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8

2014.12.22

“소비자 발 벗고 나서야 책임금융 실현 가능”

인터뷰 |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

  • 조영실 객원기자 esperanza0738@gmail.com

    입력2014-12-22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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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 발 벗고 나서야 책임금융 실현 가능”
    2014년 금융계는 연초 신용카드 3사(KB국민·롯데·NH농협)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시작해 ‘서금회’(서강금융인회)의 인사 논란으로 마감하게 됐다. 그 밖에도 NH농협 전자금융 사기, KB금융의 주전산기 교체 문제 등 굵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졌고 지난해 발생한 이른바 동양사태는 여전히 피해자 소송이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과 금융사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불신이 고조되는 한편, 금융사는 금융사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전락했다. 이제 금융에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얻어야 하는 효율보다 최대한 피해를 막아야 하는 안전성이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믿을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책임금융’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주간동아’의 ‘미·안·세’(미래세대에게 안전한 세상을!) 캠페인은 책임금융 실현을 위해 사회적으로 착한 기업, 안전의식이 강한 기업에 투자하는 관행을 만들자는 대국민운동이다. 책임금융의 역할은 금융서비스 공급자인 금융사와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의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국민의 연금과 보험금, 예금, 주식투자 자금은 안전사고 유발의 젖줄이 돼 청해진해운 같은 부실 악덕기업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책임금융 실현은 소비자를 포함한 금융 주체 모두의 몫이다.

    그러나 점차 고도화, 전문화되는 금융사기의 경우 책임소재를 밝히고 책임 범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금융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의 조남희 대표(사진)는 “책임분배의 형평성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배상명령제 도입 필요

    ▼ 금융사기에 연루된 기업 역시 예측하지 못한 위험의 피해자로도 볼 수 있지 않은가.



    “책임소재는 누가 더 정보와 실행력을 갖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신용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보면, 금융당국은 소비자의 관리 소홀을 문제 삼고 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을 상대로 한 피해자 소송도 소비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소비자는 자기 정보에 대한 관리권한이 없었고 금융사로부터 그것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통보받지도 못했다. 따라서 관리권한 및 감독의무가 있는 금융사와 당국에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금융소비자원은 동양사태 피해자의 소송 자문을 도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소비자피해구제소송지원사업자로 선정됐다. 피해자들이 소송에까지 이른 것은 금감원이 동양그룹의 불완전판매(고위험 상품을 안전형 상품으로 안내하는 것 등)를 원인으로 결론짓고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사태를 마무리하려 한 데 따른 것이다. 반면 불완전판매를 넘어 사기성 판매를 주장하는 피해자들은 동양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고, 금융당국의 허술한 관리·감독을 문제 삼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 동양사태 역시 관련자마다 책임 범위를 다르게 파악해 집단소송으로 불거진 것 아닌가.

    “4만1000여 명의 전체 피해자 중 2만 4000여 명만 분쟁조정을 통해 불완전판매를 인정받았다. 게다가 배상 비율도 피해액의 15~50%에 불과하다. 금감원은 동양그룹 부실 계열사의 기업어음(CP) 발행 의도 자체에 고의성과 사기성이 있는지를 검토해야 하는데, 단지 거래 당시 공급자의 정보 제공과 구매자의 숙지가 완전하게 이뤄졌는지에만 집중한다. 따라서 분쟁조정만으로는 실질적 피해에 대한 구제가 이뤄지기 어렵다 보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소송을 택했다. 현재 2차 소송인단 모집으로 1500여 명이 소송에 참여했고, 3차 모집을 준비 중이다.”

    ▼ ‘배상명령제’와 같이 소비자 소송 이전에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배상을 명령하는 적극적인 피해보상제도가 필요한 것 아닌가(우리나라에서는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법 위반 행위를 확인하더라도 피해자 스스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금융피해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고 금융당국이 나서 피해를 구제해야 할 의무는 약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배상명령제는 피해 구제가 신속하게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배상명령의 권한이 여전히 금융당국에 있다는 점은 경험상 소비자보다 금융사의 편익이 우선시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당국에 판단을 맡기기보다 전자금융 사기의 경우 1차적으로 금융사 책임을 규정하는 등 실효성 있는 구제책을 법제화해 확실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콘텐츠 부재가 문제

    “소비자 발 벗고 나서야 책임금융 실현 가능”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의혹이 불거진 2013년 10월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자택 인근 골목에서 동양그룹 채권 CP 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의 본래 기능이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유지와 감독이다 보니, 단기적으로 금융사에 손해를 줄 수 있는 소비자보호 업무를 도외시하는 모순을 낳는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12월 4일 금융소비자 보호정책의 핵심을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의 독립으로 보고, 최근 이를 포함하는 금융소비자정책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금감원 산하에는 이미 금융소비자보호처가 존재한다. 문제는 관련 기관의 부재가 아니라 콘텐츠 부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종합계획 내 금소원 및 서민금융진흥원 설립을 금융위의 몸집 부풀리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내년 국회 입법 통과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 금융위, 금감원과 별도로 국무총리 산하 금융소비자위원회 설립을 제안한다.”

    ▼ 이번 발표 가운데는 금융소비자 보호법 제정 계획도 포함됐다. 금융소비의 전체 과정(사전 정보 제공 → 금융상품 판매 → 사후 피해 구제)을 규율한다는 내용은 실효성이 있나.

    “그렇게 돼야만 한다. 다만, 그것이 소비자 처지에서 효과가 있는지가 문제다. 소비자 피해가 입증됐을 때 금융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배상을 해줘야 한다. 금융당국은 금융사 처벌이 아닌, 피해 구제 등 소비자 권익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조직 영향력 강화를 위해 소비자 권리와는 유리된 금융사 처벌 권한만 키우려는 금융위의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

    ▼ 기업의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환경적, 사회적 성과와 지배구조의 건전성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SRI)를 위해선 어떤 유인책이 필요한가.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시 민간 연금펀드 운용사의 SRI를 법률적으로 의무화한 영국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또 국내 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공모형 SRI펀드 대부분이 올해 초 이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는데, 이에 대한 손실 보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제도적 유인을 통해 점진적으로 투자 관행을 만들어가야 한다.”

    ▼ 책임금융은 제도만으로 완벽히 이뤄지기 어렵다. 소비자 스스로 금융시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금융소비자단체는 책임금융에 대한 소비자 인식 확산에 힘써야 한다. 금융소비자는 그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적용되도록 금융사에 촉구하고 감시해야 한다. 즉 책임금융을 유기적으로 확산하는 역할의 한가운데에 소비자가 있다. 금융소비자는 본인 필요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고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숙지한 후 투자하는 등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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