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1

2014.11.03

사랑하는 이 순간이 우주의 기적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4-11-03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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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이 순간이 우주의 기적
    영화의 마술은 무엇일까. 물리적 세계, 그러니까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불가능한 일을 눈앞의 현실처럼 재현하는 것일 테다. 가령 꿈의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한다거나 우주로의 여행을 마치 지금 현재,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감각의 교란술. 그게 바로 영화의 마술일 것이다.

    유능한 감독을 두 부류로 나눠보면, 한쪽은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이 차지한다. 세상의 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이들 말이다. 다른 한 부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내는 쪽이다. 무의식, 트라우마, 과거, 시간, 미래 같은 이념적 추상어들이 아마 그 세계를 차지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을 하나의 우주로 본다.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피는 가히 인문학 열전이라 부를 수 있다. ‘메멘토’의 죄책감이나 기억,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트라우마, 악, 원죄, ‘인셉션’의 무의식과 꿈, 에고와 리비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인문학적으로 깊고 넓다.

    그의 신작 ‘인터스텔라’는 그런 점에서 놀런 인문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 안에는 감독이 그동안 천착해왔던 인간이라는 우주, 그러니까 인간성의 핵심과 인간을 뛰어넘는 초월적 능력, 그리고 가시적 수준에서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초월적 세계에 대한 근본적 호기심과 마지막으로 ‘우주’라고 부르는 미지에 대한 강렬한 애정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미래 어느 시점이다. 20세기 과학 문명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 즉 산소와 식량을 빼앗아가고 만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달 착륙이 모두 냉전시대 사기극이라고 가르친다. 과학이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한 원흉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를 부정한다고 지구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인간이 살 새로운 곳, 그곳을 개척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재난영화이자 모험영화이며 SF 판타지다. 지구 멸망을 다룬다는 점에서 재난영화이며 새로운 공간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모험영화다. 상대성 이론과 웜홀, 블랙홀에 대한 최신 이론을 보여주며 또 그것을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SF 영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터스텔라’는 인류의 근원적 희망을 묻는 휴먼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킵 손 박사가 자문한 이 영화는 현대 천체물리학을 가장 친절하고도 명확히 보여주는 예시가 될 법하다. 아이맥스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블랙홀이나 우주 풍광은 영화라는 마술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감각의 극치를 선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미 오스카상으로 스스로를 입증한 바 있는 배우 매슈 매코너헤이의 부성애 연기다.

    많은 SF 영화가 최후 해결책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를 구한 건 사랑이었고, ‘아바타’의 최종 선택도 사랑이었다. ‘인터스텔라’에서도 사랑은 무척 중요한 매개가 된다.

    우리를 이끄는 어떤 초월적 힘, 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외계 창조자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을 놀런 감독은 사랑이라고 고쳐 부른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매번 기적을 행하고 있다고 말이다. 영화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철학적 사유를 전해주는 수작, 그것이 ‘인터스텔라’다.

    사랑하는 이 순간이 우주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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