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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오감 만족 소주와 환상 궁합

서울 강북의 우설(牛舌)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오감 만족 소주와 환상 궁합

오감 만족 소주와 환상 궁합

서울 성북구 장위동 ‘태성집’의 우설구이(왼쪽)와 우설.

한국인의 고기에 대한 편식은 집착에 가깝다. 돼지고기는 삼겹살만 주로 먹고 쇠고기는 등심을 최고로 친다. 다른 부위의 정육 가격은 같은 소에서 나와도 몇 배가 싸다. 정육이 아닌 뼈와 내장, 머리 같은 특수 부위도 마찬가지다. 한민족은 소를 귀하게 여겼고 실제 소 부위에 대한 명칭도 100개가 훌쩍 넘을 정도로 소에 대한 이해가 넓고 깊다.

쇠머리는 설렁탕집이라면 반드시 전시해 놓은 상징물이었다. 설렁탕과 곰탕, 소머리국밥이 모두 쇠머리를 이용해 만든 음식이었다. 쇠머리 부위 가운데 질감이 가장 독특한 부위는 우설(牛舌·소의 혀)이다. 한국인은 우설을 대개 따로 먹지 않고 쇠머리수육이나 탕에 고명으로 넣어 먹는다. 19세기 말 쇠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일본인은 20세기 중반 우설 맛을 안 뒤 열광하고 있다. 우설은 일본말로 규탄(牛タン)이라 하는데 규는 소라는 뜻이고, 탄은 혀를 의미하는 영어 ‘tongue’에서 따온 말이다. 일본 동북부 센다이(仙臺)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소 혀를 먹으면서 시작된 문화다.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훨씬 전부터 우설을 음식으로 먹어왔다. 우설은 섯밑, 혀밑, 쇠서받침, 혀뿌리, 혀날 등으로 부르는데 혀의 밑부분을 칭하는 섯밑은 ‘훈민정음 해례본’(1446)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먹어왔다. 소 한 마리에 2.4kg가량 나오는 우설은 혀 부위와 혀를 받치는 근육 부위로 나뉜다. 1924년 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쇠머리편육 편에 ‘쇠머리는 열두 가지 맛이 잇다 하고, 서(혀)는 연하고 구수하야 맛이 상둥(최고 좋고)이요 (중략) 섯밑술치(소 혀 근육) 또한 조코’라는 구절이 나온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태성집’은 서울에서 우설구이를 파는 드문 식당이다. ‘태성집’ 우설구이는 우설 중에서도 가장 좋은 혀끝 부위 400g가량만을 사용한다. 숯불에 우설을 살짝 익혀 먹으면 졸깃한 식감 속에서 부드러움과 기름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조금만 과하게 익히면 우설은 이내 딱딱해져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구이용을 제외한 나머지 부위는 탕으로 판다.

우설이 내는 연한 식감은 콜라겐 함량은 높지만 결착력이 낮은 데서 비롯된다. 구이로 먹을 수 있는 우설 부위가 적어 우설구이 가격은 상대적으로 좀 센 편이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의 설렁탕 명가 ‘옥천옥’은 1940년대 초반 영업을 시작한 노포다. 이 집 설렁탕은 맛이 강하지 않고 순하기로 유명하다. 우설수육도 순하고 잡냄새 없이 깔끔하다. 우설의 대중적 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집이다.



서울 청량리역 주변은 밤이 되면 여자 혼자 다니기에는 불편할 정도로 이상한 가게가 많다. 청량리역 뒷골목에 있는 ‘청량리옥’은 일대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의 밥집이자 술집이다. 해장국과 설렁탕 같은 탕도 잘하고 머리 고기, 편육, 지라, 혀밑 같은 독특한 안주로 유명하다. 이 집의 혀밑은 이름과는 조금 다르게 육고기 질감이 강한 혀밑과 서걱거리는 질감의 혀를 같이 썰어준다. 내장 같은 맛과 담백하고 은근한 우유 맛이 난다. 다양한 질감에 단백질과 기름기가 뒤섞인 혀밑은 술안주로 제격이다. 소주 같은 증류주와 좋은 결합을 보인다.

맛은 향이자 질감이고, 시각이자 청각이다. 우설은 이런 다양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강북의 오래되고 서민적인 술집들은 우설과 소주 한잔을 곁들이기에 제격인 가격과 분위기를 갖췄다.



주간동아 2015.01.19 972호 (p73~73)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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