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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자연주의 캠핑

시베리아 ‘푸른 눈’에 빠져 잠 못 이루는 밤이여!

러시아 바이칼 호 경이로운 풍광…먼 길 달려간 이방인에 특별한 선물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시베리아 ‘푸른 눈’에 빠져 잠 못 이루는 밤이여!

시베리아 ‘푸른 눈’에 빠져 잠 못 이루는 밤이여!

올혼 섬 후지르 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바이칼 호. 호숫가에 부르한 바위가 우뚝하다.

바이칼 호(Lake Baikal) 여행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이었다. 가창오리 떼의 환상적인 비행쇼를 처음 본 1990년대 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십만 마리 가창오리가 노을 진 하늘을 무대 삼아 펼치는 비행쇼는 내가 본 광경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고 경이로웠다. 가창오리 고향이 바이칼 호를 비롯한 시베리아 일대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멸종위기 국제보호종인 가창오리의 학명은 ‘바이칼 오리’라는 뜻의 ‘바이칼 틸(Bikal Teal)’이다. 바이칼 호, 레나 강, 아무르 강, 오호츠크 해 연안 등에서 번식하며 여름을 보낸 가창오리는 시베리아의 혹한이 시작되기 전 대부분 우리나라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

330여 개 강이 흘러드는 바이칼 호는 지구에서 가장 큰 담수호다. 남북 길이는 636km, 동서 너비는 최대 79km에 이른다. 둘레는 2200km나 된다. 넓이는 우리나라 경상남북도와 제주도를 합한 것(3만1390km2)보다 큰 3만1500km2이다. 그토록 광대무변한 바이칼 호에서 가창오리를 찾는다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현지 가이드에게 들었다.

가장 깊고 오래된 담수호

바이칼 호는 지구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담수호로도 유명하다. 약 2500만 년 전 형성됐다는 바이칼 호의 최대 수심은 우리나라 동해의 평균 수심과 비슷한 1742m이다. 더욱이 수면에서 40m 아래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하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바이칼 호를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 일컫는다.

바이칼 호 서쪽 한가운데에는 ‘바이칼 호의 심장’이라 부르는 올혼 섬(Olkhon Island)이 있다. ‘올혼’은 원주민 부랴트족의 말로 ‘햇빛이 잘 드는 땅’이라는 뜻이다. 호수 안의 22개 섬 가운데 가장 크고 유일한 유인도이기도 하다. 남북 길이가 72km, 동서 너비가 15km나 된다. 우리는 올혼 섬 중심인 후지르(Khuzhir) 마을에서 2박 3일 머물렀다.



바이칼 호 여행의 베이스캠프는 이르쿠츠크다. 그곳을 출발한 버스는 시베리아의 허허벌판을 5시간이나 달린 끝에 사히우르타(Sakhyurta) 마을에 도착했다. 소비에트연방 시절 선박수리소가 있던 마을로 ‘MRS(Motors Repair Service)’라고 부른다. MRS 선착장에서 카페리를 타고 15분쯤 가면 올혼 섬 최남단 선착장에 닿는다. 바이칼 호 전체가 꽁꽁 얼어붙는 12~4월에는 얼음 위로 차가 다닌다.

선착장에서 후지르 마을까지는 다시 비포장도로를 40분 남짓 달려야 한다. 곧게 뻗은 찻길은 키 작은 풀만 누렇게 깔린 스텝(steppe)을 가로지른다. 전 세계 담수량의 20%를 차지한다는 호수에 둘러싸였는데도 땅은 몹시 척박하다.

