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1

2014.06.09

헐, 월드컵 경기 못 볼 수도 있다고?

지상파 방송사, 유료방송사업자에 재전송료 요구 팽팽한 대립

  • 권건호 전자신문 기자 wingh1@etnews.com

    입력2014-06-09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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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월드컵 경기 못 볼 수도 있다고?
    세계인의 축제 브라질월드컵 개막이 다가왔지만 자칫하면 TV로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지 못할 수도 있다. 월드컵 중계권을 가진 지상파 방송사들이 케이블채널과 IPTV 등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재전송료를 요구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각 사업자에게 수억~수십억 원에 이르는 재전송료를 요구했고, 유료방송사업자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유료방송업계는 월드컵 같은 국민적 스포츠 행사에 대해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해야 할 지상파 방송사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됐다며 맹비난했다.

    양측이 협상을 진행했지만, 의견 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아 ‘블랙아웃’(Black Out·송출 중단)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5월 중순 SBS는 케이블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에게 브라질월드컵 재송신료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어 일주일 뒤 KBS와 MBC도 같은 내용의 공문을 MSO 측에 발송했다. 지상파는 이후 IPTV에도 같은 요구를 전달했다.

    “월드컵 방송하려면 돈 더 내라”

    지상파 방송사들은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별도의 재전송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브라질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한 SBS는 FIFA에 중계권료로 7500만 달러(약 768억 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높은 중계권료와 함께 최근 급격히 하락한 광고 매출에 의한 적자를 만회하겠다는 전략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침몰 사고 영향으로 광고 경기가 급격히 위축하면서 4월 지상파 방송사 광고 규모는 전년에 비해 22%나 하락했다.

    재전송료 요구에 대해 유료방송사업자는 불합리한 ‘이중 부담’ 요구라 수용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미 지상파 방송사와 채널 재송신에 대한 가입자당 재송신료(CPS) 계약을 했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월드컵 경기 역시 채널 재송신의 일부라는 처지다.

    한 유료방송사업자 관계자는 “지상파가 요구하는 대로 월드컵 재송신료를 주게 되면 앞으로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마다 돈을 달라고 할 것”이라며 “유료방송사업자가 내는 재송신료는 결국 가입자인 국민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해야 할 지상파가 국민 부담을 가중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양측이 대립하는 가운데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각자 처지만 재확인했다. 추가 협상을 지속하기로 했지만, 양측 입장 차가 극명해 합의가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월드컵 개막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현 상태가 지속되면 월드컵 경기 송출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헐, 월드컵 경기 못 볼 수도 있다고?

    ‘이영표 KBS 축구해설위원 위촉식’에서 위촉장을 받은 이영표가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MBC는 김성주를 비롯해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송종국과 안정환을 해설위원으로 영입해 자존심 회복에 나선다. SBS 2014 브라질월드컵 간담회에서 김동완, 장지현, 차범근, 차두리, 박문성 해설위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공공성은 뒷전, 돈벌이만 급급

    헐, 월드컵 경기 못 볼 수도 있다고?
    지상파 방송사의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재전송료 요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SBS가 올림픽과 월드컵의 독점 중계권을 확보하면서 KBS와 MBC는 물론, 유료방송사업자에게도 재전송료를 요구한 바 있다. 당시 SBS와 다른 지상파 방송사 간 소송전이 벌어졌고, 각사 뉴스를 통한 비방전도 전개됐다. 유료방송사업자와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지상파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스포츠 이벤트에 대해 재전송료를 요구하는 것은 방송사로서의 공공성은 저버리고 돈벌이에만 급급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국민 자산인 전파를 사용하면서 국민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어서다.

    ‘보편적 시청권’ 확보를 둘러싼 법적 논란도 나온다. 방송법은 국민 관심이 큰 체육경기대회 등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또 방송법 시행령에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주요 이벤트는 국민 전체 가구 수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지상파 커버리지가 90%를 넘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상파 직접 수신가구 비율이 7~8%에 불과하고, 90% 이상의 가구가 유료방송을 통해 지상파를 시청하는 만큼 지상파 방송사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유료방송사업자가 재전송하지 않으면 보편적 시청권 기준인 90%를 채울 수 없다.

    더구나 지상파 방송사 스스로 과당경쟁해 중계권료를 높인 책임도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지상파 방송사의 컨소시엄인 ‘코리아풀(Korea Pool)’을 통해 중계권 협상을 벌여왔다. 그러다 2006년 SBS가 자회사인 SBS인터내셔널을 통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FIFA와 접촉해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부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4개 올림픽 중계권과 2010 남아공월드컵, 2014 브라질월드컵에 대한 독점 중계권을 획득했다. 독점 중계권 확보 과정에서 이전보다 훨씬 높은 중계권료를 지불했다. 당시 불필요한 국부 유출이라는 비난이 거셌다.

    독점 중계권을 확보한 SBS는 밴쿠버 겨울올림픽과 남아공월드컵으로 높은 광고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KBS, MBC와 송사에 휘말렸고, 유료방송사업자와도 재전송료 분쟁을 겪었다. 국민의 비난도 폭주했다. 단독 방송으로 중계방송의 양과 질이 모두 하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에는 지상파 3사가 공동으로 중계하는 대신, 부족한 수익을 유료방송사업자에 요구하는 셈이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이익 극대화를 모색하는 지상파 방송사들 때문에 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사업자 간 문제라며 뒤로 물러나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 보편적 시청권 확보를 제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스포츠 중계권료를 협상할 때 국가적 손실을 줄일 수 있도록 구속력 있는 단일 협상 창구 마련도 요구된다.

    한편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4월 말 케이블채널 사업자와의 간담회에서 “브라질월드컵 재송신과 관련한 갈등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시청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협상을 원만하게 이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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