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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땀 뻘뻘 흘리며 삼계탕 한 그릇 여름 무더위 거뜬

서울 삼계탕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땀 뻘뻘 흘리며 삼계탕 한 그릇 여름 무더위 거뜬

땀 뻘뻘 흘리며 삼계탕 한 그릇 여름 무더위 거뜬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이른 더위로 여름 음식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냉면과 물회, 막국수가 ‘이냉치열(以冷治熱)’의 대명사라면 삼계탕과 보신탕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의 간판이다.

한국인에게 닭은 여름 음식이었다. 닭찜, 연계(영계)찜, 닭죽, 닭백숙, 초계탕 같은 닭 요리는 대개 여름에 먹는다. 1773년 ‘승정원일기’에는 ‘연계탕(軟鷄湯)’이 기록되어 있다. 이 당시 등장하는 ‘계탕’들은 건더기 중심이 아니라 국물 중심이었다. 닭을 달여서 그 국물을 약으로 먹었다.

닭과 삼을 함께 먹는 ‘삼계(蔘鷄)’는 개화파 김윤식의 일기 ‘속음청사(續陰晴史)’에 인삼과 닭을 넣고 푹 고은 ‘삼계고(蔘鷄膏)’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고아 낸(膏)’ 국물을 마시는 약이다. 삼계탕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10년 일본인이 작성한 ‘중추원조사자료’다. 이 자료에 ‘여름 3개월간 매일 삼계탕을 약으로 먹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보약이 아닌 요리로서 지금의 삼계탕과 가장 유사한 기록은 1917년 ‘조선요리제법’이란 조리서에 ‘닭국’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닭을 잡아 내장을 빼고 발과 날개 끝, 대가리를 잘라버리고 배 속에 찹쌀 세 숟가락과 인삼가루 한 숟가락을 넣고 쏟아지지 않게 잡아맨 후에 물을 열 보시기쯤 붓고 끓인다’고 적고 있다. 1924년 발간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같은 조리법의 요리가 한자로 ‘계탕(鷄湯)’이란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1920년대 광고에도 계삼탕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인삼은 최고 건강식품이었다. 인삼을 활용한 약이 쏟아지면서 인삼은 부자 음식에서 중상층 식재료와 약재로 확대된다. 50년대에는 인삼가루를 넣은 닭국물이 등장하면서 식당주인들이 ‘계삼탕’이란 이름을 붙이고 영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삼계탕이 대중음식으로 본격화한 것은 60년대 양계산업이 시작되고 육류 소비가 늘어난 70년대 중반 이후다.



‘중앙일보’ 건너편 ‘고려삼계탕’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1960년대 초) 삼계탕 전문점이지만, 최근 들어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더 많이 찾는다. 중국인 관광객은 ‘토속촌삼계탕’에도 넘쳐난다. 50일간 키운 ‘와룡’이라는 닭과 한약재 등 30여 가지 재료를 섞어 끓여 낸 걸쭉한 국물과 부드러운 살코기는 중국인에 앞서 한국인이 더 사랑하는 음식이다. 이 집 삼계탕이 유명해진 데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열렬한 사랑도 있었다.

신길동 ‘호수삼계탕’은 탕이라기보다 삼계죽 같은 삼계탕을 낸다. 들깨가 가득한 죽에 작은 닭이 들어 있다. 닭은 살도 별로 없고 푹 삶아 들깨죽 속에서 산화한다. 이 이상한 삼계탕을 먹으려고 줄을 선다. 식당은 네댓 개 빌딩에 분산되어 있다. ‘호수삼계탕’이 홀로 삼계탕 거리를 이루는 진기한 곳이다.

‘호수삼계탕’과 가까운 7호선 신풍역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인 강남구청역 주변에는 ‘논현삼계탕’이 있다. 이곳은 ‘호수삼계탕’ 대척점에 선 국물 중심의 삼계탕을 낸다. 맑고 진한 국물을 먹다 보면 한국인의 탕 사랑과 높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남영동 용산경찰서 근처 ‘강원정 삼계탕’은 들깨를 갈아 넣은 진한 국물과 해바라기씨에서 나오는 견과류 특유의 고소함이 곁들여진 독특한 삼계탕을 판다. 한옥집을 개조한 식당은 손님이 넘쳐나도 음식 맛을 위해 확장하지 않는다. 점심과 저녁 시간에 정해진 양만 팔아 음식에 대한 자기 통제가 엄격하다.

보양식에서 출발했지만 미식 차원에 도달한 삼계탕 한 그릇에 한식(韓食)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겼다.

땀 뻘뻘 흘리며 삼계탕 한 그릇 여름 무더위 거뜬

‘논현삼계탕’ ‘호수삼계탕’ ‘토속촌삼계탕’(왼쪽부터).





주간동아 2014.07.14 946호 (p67~67)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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