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4

2014.02.10

자본에 먹히는 자, 자본으로 먹는 자

연극 ‘헤르메스’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4-02-10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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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에 먹히는 자, 자본으로 먹는 자
    언제부터인가 ‘사치품’이 ‘명품’이란 이름을 갖게 되면서 ‘비싸야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해졌다. 명품브랜드 중에서도 초고가로 꼽히는 에르메스(Herme′s)는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이라는 문구로 고객을 유혹한다. 아름다움을 갖는 데 필요한 단 하나, 바로 돈이다.

    연극 ‘헤르메스’는 스스로를 ‘자본’이라 칭하는 한 남자를 통해 자본의 이중성에 굴복한 인간 자화상을 파헤친다. 한때 노동운동을 했던 남건은 성인연극을 제작해 큰돈을 번다. 대본과 연출을 맡고 출연도 하는 그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시내 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한편 건과 함께 공연하는 여배우 유가인은 생활이 어렵다며 개런티 인상을 요구하고,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선배는 아이의 대학등록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건은 차갑게 거절한다. 건은 스스로 “자본의 노예가 되고 있다”고 자조하며, 안마사 유정숙과 콜걸 김성미에게 “내 몸에 배설해달라”고 부탁한다. 정숙은 거절하고 성미는 수락한다. 이유는 돈이다. 성미는 배설 대가로 100만 원을 받는다.

    건과 가인은 무대에서 파트너다. 둘 다 옷을 벗고 연기한다. 하지만 처지는 전혀 다르다. 건은 자본가요, 가인은 노동자기 때문이다. 건은 스스로를 ‘자본’이라 부른다. 그에게 인간은 두 가지다. 빨대처럼 상대방을 빨아먹는 사람, 그리고 상대방에게 빨아 먹히는 사람.

    건은 노동운동 현장이던 광장에서 현재의 호화 호텔까지 올라오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호텔 높은 층에서는 아래 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외치는 구호가 들리지 않는다. 저 멀리 광장을 내려다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읊조리는 그는 “20년 걸려 성취했지만 내려가는 데는 고작 3초”라며 허무해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인간성을 숨긴 채 자본에 집착한다.

    건은 타인의 배설물을 몸에 바르며 “세례를 받는다”고 위안한다. 하지만 그가 ‘세례’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를 위안하게 해준 배설물 역시 자본 때문에 움직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세례’는 진실이 아니다. 그저 역겹고 기괴하기만 하다.



    ‘명품성인연극’이라는 타이틀답게 다소 수위 높은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보다 표현이 훨씬 약하지만, 눈앞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더 짜릿하다. 그런데 배우들 역시 긴장한 티가 역력했고, 몇몇 배우는 안타까울 만큼 몸이 뻣뻣했다. 야설을 넘어 예술이 되기까지 배우들의 노력이 절실할 듯하다.

    맹인인 정숙은 가장 보고 싶은 것이 ‘촛불’이라 말한다. 서민들이 간절한 소망을 담아 밝힌 촛불은 저 아래 광장에서 찬란히 빛난다. 화려한 명품에 눈이 멀면 작은 촛불을 비웃기 쉽지만, 촛불이 모이면 그 어떤 보석보다 찬란한 빛을 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본에 먹히는 자, 자본으로 먹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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