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5

2014.07.07

마음의 거울 닦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문화유산 3곳으로 ‘힐링 여행’

  • 백승선 여행칼럼니스트 100white@gmail.com

    입력2014-07-07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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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힐링(healing·치유) 여행이 몇 년 전부터 유행이다. 힐링 여행은 마음의 상처를 씻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과정이다. 마음을 다스리기 좋은 세계의 구석 3곳을 소개한다.

    마음의 거울 닦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오랜 시간 흘러내린 온천수가 만든 파묵칼레에서 클레오파트라도 자주 온천을 즐겼다고 한다.

    낮엔 하얀 목화성 밤엔 남극에 있는 듯

    터키 파묵칼레

    터키어로 ‘파무크(Pamuk)’는 목화, ‘칼레(Kale)’는 성이라는 뜻인데, 파묵칼레(Pamukkale)는 멀리서 보면 정말 솜으로 만든 요새처럼 보인다. 이 석회붕 지대는 수천 년 동안 지하에서 석회 성분이 함유된 뜨거운 온천수가 나와, 산의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형성됐다. 신비하고 환상적인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30~36도의 따스한 쪽빛 온천수를 맨발로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녹는 듯하다.

    오랜 시간 멈추지 않고 흘러내린 온천수가 만든 70m 높이의 파묵칼레는 질 좋은 칼슘, 중탄산염을 함유한 온천수로 이미 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각광받아 로마 황제와 클레오파트라가 자주 찾아와 온천을 즐길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마음의 거울 닦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해질녘이면 하늘이 붉게 물드는 장관이 연출된다(위). 이곳엔 BC 2세기 에우메네스 2세가 세운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남아 있다.

    BC 2세기 페르가몬의 왕 에우메네스 2세가 세운 파묵칼레는 처음에는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만 있었는데 11세기 후반 셀주크 제국에 점령했을 때 파묵칼레라는 이름이 붙었다.

    무분별한 개발과 산 정상까지 들어선 호텔 등으로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훼손됐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아름다움을 되찾았다. 미국의 한 여행잡지에서 파묵칼레를 소개한 짧은 글이 떠오른다. ‘멀리서 보면 만년설이 덮인 듯한 곳, 가까이에서 보면 물이 얼어붙은 폭포 같은 곳’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

    터키의 신비로운 자연을 대표하는,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작품인 파묵칼레는 세계 모든 여행자가 입을 모아 추천하는 신비한 여행지 중 하나다. 가깝게 지내는 한 여행작가는 “이곳에서 낮에는 하얀 목화성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해가 질 때는 눈부시게 빛나는 노을을 만끽할 수 있으며, 밤에는 남극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유적지 입구에 세워진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의 그림을 보며 15만 명이 생활하던 당시 모습을 상상해봤다. 번성했던 이 도시는 1354년 대지진으로 붕괴돼 땅속에 묻혀버렸고,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후 120년이 넘도록 발굴과 복원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산 중턱에서 발견된 수용인원 1만5000명 규모의 원형극장은 지어진 지 2000년 가까이 됐음에도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으로 당시 도시 규모와 인구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유적지다. 원형극장 맨 위 객석에 앉으면 멋지게 펼쳐진 파묵칼레의 전망을 볼 수 있다.

    이제 이곳 원형극장에서는 더는 공연을 볼 수 없지만, 그 앞으로 펼쳐지는 파묵칼레 풍경은 마치 시시때때로 옷을 갈아입으며 공연하는 연주자들의 움직임 같다.

    파묵칼레에서는 모두 아이처럼 맨발로 걸어야 한다. 맨발이 된 사람은 걸을 때마다 따스한 온천수가 발을 슬며시 어루만져주는 듯한 느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자연의 시간이 빚어놓은 신비한 결정체, 하루 종일 앉아만 있어도 치유가 되는 행복한 곳, 그곳이 바로 파묵칼레다.

    마음의 거울 닦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전망대에 서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엘캐피탄’과 ‘브라이덜 베일 폭포’ ‘하프 돔’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다양한 동식물의 보고 치유와 회복 공간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걸리는 캘리포니아 주 중부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 산맥 서쪽 사면에 위치한 산악지대에 있다. 요세미티는 이 지역에 출몰하던 회색 곰을 지칭하는 말이다. 빙하의 침식작용이 300개 넘는 호수와 폭포, 계곡을 만들었다.

    1864년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의 서명으로 국립공원이 된 요세미티는 6월 30일로 150주년을 맞았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된 이곳에는 1400여 종의 식물, 많은 종의 포유류와 조류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해 그야말로 자연의 보고다. 자연만큼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주는 곳이 바로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이곳에는 연간 300만 명에 이르는 여행자가 미국 전역과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기암절벽들로, 그중에서도 높이 1000m의 거대한 화강암이 수직으로 솟은 지상 최대의 단일 화강암 ‘엘캐피탄(El Capitan)’이 인기다.

