 손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민법 제760조). 예를 들어 전체적인 사기행위에서 본인은 장소만 제공했을지라도 사기 금액 전액을 배상해줘야 한다. 주범이나 단순 방조범의 피해배상책임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이른바 부진정연대채무(연대채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연히 발생한 채무)가 그것이다. 우리 법체계는 불법행위에 대해선 엄격한 배상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한편, 가해자가 개인 채무 과다로 파산 절차를 진행했더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는 면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66조는 면책되지 않는 채무를 규정하고 있다. 제3호 ‘채무자가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제4호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사기나 횡령 등으로 손해를 입힌 경우 파산 절차로도 면책되지 않는다. 불법이 아닌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다 발생한 채무에 대해, 그것도 과다하게 책정된 경우에만 손해배상 면책이 되며, 범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은 면책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앞서 봤듯 반복해서 소멸 시효 연장 판결이 이뤄지는 경우 사망 시까지도 그 책임은 계속된다. 창업 사기를 당했을 때 형사절차에서 혐의 유무 판단이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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