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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김원곤 교수의 외국어 도전기

듣기·쓰기 시험 허둥지둥…아슬아슬 턱걸이 합격

중국어 HSK 6급, 열악한 조건 딛고 한 번 만에 합격 기쁨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듣기·쓰기 시험 허둥지둥…아슬아슬 턱걸이 합격

한어수평고시(HSK) 6급 시험은 중간 휴식시간 없이 듣기, 읽기, 쓰기 순서로 모두 135분간 치러졌다. 나는 가급적 평상심을 유지하며 시험에 임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맨 처음 본 듣기 영역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에서 듣기 공부를 해서인지 교실 스피커를 통해 시험 내용이 흘러나오자 갑자기 멍해졌다.

사실 이런 형식의 듣기 시험은 그 자체가 난생처음이었다. 학창 시절 철저히 독해와 문법, 어휘 위주로 시험을 봐왔기 때문에 더욱 낯설었다. 물론 사전에 열심히 듣기 시험에 대비하긴 했지만 현장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그러다 보니 청취 내용을 하나 둘 놓치게 되고, 놓친 것에 미련을 갖고 머뭇거리다 다음 내용도 놓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집중력이 현저히 흐트러졌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세월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듣기 영역이 씁쓸하게 끝난 뒤 그나마 희망을 걸고 있는 읽기 시험이 시작됐다. 미리 짜놓은 계획대로 가장 어렵고 점수를 따기 어려운 어법 부분은 뒤로 미루고 쉬운 문제부터 풀기 시작했다. 어휘를 포함해 단문 독해, 장문 독해에 이르기까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치렀다고 생각했다.

모든 영역서 만족하지 못한 시험

듣기·쓰기 시험 허둥지둥…아슬아슬 턱걸이 합격

김원곤 교수의 한어수평고시(HSK) 6급 합격증.

그런데 역시 어법 부분이 말썽이었다. 마지막으로 어법 문제를 풀려고 하니 어찌된 일인지 10문제 중 자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문제 유형 자체가 지금까지 그토록 열심히 공부해왔던 예상 문제들과 사뭇 달랐다. 시험 한 달 전부터 어법 부분만 따로 수강하며 들인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는 허탈감이 밀려오면서 시험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진짜 문제는 마지막 쓰기 영역에서 발생했다. 쓰기 시험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1000자 정도의 제시 지문을 400자 전후로 다시 요약 정리하는 방식이다. 정확히 976자로 구성된 시험 지문은 독일 한 이공대학의 법학 수업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법학 수업이 학생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매년 같은 시험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이라는 글로 시작해, ‘시험은 궁극적으로 학습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존재이지, 만일 시험이 오히려 학생들의 흥미를 잃게 한다면 시험이 가진 의미를 상실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다행스럽게 전체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의욕이 과한 나머지 사자성어를 동원해 멋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려다 보니 처음부터 글을 쓰고 지우기를 몇 번 반복하게 됐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이 꽤 흘러가 있었다. 그때부터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눈까지 침침해져 뒤늦게 부랴부랴 원고지 칸을 채워나갔지만, 요구하는 400자에는 한참 못 미치는 230자 정도에서 시험시간이 종료되고 말았다.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모든 영역에서 예상과 달리 만족스럽지 못하게 시험을 마치고 허탈한 심정으로 씁쓸하게 경기고 교정을 나섰다. 시간은 벌써 오후 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그렇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한 번 떨어져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더 가치 있는 교훈이 될 수도 있다’며 애써 나 자신을 위로했다.

시험 결과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격자 발표 날짜에 관심도 갖지 않았고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4월 13일 오전 학원의 중국인 여강사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공자아카데미 홈페이지에 합격자 발표가 떴다면서 시험 결과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옆에 컴퓨터가 있어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결과를 확인해봤다.

듣기·쓰기 시험 허둥지둥…아슬아슬 턱걸이 합격
또 다른 도전의 좋은 행운?

가장 먼저 내 성적표 우측 아래쪽에 있는 합격(合格)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합격이란 말인가!’ 그 순간 말 못 할 희열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세부 점수를 확인했다. 총점 181점이었다. 그야말로 합격 기준점인 180점을 아슬아슬하게 넘긴 것이다.

시험 전에는 이왕 합격할 바엔 적어도 200점은 넘겨야 체면이 서지 않겠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에 합격해서 기쁜 와중에도 성적 자체는 못내 실망스러웠다. 구체적인 점수를 확인해보니 듣기 55점, 읽기 73점, 쓰기 53점이었다.

그나마 듣기는 시험 전 예상 점수에 가장 가까운 편이었다. 최하 45점에서 최고 70점까지 기대했는데 55점 정도면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점수로 생각됐다. 그런데 읽기 73점은 매우 실망스러운 점수였다. 시험 전 85점에서 90점 사이를 예상했고, 가능하면 이 영역에서 더 좋은 점수를 올려 듣기에서 부족한 점수를 만회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험장에서 고전했던 그대로 점수 비중이 20%인 어법 부분에서 거의 점수를 받지 못한 것이다.

쓰기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록 400자 요구 분량에 상당히 못 미치는 230자 정도만 썼지만 나 나름대로 어려운 성어(成語)를 동원해가며 내용은 충실하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50%를 겨우 넘는 득점이었다. 아마도 적은 분량이 결정적인 감점 요인이 아니었을까 나 나름대로 추측해봤다. 평소 학원에서 쓰기 영역에 관한 한 아주 우수한 학생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에 더욱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60이 가까운 나이, 타이트한 스케줄, 28년 만의 시험, 눈병 등의 열악한 조건을 딛고 중국어 최고급 단계인 6급 시험에 한 번에 당당히 합격한 데 대한 즐거움은 그 어떤 사소한 아쉬움도 다 달랠 수 있었다.

며칠 후 인사도 할 겸 작은 선물을 들고 시험 준비지도를 해줬던 학원 강사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공자아카데미 홈페이지에 합격자가 발표되고 얼마 후인 4월 25일 HSK 한국사무국 명의로 정식 합격통지서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자! 어쨌든 이제 4개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 도전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181점이라는 아슬아슬한 턱걸이 통과 점수가 앞으로 이어질 도전에 좋은 행운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곧 닥쳐올 실패를 암시하는 불길한 전조인지 당시로선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간동아 2014.05.26 939호 (p70~71)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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