    마음의 거울 닦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마치 칼로 반을 자른 듯해 ‘하프 돔’이라 부르는 바위는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의 로고에도 새겨져 있다(왼쪽). 웅장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침묵이 흐르는 곳,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전망대에 서면 왼쪽으로는 요세미티에서 가장 유명한 엘캐피탄, 오른쪽으로는 ‘브라이들 베일 폭포(Bridal Veil Falls)’는 물론, 멀리 삼각형 모양의 유명한 ‘하프 돔(Half Dome)’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하프 돔은 8700만 년 전 생겨난 높이 1443m의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이다.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거대한 암벽이 마치 칼로 반을 자른 듯해 하프 돔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한여름엔 바위 표면 온도가 38도 가까이 올라간다. 정상까지 트레일이 설치돼 있으며 ‘글레이셔 포인트(Glacier Point)’에서 이 하프 돔과 함께 요세미티 계곡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 특히 젊은 층이 좋아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로고도 이 하프 돔을 형상화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25센트 주화에도 하프 돔과 함께 존 뮤어가 새겨져 있다. 요세미티의 본래 모습이 훼손되지 않게 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뮤어는 자연은 최대한 원래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 요세미티를 미국의 대표 국립공원으로 만든 인물이다.

    마음의 거울 닦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브라이덜 베일 폭포.

    또 하나의 볼거리인 브라이덜 베일 폭포는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 모습이 바람에 나부끼는 신부 면사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유난히 폭포를 좋아하는 미국인에게 특히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는 브라이덜 베일 폭포 말고도 어퍼 폭포(Upper Fall), 캐스케이드(Cascade), 로어 폭포(Lower Fall)로 이뤄진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가 있다. 이 세 폭포의 총 낙차는 739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눈이 녹아 수량이 가장 풍부한 5~6월이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또 120m 높이에 밑동지름이 8m가 넘는 수천 년 된 거목이 장관을 이루는 ‘자이언트 세쿼이아(Giant Sequoia)’ 군락도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즐길 수 있는 여러 방법 가운데 초록색 트럭이 끄는 차를 타고 공원의 주요 지점을 둘러보는 밸리 플로어 투어(Valley Floor Tour)가 있다. 약 3만 원의 비용으로 2시간 동안 공원을 둘러보는 코스로, 파크레인저라 부르는 가이드가 함께 탑승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대한 설명과 함께 여러 정보를 알려준다.

    무엇보다도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 그리고 맑은 공기가 가득한 자연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시간. 파크레인저가 손짓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거기엔 어김없이 풍경 사진의 원조라 부르는 앤설 애덤스의 작품 같은 풍광이 펼쳐져 있다.

    마음의 거울 닦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10세기 세워진 발칸 반도 최대 수도원인 릴라 수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곳이다.

    오로지 침묵만 허용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

    불가리아 릴라 수도원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그리스 방향으로 약 117km를 더 가면 릴라 산 남서부 릴스카(Rilska) 강의 깊은 자락인 1147m 고지에 불가리아인의 영원한 안식처 릴라 수도원이 있다.

    굽이치는 산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속세와 떨어진 한적한 수도원이 나타난다. 릴라 산맥 아래 음전하게 자리 잡은 릴라 수도원은 10세기 세워진 발칸 반도 최대 수도원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서 유일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불가리아 종교 및 문화 본거지다.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수도원으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곳이다.

    릴라 수도원이 지금 모습으로 갖춰진 것은 14세기쯤으로, 360여 개의 방에 수도승이 모여 수도와 학업에 열중했다고 한다.

    산 위나 먼 곳에서 보면 마치 요새 같은 모습을 한 수도원은 수도원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이반 릴스키(St. Ivan Rilsky)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당시 치유능력을 지닌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 때문에 중세 통치자들은 치유능력을 얻으려는 마음에 릴스키의 유골을 차지하려 애썼다고 한다.

    릴라 수도원도 오래전 지진과 화마를 겪었다. 그러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재와 돌을 운반해 결국 이렇게 눈부신 아름다움을 가진 수도원으로 재탄생했다. 하마터면 소멸될 뻔했던 수도원의 성화들도 복원 노력으로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화가가 모두 힘을 합해 복원한 성화는 다양한 사람이 모인 만큼 색과 형태 또한 다양하다.

    수도원 중앙에 있는, 커다란 3개 돔이 얹힌 성모탄생교회의 벽면과 천장에 그려진 1200개의 프레스코화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림 속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내게로 마구 쏟아져 내릴 듯한 느낌이 든다.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경이로운 그림들이다.

    마음의 거울 닦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일상을 떠난 깊은 산속에서 만나는 릴라 수도원은 치유와 명상의 공간이다.

    성모탄생교회 옆에는 25m 높이의 흐렐류 탑이 화재나 지진에도 피해를 받지 않고 유일하게 처음 모습을 간직한 채 서 있다. 수도원 박물관 지하에는 수도사 라파엘이 12년이나 걸려 조각했다는 유명한 목조 십자가와 많은 역사 유품이 보관돼 있는데, 라파엘이 이 십자가를 조각하면서 너무 심혈을 기울인 까닭에 십자가 조각을 끝낸 뒤 소경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침묵만이 허락된 곳, 이곳 릴라 수도원은 역사가 1000년이 넘는다. 터키가 오랜 세월 불가리아를 지배하던 시절 기독교를 금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불가리아어로 된 서적을 읽는 것조차 제한했지만 릴라 수도원만은 예외였다. 그래서 불가리아 문화 지킴이 구실을 수행해온 이곳은 풍광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역사도 아름다운 곳이다.

    2005년 개봉한 ‘위대한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그동안 대중에게 절대 공개되지 않았던, 해발 1300m의 알프스 깊은 계곡에 자리한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고 19년이나 기다렸다고 한다. ‘침묵’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고집스러운 감독의 투지와 신념.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침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때 느꼈던 침묵의 감동을 릴라 수도원에서 다시 느꼈다. 시끌시끌하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복잡하던 머리가 냉정히 정리된다. 불가리아 사람들이 영혼을 치유하는 이곳에서 내 불안한 영혼도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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