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8

2014.10.13

따뜻한 밥과 은어조림 혀가 녹는다

경북 안동의 맛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4-10-13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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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밥과 은어조림 혀가 녹는다

    ‘물고기 식당’의 은어조림과 고봉밥(오른쪽 위). 소박하지만 정직한 맛이 배어 있다.

    1976년 안동댐이 생겼다. 낙동강 본류를 거슬러 오르던 은어는 댐에 가로막혀 사라졌다. 안동댐에는 쏘가리, 붕어가 터를 잡았다. 바닷물과 민물을 오가며 자유롭게 헤엄치던 은어가 사라지면서 전설의 은어국수도 사라졌다. 낙동강 지류에서 은어 같은 민물고기를 잡던 어부는 그물을 내려놓고 식당 주인이 됐다.

    안동 시내에 있는 ‘물고기 식당’의 원초적이름은 물고기를 그리워한 주인의 내면이다. ‘물고기 식당’에서는 은어조림을 판다. 태백산맥 너머 울진에서 잡힌 은어는 고등어나 상어와 함께 차에 실려 안동으로 온다.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에는 깊은 마당이 있다. 작은 방마다 테이블이 하나씩 놓여 외할머니 집처럼 친근하고 포근하다. 안동 출신 후배 의사는 이 집을 몹시 사랑한다. 오랜 단골을 노부부가 반긴다. 방에 앉으니 ‘물고기 식당’답게 은어와 피리(피라미) 조림, 튀김이 메뉴판을 채우고 있다.

    은어조림이 이 식당의 간판 음식이다. 직접 만든 정갈한 반찬이 상 위에 깔린다. 후배는 경북 토속 음식의 투박함과 정직함이 배어 있는 음식들이라며 반찬보다 맛깔스러운 멘트를 연발한다. 이 집에는 종업원이 없다. 밥이든 찬이든 남에게 맡길 수 없는 노부부의 위대한 결단 때문이다.

    밥은 양은냄비에 방금 지은 것을 내놓는다. 두 사람이 먹기에 너무 많다. 여주인이 냄비에서 밥을 퍼 그릇에 담는다. 그릇 높이의 2배 정도 되는 고봉밥이다. 양은냄비에 누룽지가 제법 두툼하다. 밥이 담기고 된장찌개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은어조림이 등장한다. 된장을 걷어내자 은색의 은어 몸통이 나타난다. 숟가락으로 몸통을 긁어내면 은어살이 한 숟가락 담긴다. 그걸 밥 위에 얹자 밥의 열기와 은어의 온기가 만나 향이 먼저 혀와 뇌를 부순다. 막 지은 따스한 밥, 된장을 몸속에 담았지만 은어 고유의 수박향을 간직하고 있다.

    2년이나 숙성됐지만 군내가 나지 않는 시원하고 개운한 배추김치가 음식을 완성한다. 된장을 기본으로 한 소박하고 맛있는 반찬들도 쉼 없이 위장으로 들어간다. 배가 불렀지만 이어서 나온 누룽지를 외면할 수 없다.



    안동 시내를 조금 벗어난 와룡면 중가구리 동악골에는 매운탕집이 10여 군데 몰려 있다. 안동댐으로 은어는 잃었지만 수많은 민물고기가 잡히면서 생겨난 매운탕거리다. 민물고기는 은어를 제외하면 비린내가 심해 음식을 하기가 쉽지 않다. 민물고기 요리를 잘하는 집은 대개 된장 달인이다. ‘동악골가든’은 안동 토박이가 즐겨 찾는 곳이다. 커다란 옹기냄비에 메기와 시래기, 토란대와 된장, 고추장을 넣고 끓여낸 메기매운탕은 구수하면서 진하고 얼큰하며 시원하다.

    옥야동 중앙신시장에는 선지국밥집 ‘옥야식당’이 있다. 선지국밥이라 이름을 붙였는데도 사람들은 육개장이니 경상도식 소국밥이니 하며 저마다의 기준으로 음식을 재단하고 평가한다. 투박한 정육점형 식당 안에 들어서면 고소한 고깃국 냄새에 위장이 먼저 반응한다. 냄새는 맛보다 강력한 미각의 본체다. 한우 살코기로 우려낸 맑은 육수에 배추와 단맛이 강한 대파의 하얀 부분만 넣고 끓여낸 국물은 균형이 잘 맞는다. 여기에 은근한 단맛이 기분 좋게 입안에서 감돈다.

    고소한 선지와 살코기, 붉은 기름. 여러 사람이 고기를 나눠 먹으려고 만든 생존 음식에서 출발했지만, 고기와 국물에 대한 깊은 이해 덕에 선지국밥 한 그릇은 미식의 음식이 됐다. 자연의 것들을 곱게 다듬어 최고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안동 사람들의 저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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