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4

2014.02.10

‘보통국가화’ 발톱 드러내는 일본

집단적 자위권 논의 속에는 ‘군대 보유’와 ‘전쟁 가능 국가’ 숨어 있어

  • 배극인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입력2014-02-10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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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전문가 간담회에는 찬성파만 모였다.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것 아닌가. 불이익에 대한 논의는 어떤 게 있었나.”

    2월 5일 일본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 하타 유이치로(羽田雄一郞) 민주당 참의원간사장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전문가 간담회를 들러리 세워 집단적 자위권을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아베 총리 답은 단호했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어 불이익에 직면했다. 국민 생명과 안전, 영토와 영해를 지키는 데 필요한 과제가 없는지 논의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일본의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1월 24일 개막해 6월 2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헌법 해석 변경을 끝내고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한다는 게 아베 총리 계획이다. 연말에는 일본 자위대와 미군의 역할 분담을 규정한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집단적 자위권을 미·일 안보 협력 틀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재무장과 밀접한 관련



    가이드라인은 유사시 자위대와 미군의 역할 분담을 규정한 문서로, 1978년 옛 소련의 공격을 상정해 처음 만들었다. 97년에는 한반도 유사 사태를 가정해 개정됐다. 연말 가이드라인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전제로 개정된다는 것은 한반도 유사 사태에 일본이 개입할 개연성이 커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논의 뒤에 숨어 우익 세력의 오랜 꿈인 ‘보통국가화’를 향해 돌진한다는 점이다. 보통국가화는 군대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현행 평화헌법을 뜯어고쳐 다른 나라처럼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여러 차례 일본의 침략을 당한 한국으로선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일본 속내는 무엇이고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총리 직속기구인 ‘안전보장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는 2월 4일 일본 도쿄 중심가에 자리한 총리 관저에서 회의를 갖고 영토와 영해 침입에 대해 자위대가 대처할 수 있는 사례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평상시와 유사시 사이에 놓인 잠재적 위기인 ‘회색지대’ 사태를 상정한 자위대의 대응력 강화와 관련 법 정비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외국 잠수함이 일본 영해에 침입해 퇴거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경우 △영해 내 해상과 낙도에서 무장집단이 일본 선박과 민간인에 대해 불법행위를 하는 경우 등을 집중 논의했다. 모두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싸고 영유권 갈등을 빚는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중국이 군인을 민간인으로 위장하게 한 뒤 센카쿠 열도를 기습적으로 점령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날 간담회에서 논의된 내용은 집단적 자위권의 범주가 아니다. 오히려 개별적 자위권의 범위를 확대한 형태로 일본 재무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뜨거운 논쟁거리인 적기지 공격 능력 확보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을 실은 탄도미사일을 쏘려는 징후가 보이면 이를 공격해 무력화하겠다는 내용인데, 이 역시 집단적 자위권 논의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특히 헌법에서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하는 한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미·일 국무-국방 장관 간 안전보장협의위원회(일명 2+2 회의)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는 합의문에서 뺐다. 한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동북아 군비 경쟁 촉발과 긴장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도쿄신문’은 2월 3일 일본 자위대가 이달 12일부터 미국 괌에서 진행되는 미·일·호주 연합훈련에서 F2 전투기를 활용해 정밀폭격이 가능한 레이저 유도 합동정밀직격탄(JDAM) 투하 훈련을 처음 실시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적기지 공격 능력을 확보한다는 의미로, 공격받았을 때만 방위력을 행사한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벗어나는 일대 전환을 의미한다. 신문은 일본이 ‘공격용 병기체계로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항공자위대는 1999년 시작한 연합훈련을 명분으로 일본 본토에선 할 수 없던 투하 훈련을 2005년 개시했다. 2012년부터는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정밀유도장치가 장착된 폭탄을 투하하는 훈련으로 정밀도를 높였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JDAM 투하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은 미국을 앞세운 집단적 자위권 논의에 묻어가면서 보통국가화를 착실히 진행해가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되는 대목이 있다. 일본은 자국민 구출을 명분으로 자위대의 외국 내륙 진입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알제리에서 발생한 일본인 피랍사건이 계기가 됐지만 이 역시 집단적 자위권 논의에 묻어가는 형태다. 이를 간단하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자국민 보호’는 일본이 아시아 이웃나라를 침략할 때마다 내세운 단골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1874년 대만 침공, 1875년 강화도사건, 1894년 청일전쟁, 1932년 상하이(上海) 사변이 모두 그랬다.

    특히 일본의 자국민 구출 논의는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것이라는 의혹이 짙다. 일본은 민주당 정권 시절인 2010년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가 한반도 유사시 남북한에 있는 일본인을 구출하려고 자위대 파견을 검토하겠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한편으로 과거사 업보와 국가 경쟁력 퇴조로 인한 불안감을 반영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을 도와줄 테니 센카쿠에서 문제가 터지면 미국이 일본을 도와달라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다른 한편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의식해 일본이 보통국가화를 서두르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동아시아에서 장기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일본이 가능한 자구책을 모두 마련해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동남아와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 정상과 릴레이 회담을 하며 이른바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동북아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지역 긴장을 높일 수 있어 어떤 이유에서든 경계 대상이다. 특히 아베 총리가 과거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추진되는 집단적 자위권은 허용 가능한 정상 궤도를 벗어날 공산이 없지 않다.

    문제는 한국의 대응이다.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 속에서 미국이 동조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무조건 반대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주한미군의 후방기지 구실을 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감정론보다 한미동맹과 한중관계, 민족 미래를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주판알을 튕기는 냉철한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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