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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오늘도 엄마는 취했다 02

주부들은 왜 술에 기댈까?

남편 및 자녀와의 갈등 등 스트레스가 첫 잔의 시작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주부들은 왜 술에 기댈까?

주부들은 왜 술에 기댈까?

주부는 우울하고 화나고 하는 일도 너무 많다. 주부 우울증은 알코올 중독의 시발점이다.

#1 초등학교 5학년 민지(가명)는 오늘도 동생 식사를 챙겨주고 있다. 식사라고 해야 밥에 김치, 달걀프라이, 나물 하나가 전부다. 밥과 달걀프라이는 민지가 직접 하고, 김치와 나물은 냉장고에 두고 며칠째 먹고 있다. 엄마는 지금도 술에 취해 자고 있다. 어떤 때는 아빠가 저녁식사를 챙겨주거나 짜장면을 시켜주기도 한다. 아빠와 엄마는 한동안 심하게 싸우더니 이제는 거의 말도 하지 않는다. 민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가족과 함께 놀이공원에 갔던 추억을 가끔 떠올리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2 중학교 1학년 영수(가명)는 얼마 전 가출을 했다. 아빠와 엄마 모두 술을 많이 마시고 늘 다투기에 집 안이 꼭 지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빠만 술을 많이 마시고 때로 폭력적인 언행을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엄마도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르면서 부부 싸움을 한다. 지금은 엄마가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자신의 식사와 빨래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 학교는 그냥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정도. 집 밖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거나 혼자 놀 때가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알코올 중독은 정신질환

알코올 중독 주부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예전에는 남성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술이 어느 틈에 가정주부에게 친구처럼 다가와 악마처럼 그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는 것. 여성은 신체적으로 알코올에 취약한 데다 특히 가정주부의 경우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위에 널려 있다는 게 문제다.

많은 이가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알코올 중독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명백한 정신질환이다. 의학 용어로는 알코올 남용 또는 알코올 의존을 가리키며 과도한 음주로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기능에 장애가 오는 현상을 일컫는다. 남성의 알코올 중독도 물론 심각한 문제지만, 주부 알코올 중독의 심각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정 붕괴 혹은 해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민지와 영수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알코올 중독에 빠진 주부는 기본적으로 가사와 양육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다.



아빠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을 때는 실직에 의한 경제적 위기, 술 취한 상태에서 이어지는 폭력, 이로 인한 가정 불화가 주된 후유증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엄마가 나름대로 잘 버티면 아이들은 그나마 소외되지 않는다. 반면 엄마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영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져 결과적으로 아동학대와 방임이 일어나고, 집 안이 쓰레기장으로 변한다. 끔찍한 결과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처럼 대한민국 주부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일까. 첫째, 부부 갈등이다. 아내는 남편의 외도, 경제적 무능, 폭력 등으로 괴로워하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혹은 성격 차이나 자녀 양육에 관한 가치관 차이에서 발단된 잦은 다툼이 술을 찾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둘째, 자녀와의 갈등이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주부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엄마는 사춘기 이전의 아이는 비교적 말을 잘 듣고 자신의 통제와 감독이 통했는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아이가 변했다고 느낀다. 예전의 양육방식을 고집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더욱 반항적으로 대든다. 극단적인 경우 폭력적 상황까지 벌어진다.

이때 엄마는 배신감, 자괴감, 죄책감, 실망감, 불안, 분노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서로 뒤엉켜 매일의 생활이 스트레스 그 자체가 된다. 남편과 자녀가 잠이 든 사이 부엌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며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내쉰다. 이른바 ‘키친드링커(kitchen drinker)’가 되는 것이다. 주부가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과정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셋째, 우울증을 앓거나 우울증이 의심되는 주부들이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우울증에 취약해 2배 이상의 우울증 유병 비율을 보인다. 반대로 남성은 여성보다 중독성 질환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 알코올 중독은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4~5배 발병 비율이 높다. 하지만 남녀 상관없이 우울증이라는 질병 자체가 알코올 중독을 동반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발 인자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우울증만 놓고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 비율이 더 높기에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함께 늘어난다.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술을 마시지만,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졌다고 술이 항우울제는 아니다. 술은 근본적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없다. 특히 혈중 알코올 농도가 내려가면, 즉 술이 깨는 순간 우울한 기분을 더 크게 느끼게 돼 또다시 술을 찾는 악순환 고리가 생겨난다.

알코올 중독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아 존중감을 저하하고, 수치심과 죄책감을 동반하며, 무엇보다 가족 간 갈등으로 이어져 가족 붕괴의 위험성을 높이고, 대인 갈등과 반목을 조장해 점차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는 죽은 삶을 살아가는 셈이다.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게다가 지방간, 각종 감염, 간경변증, 간암 등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지게 돼 결국 실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아내, 주부, 엄마의 구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가정 해체 위험 및 가족 구성원 전체의 고통이 더 커질 수 있기에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가족 간 대화가 예방약

주부들은 왜 술에 기댈까?

엄마가 술에 빠지면 아이는 갈 곳이 없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알코올 중독의 가장 강력한 백신은 가족 간 대화다. 가족 간 대화는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만들어주며, 무엇보다 친밀감을 강화한다. 주부의 주된 스트레스 요인은 남편 혹은 자녀와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가족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화목한 가정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함께 어울리면서 공감을 주고받아야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알코올이 몸에 해로운 물질이어도 음주 문화가 지속되는 이유는 사회적 관계 형성에 일부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술을 마시더라도 절대 혼자 마시면 안 된다.

특히 주부는 키친드링커가 돼서는 안 된다. 이미 알코올 중독이 의심되는 상태라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가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주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인정해야 개선도 할 수 있다. 부끄럽다고 혹은 그 밖의 여러 이유로 자신의 문제를 부인하는 것은 용기를 잃은 행동이다. 전문의와 상담하면서 항갈망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 약물치료를 함께 받으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항갈망제는 술에 대한 갈망을 줄여주는 효과를 가진 약제로, 아캄프로세이트와 날트렉손이란 약물이 이미 널리 처방되고 있다. 알코올 중독에 흔히 동반되는 정신병리 증상, 즉 우울, 불안, 불면 등을 경감하거나 사라지게 하기 위해 여러 약제를 병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 이들 약제는 약물 자체보다 정신·사회적 치료와 동반해 투여할 때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의 따뜻한 사랑, 관심, 지지, 격려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가족 간 대화는 예방약이라 할 수 있고, 가족 간 사랑은 치료제라 할 수 있다. 우리 아내와 엄마를 잘 챙겨주는 게 최고 백신이자, 최고 치료제다.



주간동아 2014.11.03 961호 (p16~17)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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