후지르 마을은 올혼 섬 중앙 서쪽 호안에 위치한다. 올혼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이지만, 2006년에야 전기가 들어왔을 정도로 낙후한 오지이기도 하다. 급증하는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리조트, 호텔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는데도 여전히 마을길은 모두 흙길이다. 1500명쯤 되는 주민은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한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근래 신축한 통나무집 숙소에 여장을 풀고 호숫가로 나갔다. 마을 뒤편 언덕에 올라서니 눈부시게 파란 바이칼 호가 시야에 가득 찬다. 검푸른 빛깔의 아득한 심연(深淵)이다. 바다처럼 일렁이는 호수는 바다보다 깊어 보였다. 에메랄드빛, 비취빛, 쪽빛, 아쿠아블루, 네이비블루, 코발트블루 등 세상의 모든 물빛이 한눈에 들어왔다. 얕은 곳의 물빛은 유리처럼 투명했다.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로 만든 것은 ‘에피슈라’라는 작은 새우다. 바이칼 호에만 서식한다는 이 새우는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수백만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면서 바이칼 호에 버려진 이물질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고 한다.

후지르 마을 호숫가에는 우리나라 독도를 닮은 바위가 우뚝하다. 아시아 샤머니즘의 최고 성소(聖所)로 꼽히는 ‘부르한(Burkhan)’ 바위다. 부랴트족의 창조설화에 나오는 창조주 이름과 같다. 옛날부터 원주민은 이곳을 매우 신성한 곳으로 여겼고, 아시아 각지 샤먼들도 이곳을 찾아 종종 굿판을 벌인다고 한다. 부르한 바위 주변의 나무들마다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색(五方色) 천이 묶여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당산나무 같다. ‘세르게’라 부르는 성황당 구실을 하는 13개 나무기둥에도 오방색 천이 빼곡히 둘러져 있다.

시베리아 ‘푸른 눈’에 빠져 잠 못 이루는 밤이여!

바이칼 호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의 궤적. 소비에트연방 시절 강제수용소가 들어섰던 페스찬카의 부서진 선착장. 올혼 섬의 중심이자 가장 큰 마을인 후지르 마을(왼쪽부터).

검푸른 빛깔의 아득한 심연

첫날은 부르한 바위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텐트를 쳤다. 룸메이트는 “편한 잠자리 두고 왜 한뎃잠을 자느냐”며 핀잔했지만, 나는 오랫동안 꿈꿔온 바이칼 호와 좀 더 가까이서 잠자고 싶었다. 마침 날씨도 쾌청해 별 구경을 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별빛과 은하수가 더 또렷해졌다. 보석처럼 빛나는 별빛을 넋 놓고 바라보다 새벽 2시가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올혼 섬에서의 둘째 날에는 ‘우아직’을 타고 북부 지역 일주에 나섰다. 최대 10명까지 탈 수 있는 우아직은 4륜구동 미니버스다. 원래 러시아 군용차로 개발됐기 때문에 편의장치가 거의 없다. 하지만 비포장도로, 진흙탕, 모래밭 등 험로 구간이 많은 올혼 섬에서는 발군의 교통수단이다. 우아직은 올혼 섬의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마치 포장도로처럼 내달렸다. 흙먼지 날리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백패커들도 이따금씩 눈에 띄었다.

사자바위와 악어바위가 있는 누르간스크에 잠시 들렀다가 소비에트연방 시절 강제수용소가 자리했던 페스찬카에 들어섰다. 그곳의 부서진 선착장과 불에 타서 잔해만 남은 수용소 터가 묵직하게 가슴을 눌렀다. 페스찬카를 지나 울창한 침엽수림에 들어섰다. 호숫가 솔숲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는 러시안 가족들의 모습이 오붓해 보였다.

시베리아 ‘푸른 눈’에 빠져 잠 못 이루는 밤이여!

굵직한 몽돌이 깔린 우주르 만의 호숫가에서 수영을 즐기는 러시아 아가씨들. 부르한 바위 주변 호수와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왼쪽부터).

