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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시대의 통증, 잠시 잊으려 아픔을 삼킨다

신촌의 매운맛

  •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시대의 통증, 잠시 잊으려 아픔을 삼킨다

슬픔이 가득한 날, 매운맛을 찾는 사람이 많다. 매움한 건 맛이 아니라 통증이지만 한국인은 이 통증을 매운맛으로 인식한다. 한국은 마늘, 고추, 부추 같은 매운맛을 내는 식재료 사용이 세계 최고다. 1인당 고추 소비량이 헝가리, 미국보다 40배 이상 많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추는 임진왜란 때 일본이나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추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1614년 간행된 ‘지봉유설’이다. ‘지봉유설’에 나오는 고추는 식용으로 적합한 식재료는 아니었다. 고추 도입 초기부터 100여 년간 고추는 약용으로 쓰였고 장에 넣어 사용했다.

고추의 어원인 ‘고쵸’라는 말은 고추 도입 이전에도 한반도에 있었다. 진초, 천초(산초), 호초(후추)같이 매운 향신료를 통틀어 ‘초(椒)’ 혹은 ‘고쵸’라 불렀다. 이후 남미산 ‘번초(蕃椒)’가 들어오면서 고쵸는 지금의 고추만을 지칭하는 단어로 의미가 축소된다. 고추는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재배되면서 우리나라 고추란 뜻의 ‘아초(我椒)’로도 쓰였다.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에서 나온다. 캡사이신은 체지방 축적과 체중 증가를 억제하고 체내 흡수가 빠르며 중추신경을 자극해 부신속질 호르몬 방출을 늘리고 에너지 대사를 촉진한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매운맛을 많이 찾는 이유다.

2003년부터 서울 신촌을 중심으로 매운 고추를 사용하는 불닭 열풍이 불었다. ‘홍초불닭’으로 시작한 유행은 수많은 불닭 전문점을 낳았다. 2004년 10대 인기 상품으로 불닭을 선정했을 정도다. 그러나 무섭게 타오르던 불닭 인기는 몇 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 뒤를 안동식 달달한 찜닭이 이었지만 역시 몇 년 만에 시들해졌다. 유행이 지난 뒤 남은 집들은 ‘살아남는 자가 진정으로 강한 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신촌에서 이화여대로 연결되는 먹자골목에 있는 ‘신미닭발’도 그중 하나다. 뜨내기는 찾을 수 없는 좁은 골목에 자리한 작은 가게에는 손님보다 종업원이 많을 때도 있다. 이곳 매출 70%가 배달이기 때문이다.

칼로리가 낮은 닭발은 졸깃한 식감으로 먹는 음식이다. 닭발에 매콤한 양념을 바르고 하루 재워야 매운맛이 깊어진다. 닭발은 뼈가 있어야 더 맛있다. 뼈에서 닭발 살을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면 뼈를 발라낸 닭발은 먹기 편하다. 구수한 구운 내가 매콤한 양념과 졸깃한 식감을 완성한다. 오랜 단골은 주말이면 이 맛을 잊지 못해 배달을 해 먹는다.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도 제법 많다.

‘신미닭발’과 좁은 골목을 두고 마주한 ‘완차이’는 중식으로 유명한 집이다. 이 집 간판 메뉴는 예나 지금이나 매운 홍합이다. 중국 사천요리인 매운 홍합은 청양고추보다 매운 사천고추를 사용한다. 남해산 홍합은 기본적으로 질이 좋다. 검은 홍합 껍데기에 검붉은 고추 소스가 가득하지만 맵기만 한 건 아니다. 다진 쇠고기와 땅콩, 설탕 등이 들어가 홍합의 부드러운 식감과 어우러져 맵고 달달한 맛을 낸다.

시대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매운맛을 찾는다는 속설은 근거가 있는 게 아닐까. 맛도 아닌 작은 통증을 느끼며 삶의 통증을 잊으려고 말이다. 요즘 매운맛이 유난히 당긴다.

시대의 통증, 잠시 잊으려 아픔을 삼킨다

서울 신촌 먹자골목에 자리한 ‘신미닭발’의 매운 닭발(왼쪽)과 고추.





주간동아 2014.04.28 935호 (p63~63)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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