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6

2014.07.14

팬택, 죽느냐 사느냐

이동통신 3사 출자전환 땐 재가동 가능…마케팅 비용 부담 때문에 의사 결정 미뤄

  • 정호재 채널A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4-07-14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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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택, 죽느냐 사느냐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등 중국 주요 도시 백화점의 가장 좋은 자리에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 매장이 들어서 있다. 아예 백화점 전면 광고판을 차지한 곳도 적잖다. 특히 올해는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 젊은이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중국 전역 삼성전자 대리점 앞에 전지현, 김수현 두 배우의 실물 크기 입간판을 발 빠르게 세워놓기도 했다. TV나 냉장고가 아닌, 최신 휴대전화 ‘갤럭시 S5’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삼성전자의 마케팅비 지출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매출액의 5% 가까이를 순전히 글로벌 마케팅에 쓴다. 그 덕인지 중국 소비자 사이에도 ‘고급 스마트폰 1위는 삼성, 그다음은 애플’이라는 명제가 공식처럼 통용된다. 중국 젊은이에게 100만 원을 넘나드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상류층을 뜻하는 ‘명품’인 것이다.

    3월 이후 2차 워크아웃(기업재무개선) 상태인 국내 3위 휴대전화 제조기업 팬택의 미래에 국내 제조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팬택은 20년 이상 무선 관련 제품을 생산해온 국내 정보통신(IT) 제조 벤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동안 순수 국내 기술진의 연구개발(R·D) 능력으로 험난한 파고를 헤쳐왔지만 점차 힘에 부치고 있다.

    국내 IT 제조 벤처의 상징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 측은 “팬택의 청산 가치보다 존속 가치가 더 크다”며 주요 채권단의 희생(출자전환)을 바탕으로 팬택의 경영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다. 금융권이 3000억 원을, 그리고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이통) 3사가 1800억 원을 출자전환해준다면 생산시설을 재가동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출자전환은 빚을 주식으로 바꿔주는 절차를 말한다. 채권단이 기업 청산을 통해 남은 자산을 갈라 먹는 ‘빚잔치’를 하지 말고, 주식으로 바꿔 함께 기업 가치를 높이는 투자자로 남자는 뜻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자는 가장 많은 채권을 손에 쥔 금융권이 아니라 이통 3사다. 팬택은 해외 판매 비중이 그리 큰 회사가 아니다. 이른바 내수용 기업이다. 즉 팬택 제품의 국내 판매를 담당하는 이통 3사의 ‘동의’가 팬택 워크아웃 탈출의 선결 과제라는 얘기다.

    결국 채권단이 1차로 기한을 정한 7월 8일 이통 3사는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채권단은 14일까지 제출 시한을 연장해주기로 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사실상 협상이 끝났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내 이통 3사의 1년 마케팅비는 8조 원에 달한다. 이통 3사가 팬택으로부터 받아야 할 1800억 원은 ‘판매보조금’이란 명목으로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깎아주는 돈이다. 이통사 처지에서는 그리 심각한 액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선심 쓰듯 팬택의 부활을 도울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정도 있다. 지난 4~5년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지형이 빠르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유통상인들의 팬택 살리기

    팬택, 죽느냐 사느냐
    1990년대 초 삐삐(무선호출기)를 제조하며 벤처기업의 상징으로 떠오른 팬택은 영광의 순간보다 고난의 시간이 더 길었던 기업 가운데 하나다. 이미 2007년부터 2011년까지 1차 워크아웃을 거쳤고 올해 초 2차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틈바구니 속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팬택의 문제점으로 기술력이나 제조 능력의 상대적 열세를 지적하는 이도 많았다. 그리고 팬택이 팔릴 경우 중국 기업이 팬택을 인수해 빠르게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 목소리가 높았다. 이른바 ‘중국 위협론’이다. 실제 이는 1차 워크아웃을 무사히 통과한 남모를 배경이 되기도 했다.

    최근 팬택의 기술력은 세계 수준에 근접해 있다. 최근 팬택이 내놓은 제품 ‘베가 아이언’을 써본 이들은 “삼성과 LG에 뒤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나은 점이 많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를 놓고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 능력의 전반적인 향상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2009년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이 세계 시장을 양분하는 동안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국 기업의 부상이다. 최근 들어 중국 스마트폰 제조기업의 기술력과 제조 능력은 세계적 수준에 근접했다. 브랜드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중국의 애플이라 부르는 샤오미(小米), 세계 제1의 통신제조기업을 꿈꾸는 화웨이(華爲), 세련된 레노버(聯想), 중국 휴대전화 대표 브랜드 ZTE 등이 그야말로 용호상박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중국 스마트폰의 장점은 값싸고 품질도 기대 이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가격경쟁력은 국내 3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국제 최신 스마트폰의 가격은 200~500달러 내외다. 휴대전화의 주요 부품이 중국에서 생산된다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저가 전략의 승리다. 기술 수준도 평준화돼 최근 인도의 모 기업은 누구라도 편하게 쓸 만한 스마트폰을 8만~9만 원에 찍어낼 수 있는 조립식 키트를 팔겠다고 나설 정도가 됐다.

    이에 대응하는 삼성전자, 애플, 소니, HTC 등 기존 글로벌 업체의 전략은 이른바 브랜드와 마케팅으로 쏠리고 있다. 이미 특수 기술로 스마트폰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판단이다. 어차피 IT 부품은 거의 대부분 중국 현지에서 생산된다. 조립도 중국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구글이 제공하는 운영체제(OS)도 이제는 일정 수준에 도달해 버전별 차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삼성전자가 매년 10조 원 가까이를 글로벌 마케팅에 투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세계 시장 3~5위를 오가는 LG전자 역시 2013년 MC 부문 마케팅비로 9000억 원을 썼다. 2012년 5441억 원 대비 64%가량 증가한 액수다. 올해는 1조 원 돌파가 유력시된다.

    이제 스마트폰 판매 시장에서 제일 중요한 건 고해상도 카메라나 지문인식 같은 첨단기술과 기능보다 ‘브랜드’와 ‘마케팅’이라는 얘기다. 그것도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싼값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국내 제조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 이통 3사가 팬택의 출자전환에 주저하는 이유는 팬택이 앞으로 이 같은 엄청난 마케팅비를 계속 지불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800억 원이 문제가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 싫다는 의사로 비친다.

    이통 3사가 끝내 출자전환을 거부하면 팬택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팬택의 부활을 돕는 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7월 8일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 소속 상인들이 팬택 살리기에 나섰다. 이들은 “팬택은 한국 벤처의 상징으로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며 “이에 우리 유통상인은 팬택으로부터 받아야 할 판매 장려금 일부를 출자전환할 수 있다”면서 이통 3사의 동참을 호소했다. 아직까지 팬택은 국내 시장에서는 신뢰와 인심을 다 잃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과연 팬택은 중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대약진과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명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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