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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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가 그린 아폴리네르· 로랑생

서로를 알아본 두 연인 예술적 영감도 주고받아

  • 전원경 문화정책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4-04-28 13: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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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소가 그린 아폴리네르· 로랑생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앙리 루소, 캔버스에 유채, 131×97cm, 러시아 모스크바 푸시킨 박물관 .

    1907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화가들의 아지트 ‘세탁선’에 간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개로 새로운 멤버를 만난다. 마리 로랑생. 꿈꾸는 듯 크고 깊은 눈을 가진 열아홉 살 처녀이자,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 화가였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시와 평론을 쓰면서 생계를 잇던 스물두 살의 청년 아폴리네르는 대번에 그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두 사람은 피카소가 주도하던 ‘세탁선’ 수요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갔다.

    사실 둘 사이에는 예술가라는 공통점 외에도 비밀스러운 공통분모가 하나 더 있었다. 둘 다 사생아였다. 로랑생은 귀족 출신 아버지와 하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처지였고, 아폴리네르 역시 시칠리아인 퇴역 장교 아버지와 폴란드 귀족 어머니가 비밀리에 연애한 끝에 태어났다. 아폴리네르는 돈을 벌려고 시와 평론은 물론, 에로 소설까지 쓰는 그저 그런 작가였고 로랑생 역시 개인전 한 번 열지 못한 무명 화가였지만, 젊은 연인에게 빈궁한 처지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둘은 연인관계로만 머물지 않고 서로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아폴리네르는 로랑생에게 시를 써보라고 격려했다. 로랑생은 그를 중앙에 배치한 동료 화가들의 초상을 그려 연인에게 선물했다.

    1909년 ‘세탁선’ 멤버였던 화가 앙리 루소는 아폴리네르로부터 부탁받아 두 연인을 담은 초상을 그렸다. 이 그림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에서 아폴리네르는 마치 기숙학교 학생 같은 순진한 얼굴로 한 손에는 깃털 펜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종이를 쥐고 있다. 반면 약간 살집 있는 몸에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로랑생은 오페라 무대 위의 디바, 또는 그리스 연극에서 여신 역을 맡은 여배우 같은 모습이다.

    이들의 사랑은 5년 만에 엉뚱한 이유로 종말을 맞는다. 1911년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모나리자’ 도난 사건 때문이었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에서 누군가 ‘모나리자’를 떼어 들고 유유히 사라져 파리가 발칵 뒤집어졌는데, 범인이 이탈리아 남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뚜렷한 직업 없이 파리에 머무는 이탈리아인이란 이유로 용의자로 몰린 아폴리네르는 상테 감옥에 일주일간 구금됐다. 이 어이없는 사건으로 연인 사이에 조금씩 다툼이 생기다 1912년 둘은 결별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까지 무명 예술가였던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은 헤어진 뒤 각기 시인과 화가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폴리네르는 실연의 심경을 담은 시 ‘미라보 다리’를 시집 ‘알코올’에 발표해 큰 인기를 얻었고, 로랑생 역시 1912년 개인전을 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들에게 명성은 아픈 실연이 남기고 간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로랑생과 헤어진 후 ‘파리의 저녁’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아폴리네르는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걸려 서른여덟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로랑생은 13년 독일군 장교와 결혼했지만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조국 프랑스에서 추방당하는 기구한 삶을 살다, 21년 남편과 이혼하고서야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이후 56년 타계할 때까지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로랑생의 화실 벽에는 아폴리네르가 어머니 유품이라며 아끼던 기타가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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