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3

2014.11.17

공연장…거리…리스트를 느끼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4-11-17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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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거리…리스트를 느끼다

    리스트 광장(왼쪽)과 박물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오페라를 보기로 한 날 아침, 호텔을 나서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씨엔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향하는 게 상책! 일단 언드라시 거리에 있는 오페라 극장으로 갔다. 극장 앞에 도착하니 정문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간밤에 확인한 대로 11시가 되자 문이 열렸고,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너도나도 티켓 창구로 향했다. 당일 공연인 ‘토스카’ 티켓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위치에 비해 비싼 좌석을 확보하고 극장 내 기념품점에 들렀다.

    극장을 나와 향한 곳은 역시 언드라시 거리에 면한 리스트 박물관. 19세기 최고 피아니스트이자 진보적 작곡가였던 프란츠 리스트, 헝가리식 이름으로 리스트 페렌츠는 1811년 도보르얀(현재 오스트리아령 라이딩)에서 태어났다.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 집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대단한 음악애호가였고, 아들을 오스트리아 빈으로 보내 체르니와 살리에리의 가르침을 받게 했다.

    리스트는 어려서 고향을 떠나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등 주로 외국에서 살았기에 헝가리어는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1838년 대홍수 소식을 듣고 부다페스트로 달려가 자선연주회를 열었을 정도로 애국심은 투철했다. 헝가리로 돌아온 것은 1871년, 고국의 음악교육을 개혁해달라는 국왕의 요청을 받고서였다. 현재 박물관이 자리한 아파트에 거처를 마련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당시 직접 설립한 음악원이 자리해 있던 이 건물 1층에서 1881년부터 1886년까지 살았다.

    박물관은 전실(專室)과 3개의 방, 연주홀로 구성돼 있다. 리스트가 사용했던 악기, 가구, 각종 집기 등 진열품이 예상보다 훨씬 방대했다. 다양한 초상화와 조각상, 악보들이 포함돼 있는 건 물론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손을 본뜬 주물품과 작곡 책상이었는데, 서랍에 작은 건반이 설치돼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박물관을 나와서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리스트 음악원으로 향했다. 목적은 역시 다음 날 저녁 공연 티켓을 확보하는 것. 건물 2층 정면에 버티고 있는 리스트 좌상을 우러러보며 바로 밑 정문으로 들어가자 오른쪽에 티켓 오피스가 있다. 로비에선 내부 투어가 진행 중인 듯했지만 공연 티켓만 사서 나왔다. 음악원 바로 앞은 리스트 광장, 가운데 공원이 조성돼 있고 양쪽은 식당과 카페가 즐비한 긴 보행자 거리다. 마침 출출했기에 음악원 바로 앞 식당에서 요기를 했다.



    공연장…거리…리스트를 느끼다

    리스트 음악원.

    그다음 날 저녁, 리스트 음악원에서 헝가리 노장 피아니스트 바사리 터마시의 공연을 봤다. 공연장은 영상으로 접했던 것보다 훨씬 화려했다. 로비 인테리어부터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고, 그랜드 홀 구석구석까지 ‘리스트의 후예’인 헝가리 음악인들의 자부심으로 가득 채워진 듯했다.

    필자가 어려서 즐겨 들었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카세트테이프의 주인공이기도 한 터마시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1부 모차르트 협주곡 17번과 2부 쇼팽 협주곡 2번을 모두 소화했다. 비록 힘과 기교의 쇠퇴는 감출 수 없었지만, 그 유연하고도 강단 있는 연주는 약점을 넉넉히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연륜과 아취가 깊었다. 게다가 헝가리 피아노 연주계의 대모인 피세르 안니(아니 피셔)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이었기에 더욱 뜻깊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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