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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무인기 또 말 바꾸기 한국군 왜 이러나

“대공 용의점 없다”에서 “북한에서 제작”…일련의 도발 氣싸움에서 밀리는 형국

  •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무인기 또 말 바꾸기 한국군 왜 이러나

무인기 또 말 바꾸기 한국군 왜 이러나

20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100회 생일기념 군 열병식에 무인기가 등장했다(왼쪽). 3월 31일 백령도에서 발견된 북한의 무인 항공기.

최근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격과 추락한 무인기 2대는 남북 간 심상찮은 대결 분위기가 조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무인기 부분이다. 백령도에서 두 번째로 정체불명 무인기가 발견됐을 때 청와대가 보인 첫 반응은 “북한 것으로 생각하고 검토하고 있다”였다. 이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날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했던 것과 극명히 대비된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군은 편한 쪽으로 판단하려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3월 24일 경기 파주 야산에 추락한 무인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 정보당국은 “대공 용의점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여러 차례 “전혀 없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런데 백령도에서 또 무인기가 발견되자 그 기관은 “2개 모두 북한에서 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갑자기 180도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러니 안보 전문가들은 “우리 군의 정보판단을 믿을 수 없다” “우리 군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왜곡한다” “대통령에게는 정확히 보고하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한다.

북한군의 무인기 운용 사실이 처음 포착된 것은 천안함 사건 5개월 뒤인 2010년 8월 9일이다. 그날 낮 북한은 서해 NLL 이북으로 포탄 117발을 쐈는데, 그날 저녁 백령도와 연평도에 있는 우리 군은 북한이 띄운 무인기를 관측했다. 그리고 3개월 뒤 북한은 연평도 포격전을 일으켰다.



2년이 지나 김일성 탄생 100주년인 2012년 4월 15일 북한군은 군사 퍼레이드를 하면서 무인기를 공개했다(사진 참조). 이 무인기에 칠한 도장이 이번에 파주에서 발견된 무인기 도장과 흡사했다. 밝은 하늘색에 구름을 의미하는 흰색을 섞은 무늬다. 그런데도 중앙합동신문센터는 파주 무인기에 대해 “대공 용의점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다 백령도에서 같은 무늬를 가진 무인기가 발견되자 입장을 바꿔 “2개 모두 북한에서 제작한 것이 맞다”고 했다.

“좋은 게 좋다”는 식 정보 왜곡

무인기 또 말 바꾸기 한국군 왜 이러나

3월 24일 경기 파주에 추락한 북한 무인기.

안보 전문가들은 최근 남북군 대결에서 “우리 군이 심리전에서 밀리고 있다” “입으로만 국방을 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2010년 5월 24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상 발표를 한 후 우리 군은 “대북심리전 재개”를 선언했다 북한군 5군단이 “조준 격파 사격을 하겠다”고 하자 바로 심리전 재개를 포기했는데, 그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무더기 미사일 사격을 한 3월 27일 기관 고장을 이유로 북한 어선 한 척이 백령도 인근 NLL을 넘어왔다. 수상한 월선이었으므로 우리 군은 “돌아가라”는 방송을 거듭하다 날이 어두워져 ‘할 수 없이’ 나포에 나섰다. 그런데 어선에 타고 있던 북한 어민 3명이 철봉을 휘두르며 대들었다. 해군 UDT(특전단) 요원들은 진압봉을 뽑아 들고 그들을 제압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월선을 못 본 척하고 있던 북한군이 신속히 경비정 한 척을 보내 ‘끌고 가지 말라’는 식으로 위협했다.

북한 어민들은 귀순을 거부했다. 그들 가운데 2명은 대청해전에 참전했던 군관(장교)이고 2명은 군무원이라는 첩보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 어선으로 남북 긴장도를 높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해군은 어선과 어부들을 함께 돌려보내기로 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 북측에 배를 넘길 곳의 좌표를 통보하자 그곳으로 전날 저녁 어선을 따라왔던 1척을 포함해 북한 경비정 5척이 몰려왔다.

북한이 기 싸움을 해올 것이라 여긴 해군은 더 많은 함정을 내보낼까 하다 무력충돌을 의식해 이 어선을 완전 반대쪽 바다로 끌고 가 돌려보냈다. 그러자 북한은 3월 29일 어부들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내세워 “남측이 나포 과정에서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구둣발로 밟고, 목을 누른 채 팔다리를 꺾는 등 잔인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어 전 언론을 동원해 같은 주장을 반복하다 31일 우리 해군 측에 서해 NLL 7곳을 목표로 사격을 한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북측은 오후부터 통보한 지점으로 포탄 500여 발을 날렸다. 그런데 100여 발이 NLL을 넘어온 것으로 관측돼 해병대도 NLL 이북으로 K-9 300여 발을 쐈다. 이 해상 포격전 이후 우리 군은 “북한이 미리 사격 지점을 통보해왔고 그곳으로만 집중사격을 했다. 그리고 NLL을 넘어온 북한 포탄에 대해서는 그 3배에 해당하는 대응사격을 했다”고 자신있게 강조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북한군이 사격을 마무리하던 시각 백령도에서 정체불명 무인기가 추락함으로써 180도 바뀌었다. 2010년 8월 9일 사격 당시 북한은 무인기를 띄워 우리 군의 대응을 살핀 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격은 우리 군의 대응을 살피려는 위협사격이다. 북한은 이 무인기로 우리 군의 대응을 살펴봤다’ ‘파주 무인기는 이것을 촬영하기 위한 사전 연습이었다’는 판단이 나온 것.

그러나 이러한 군의 판단을 국민에게는 뒤늦게 알렸다. 문제는 대통령에게는 바로 알렸느냐는 것이다. 매일 새벽 ○시쯤 합동참모본부와 우리 군의 작전사급 부대, 그리고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 정보 관계자들은 화상 회의를 한다. 이때 이들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전군의 대응 정도가 달라진다. ‘주간동아’ 930호에서 밝혔듯, 천안함 사건 때 이들은 3차 남북정상회담을 의식했는지 연어급 잠수정이 사라진 것을 알았음에도 작전부대에 경고를 내리지 않는 가장 안일한 판단을 했다.

3월 31일 대응 너무 허약

이러한 사정을 아는 소식통들은 3월 31일 우리 군의 대응이 너무 허약했다고 지적한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NLL 이남은 영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럼 영해가 포격을 당하면 그 포격 원점을 3배로 공격해야 하는데, 우리 군은 NLL 이북 바다로만 사격을 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응도 ‘말로만’이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무더기 미사일 발사로 일련의 위기를 도발한 북한은 31일 사격을 통해 우리 군의 뱃심을 확인한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한 도발을 할 것이다.”

지난해 3월 20일 북한군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크루즈 미사일과 같은 무인타격기를 발사하는 시범을 했다. 북한군이 보유한 무인기나 무인타격기는 미군이 공대공이나 지대공 사격 연습을 위해 사용하는 표적기 등을 도입해 모방 제작한 것이다. 성능은 당연히 엉성하지만 저공비행을 하면 레이더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독일 드레스덴 연설을 맹비난한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통일 의지를 꺾으려고 도발과 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군사 전문가가 전혀 아니다. 따라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측근들이 어떻게 보고하느냐에 따라 대응 정도가 달라진다. 적잖은 소식통들은 우리 군이 최근 사태를 축소 보도하게 했다고 지적한다.



주간동아 2014.04.08 932호 (p44~45)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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