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8

2014.12.22

그래도 믿을 것은 金?

가치평가 쉽지 않은 고비용 자산…분산투자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12-22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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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믿을 것은 金?

    순도 999.9%. 중량 1kg짜리 골드바.

    4, 5년 전 일로 기억한다. 후배가 찾아와 최근 금(金)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대기 때문에 실물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수단은 금을 보유하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 후배뿐 아니라 상당수 전문가가 이런 의견이었다. 게다가 2000년대 초 온스(약 28.35g)당 250달러로 시작한 금값이 약 1900달러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기에 시장 분위기도 금 투자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2000년대 초 10여 년간 금은 투자세계의 진정한 승자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금 투자자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2011년 9월 2일 온스당 1899달러로 고점을 찍은 후 금값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기록했다. 4년간 30%가 넘게 빠졌다. 냉랭했던 투자자들의 심리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건 금값이 빠질 만큼 빠졌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소위 ‘금값 바닥론’이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경제 환경과 금융시장 불안도 금에 대한 믿음을 되살리고 있다. 위기 상황에선 금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금 보유, 투기인가 투자인가



    사실 금 투자만큼 논란이 많은 것도 없다. 부정적 입장의 극단에 서 있는 인물이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버핏은 금을 소유하는 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본다. 남들이 오로지 내가 산 가격보다 비싸게 사줄 때만 수익을 낼 수 있는 건 비생산적인 투자고, 더욱이 2011년처럼 금값이 비쌀 때 매입하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버핏의 반대편 주장도 만만찮다. 금은 역사적으로 위기 때 가장 확실한 안전자산이었고, 더구나 대대적인 통화 남발은 언젠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므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포트폴리오에 어느 정도 금을 편입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 논리도 있다. 중국과 인도 국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들의 금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나라 국민 모두 금을 좋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다. 과거와 달리 중국과 인도라는 확실한 수요 요인이 있으므로 금값 하락은 매수 기회라는 논리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시간만이 검증 가능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금이라는 자산의 속성이다. 금 투자에 앞서 자산으로서 금이 가진 속성을 살피는 건 투자 의사 결정에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금은 다른 자산과 달리 가치평가가 쉽지 않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과 크게 다른 점이다. 주식은 기업 이익이나 배당 같은 지표가 존재한다. 채권에는 이자가, 부동산에는 임대수익률이 있다. 버핏이 금 투자를 비판하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 버핏은 금이 이자도 배당금도 없는 비생산적 투자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가치투자자도 자신들이 금 투자를 꺼리는 이유가 금의 내재가치를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라 얘기한다.

    금은 또한 고비용 자산이다. 금 실물에 대한 투자는 주로 골드바 형태로 이뤄진다. 나라마다 세금 체계가 다르지만 우리나라는 골드바 구매 시 10%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 여기에 금 제작 및 보관과 관련한 비용을 고려하면, 매입 자금의 15%가량이 총비용이 된다. 다른 자산과 비교할 때 초기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세금 측면에선 확실한 장점도 존재한다. 금은 금융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자나 배당 소득세가 없다. 골드바라는 물건을 구매한 것이므로 매도할 때 수익이 나더라도 양도소득세가 없다.

    상속이나 증여 측면에선 특히 조세 효율적이다. 골드바라는 물건을 주는 것이므로 증여세가 문제되지 않는다. 거액 자산가들이 골드바를 선호하는 이유는 15%가량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증여세를 내지 않는 것이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골드바의 조세 효율성과 관련한 매력 정도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증여세를 걱정하는 사람과 단순히 재테크를 위해 골드바를 사려는 사람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믿을 것은 金?

    3월 24일 부산 동구 한국거래소(KRX) 금시장 개장식 모습. 금시장에는 세계 금거래의 표준인 순도 999.9%. 중량 1kg의 골드바가 상장돼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

    안전자산인가, 비생산적 자산인가

    금은 전통적으로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대비 수단이다. 하지만 경제가 잘 작동하는 시기, 즉 기업의 이익이 늘고 소비가 활성화하는 시기에 금은 최악 투자처가 되기 십상이다. 실제 성장 시대였던 1980년부터 2000년 초까지 금은 주식이나 부동산, 심지어 정기예금보다 못한 투자처였다. 금이 자산이 아니라 장식물이던 시대다. 반대로 경제가 위기에 처해 심한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을 겪을 때 금은 보험 같은 구실을 한다. 흔히 말하는 안전자산으로서 금이 부각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2000년대, 특히 금융위기 이후 금이 부각한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데 오히려 지금 글로벌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만일 이번에 금이 다시 부각한다면, 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소액 개인투자자가 금 투자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에는 주식형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 금 선물 등이 있다. 주식형 펀드 등은 금 자체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금 관련 회사 주식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주식이기 때문에 수익률이 금 시세 변동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일부 은행에서 골드뱅킹이라 부르는 ‘금 통장’을 개설하는 것이다. 금 통장은 실물 거래 없이 돈 대신 금을 적립해준다. 환율도 고려해야 한다. 금은 달러로 거래되므로 원화를 달러로 바꿔 금을 매입해야 한다. 골드뱅킹은 골드바를 직접 매입하는 것과 달리 수익이 나면 15.4%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금은 주식이나 부동산, 채권 같은 전통적 자산에 비해 가치 분석이 어렵고 비용도 높은 자산이다. 따라서 증여세를 걱정해야 하는 거액자산가나 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에 대비한 리스크 헤지 수단을 고민하는 사람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일 소액으로 분산투자 차원에서 금에 접근하고 싶다면, 적립식 투자 형태로 골드뱅킹 같은 상품을 이용하는 것은 고려해볼 수 있다.

    확실한 사실은 금값을 예측하는 건 신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가격 흐름에 베팅하기보다 자신의 자산 규모와 절세 전략 등 니즈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하나 무엇이든 ‘몰빵’은 높은 기대 수익과 반대로 파국으로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금도 분산투자 대상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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