길바닥이 푹 팬 구간에서는 잠깐 차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 숲길을 걷는 내내 솔솔 풍겨온 솔향기에 여독이 말끔히 씻기는 듯했다. 숲을 벗어난 일행은 다시 우아직에 몸을 실었다. 삼형제바위를 둘러본 뒤 하보이 언덕 초입에 도착했다. 찻길 종점인 그곳에서 20분쯤 걸으면 올혼 섬 북쪽 땅끝인 하보이 언덕에 올라선다. 그곳으로 오가는 길은 초원과 벼랑, 숲을 두루 거쳐간다. 1시간 남짓한 산책 코스치고는 과분하다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하보이 언덕에서 바라본 바이칼 호는 말 그대로 창망(滄茫)하다. 동해를 표현할 때나 쓰던 그 말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반듯하게 수평선을 그리며 거침없이 뻗어나간 호수 풍광이 현실이면서도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보이 언덕까지 짧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담한 오두막 쉼터에 점심식사가 차려져 있다. 바이칼 호에서만 잡힌다는 연어과 생선 ‘오물(omul)’을 넣고 끓인 수프와 빵은 아쉬운 대로 먹을 만했다.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하트 모양을 닮았다는 ‘사랑의 언덕’을 거쳐 마지막 경유지인 우주르 만에 들렀다. 굵직한 몽돌이 깔린 호숫가에 연신 파도가 밀려오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치 우리나라 남해안의 어느 몽돌해변을 찾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양말과 신발을 벗고 호수에 발을 담갔다. 온몸이 저릿할 만큼 물이 차갑다. 그렇게 차가운데도 비키니를 입은 러시아 미녀들은 유유자적하며 수영을 즐겼다.

알 수 없는 존재가 지켜준다는 믿음

우아직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후지르 마을이 고향처럼 편하게 다가왔다. 이 둘째 날에는 작은 백사장을 사이에 두고 부르한 바위와 마주보는 언덕에 텐트를 펼쳤다. 그곳 앞에 앉아서 호수와 언덕, 사람과 바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쏜살처럼 흘렀다. 기대했던 해넘이는 의외로 밋밋했지만, 해가 사라진 뒤에 놀라운 반전이 시작됐다. 서쪽 하늘부터 노을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바이칼 호와 서쪽 하늘이 온통 선연한 붉은빛으로 가득했다. 먼 길을 온 이방인에게 바이칼 호가 주는 선물 같았다.

부르한 바위 옆에서 보내는 두 번째 밤도 황홀했다. 여전히 빛나는 별빛과 은하수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부르한 바위 뒤편 하늘에는 붉은 기운까지 드리워졌다. 비좁은 텐트에서 홀로 보내는 밤은 더없이 편안했다.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까닭 모를 믿음까지 생겼다. 언젠가 다시 바이칼 호를 찾는다면, 그때도 나는 후지르 마을의 어느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홀로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시베리아 ‘푸른 눈’에 빠져 잠 못 이루는 밤이여!

별빛 쏟아지는 바이칼 호에서 한 캠핑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여행정보

● 올혼 섬에서의 캠핑 안내

올혼 섬 중심인 후지르 마을에는 캠핑할 만한 곳이 많다. 부르한 바위 부근의 나지막한 언덕과 풀밭, 백사장 등에서 아무런 규제 없이 캠핑이 가능하다. 특히 백사장 옆에 울창한 솔숲과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진 후지르 마을 북쪽 해변이 가장 인기 있는 캠핑 사이트다. 페스찬카 부근의 침엽수림 내에서도 캠핑할 수 있다.

● 숙식

여름철 성수기만 아니면 올혼 섬 후지르 마을 현지에서 직접 숙소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서는 대부분 숙식을 함께 묶어 숙박비를 산정한다. 아직까지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으므로 현지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는 것이 좋다.

● 가는 길

- 매주 2회(월, 금) 왕복 운항하는 대한항공의 이르쿠츠크 직항노선이 있지만, 올해는 10월 3일까지만 운항했다. 직항노선이 없을 경우 중국 베이징, 칭타오 등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해야 한다.

- 속초항에서 카페리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다음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해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고 가는 길도 복잡한 것이 단점이다.

- 바이칼 호는 러시아 현지에 있는 전문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다. 이르쿠츠크에 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BK투어(www.bktour.kr 서울사무소 문의 02-703-1373)가 추천할 만하다.



주간동아 2014.10.13 958호 (p60~62)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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