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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칵테일 <마지막 회> 보일러메이커

맥주에 위스키 잔 ‘퐁당’ 동서양 애주가 폭탄주 사랑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노먼이 호기롭게 먹던 그 술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맥주에 위스키 잔 ‘퐁당’ 동서양 애주가 폭탄주 사랑

맥주에 위스키 잔 ‘퐁당’ 동서양 애주가 폭탄주 사랑
‘흐르는 강물처럼’은 인기 배우 출신인 로버트 레드퍼드가 1992년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 저명한 미국 장로교 목사 노먼 맥클린(1902~90)의 자전적 소설에 바탕을 뒀다. 이 영화는 가족 간 사랑과 아픔, 그리고 인생의 참의미를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잔잔히 전달한 명작이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배경으로 허공을 가르는 플라이 낚싯줄의 모습은 예술적인 영상미로 이 작품에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줬다.

영화는 1900년대 초반 미국 몬태나 주 서부에 있는 미줄라 마을의 한 목가적인 풍경을 무대로 펼쳐진다. 노먼(크레이그 셰퍼 분)은 스코틀랜드 출신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 리버런드 맥클린(톰 스커릿 분)과 인자한 어머니(브렌다 블레딘 분), 그리고 동생 폴(브래드 피트 분)과 함께 비록 풍족하진 않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리버런드는 성실하게 목회 활동을 하는 한편, 플라이 낚시를 종교와 동일시할 만큼 평생의 취미로 삼고 있다. 그는 고지식하지만 한편으론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두 아들 노먼과 폴은 개성이 전혀 달랐다. 둘 다 강한 성격과 튼튼한 체력을 가진 점은 닮았지만, 장남인 노먼이 질서에 순응하며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면 폴은 자유분방하면서 체제에 반항하는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폴은 어릴 때부터 노먼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도 서슴지 않고 종종 돌출적인 행동도 했다.

폭탄주가 한국 술? 천만에

맥주에 위스키 잔 ‘퐁당’ 동서양 애주가 폭탄주 사랑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포스터.

장성한 두 형제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노먼은 꿈에 그리던 동부의 명문대인 다트머스칼리지에 합격해 영문학을 공부하려고 집을 떠난다. 반면 낚시와 고향 몬태나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폴은 ‘아직까지 잡아보지 못한 고기를 잡으려고’ 고향에 남아 그 지역 대학에 들어간다.



그로부터 수년 후 대학을 졸업한 노먼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폴도 대학을 마치고 지역 신문사 기자가 됐지만 불행히도 도박에 빠져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두 형제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이후 영화는 무척 사랑했지만 서로 이해할 수 없던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삶은 마치 흐르는 강물과도 같고,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노먼은 다시 강에 낚싯줄을 던진다.

국내 영화 팬 사이에서 늘 명화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이 추억의 작품에는 독특한 술 문화를 가진 우리가 절대 놓치기 어려운 칵테일이 등장한다. 바로 ‘폭탄주’다. 폭탄주는 영화에서 노먼이 사랑하는 제시(에밀리 로이드 분)에게 프러포즈한 뒤 한껏 들뜬 기분으로 술집에 있는 폴을 찾아왔을 때 처음 등장한다. 한껏 고무된 노먼은 바텐더에게 호기롭게 폭탄주 두 잔을 주문한다. 이윽고 바텐더가 맥주와 위스키가 담긴 잔을 따로 내놓자 그는 우리 눈에 익숙한 방법으로 맥주잔에 위스키 잔을 빠뜨린 뒤 단숨에 쭉 들이켜는 것이 아닌가.

잔을 비운 뒤에는 아예 빈 위스키 잔을 입으로 무는 세리머니까지 선보인다. 그다음 노먼은 제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노라고 폴에게 말한다. 폴은 이런 형을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그의 모든 마음은 이때도 도박판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폴은 폭탄주 대신 재빨리 위스키만 비우고 “형의 운을 빌려 도박판에서 돈을 따봐야겠다”고 말한 뒤 술집을 나간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이라면 폭탄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폭탄주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단순한 음주 방식을 넘어 술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 소개된 역사도 그리 길지 않은 이 음주 방법이 일순간 한국의 술 문화를 변혁에 가까울 정도로 바꿔놓은 것은 그만큼 이 술 속에 우리 정서에 부합하는 강렬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폭탄주 특유의 속전속결성과 함께, 서로 어울려 돌아가면서 마실 때 느끼는 묘한 일체성과 동질성이 일차적으로 거론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폭탄주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의 뇌리에는 자연스럽게 ‘폭탄주=한국 술’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술은 앞서의 영화 장면에서처럼 우리만 즐기는 음주 방법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고안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영어로는 ‘보일러메이커’

맥주에 위스키 잔 ‘퐁당’ 동서양 애주가 폭탄주 사랑
폭탄주는 원래 그 정의상 맥주가 든 큰 잔에 위스키가 든 작은 잔을 넣은 뒤 단숨에 마시는 음주 방법을 말한다. 이때 위스키 대신 보드카, 테킬라, 소주를 넣으면 각각 보드카, 테킬라, 소주 폭탄주가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형태의 음주 방법을 영어로는 ‘보일러메이커(boilermaker)’라고 한다. 영화에서도 노먼이 폭탄주를 주문할 때 “보일러메이커 두 잔 주세요”라고 말한다. 보일러메이커, 즉 폭탄주가 어떻게 칵테일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폭탄주는 칵테일 분류상 엄연히 맥주 칵테일의 한 종류다.

문헌에 의하면 영국 또는 미국에서 이미 오래전 만들어져 애용했다고 하지만, 그 정확한 유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론이 분분하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보일러메이커는 원래 과거 스팀엔진을 만드는 기술자를 지칭하는 말로, 1834년 처음 등장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일러메이커라는 음주 방법이 이들의 직업과 연관돼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관련 학자는 그전에 이미 칵테일을 가리키는 용어로 보일러메이커라는 말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또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여러 가설이 소개되고 있지만 정확한 답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보일러메이커의 큰 범주에 위스키를 먼저 마시고 바로 이어서 맥주를 마시는 방법도 포함하기는 하지만, 엄격하게는 위스키를 맥주에 넣어 마시는 것만 지칭한다. 물론 다 마실 때까지 입을 떼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맥주에 위스키를 첨가하는 방법에는 이 영화에서처럼 위스키 잔을 맥주잔에 빠뜨리는 방법이 가장 정통적이다. 그런데 또 다른 방법으로 맥주잔에 위스키 잔을 빠뜨리지 않고 위스키를 맥주잔에 부어 마시는 것도 있다. 이런 음주 방법은 영화 ‘토탈 이클립스’(1995)에서 잘 소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폭탄주야말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동서양 애주가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전통적인 음주 방법 가운데 하나라 볼 수 있다. 다만 폭탄주를 마신 뒤 흐르는 강물을 관조하는 낭만의 입구에 들어설지, 아니면 흐르는 강물에 덧없이 쓸려가는 후회의 길목에 들어설지는 결국 당신의 선택이다.



주간동아 2014.04.08 932호 (p60~61)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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