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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2014 대한민국 폭음문화 02

알코올에 빠진 뇌 “세상이 취했어”

폭음 술주정 뇌와 깊은 관련, 중독은 그 자체가 정신적 질환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sysohn@chollian.net

알코올에 빠진 뇌 “세상이 취했어”

알코올에 빠진 뇌 “세상이 취했어”
“술만 마시고 식사도 안 하세요. 요새는 일하러 가지도 않고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년 부인은 울먹였다. 부인의 남편 A씨는 자영업으로 꽤 성공한 사람이었다. 젊어서부터 열심히 일한 그는 자녀들 교육도 성공적으로 뒷바라지해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던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가정적으로 안정되자 고향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술을 즐겨 마셨지만 항상 절제가 앞서던 그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폭음하기 시작했다. 음주 횟수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금은 식사를 거의 거른 채 하루에 소주 3~4병을 마신다. 술을 끊으려고 애써봤지만 이틀이 못 가서 포기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떨리고 불안, 초조해지는 금단 증상(with drawal symptoms)이 나타났다. 그는 알코올중독, 의학적 진단명으로는 ‘알코올 사용 장애(Alcohol Use Disorder)’ 환자였다.

금단 증상 그리고 알코올 사용 장애

술은 물, 알코올, 그리고 맛과 향을 내는 소량의 아미노산과 미네랄로 구성돼 있다. 일반적으로 술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광범위해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만성인두염 △인두암 △식도염 △위염 △급성위궤양 △출혈성 미란 △심장병 △고혈압 △지방간 △알코올성 간염 △간경변증 △간암 △급성췌장염 △만성췌장염 △당뇨병 △십이지장염 △십이지장궤양 △소장염 △흡수불량 증후군 △대장암 △통풍 △말초신경염 △대퇴골 골두 괴사 등 간담도계, 위장관계, 심혈관계, 내분비계, 근육골격계 등 인체 전반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술에 의한 피해는 뇌와 관련 깊다. 알코올은 소량이 뇌혈관을 타고 흘러가면 흥분 작용을 일으키지만 대부분 억제 작용이 나타난다. 특히 복합적 기능을 가진 부위인 뇌 망상계, 대뇌피질에 억제적으로 작용해 기억, 인지, 판단, 주의, 정보처리 같은 사고기능, 반응시간, 운동조화, 언어 등에 장애를 일으킨다. 그와 동시에 알코올은 뇌 통제기능을 억제함으로써 흥분, 공격성, 충동적 행동이 나타나게 한다. 평상시 억압했던 행동들이 통제기능을 상실하고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술 마시고 ‘필름 끊긴다’는 것은 일종의 기억상실(블랙아웃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알코올 남용(abuse)’에 도달했다는 중요한 단서다. 알코올은 수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술을 마시면 더 쉽게 잠들 수 있기도 하지만, 수면의 전체 구조에는 악영향을 미쳐 자주 잠에서 깨곤 한다.

알코올에 빠진 뇌 “세상이 취했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술에 취한 사람의 언행을 살펴보며 설명해보자. 술에 취하면 먼저 말이 많아진다. 이는 술이 전두엽 기능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은 충동을 조절하고 이성적 판단을 주로 담당하는 부위다. 따라서 술 취한 사람은 논리적으로 생각기 어렵고, 시끄럽게 떠들며, 사소한 일에도 참지 못한다. 또한 언어 담당 영역인 브로카 영역(주로 말하는 기능을 담당)과 베르니케 영역(주로 듣는 기능을 담당)을 마비시켜 말할 때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거나 상대방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술 취한 사람은 통증이나 감각에 둔감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뇌 꼭대기 부분에 위치한 두정엽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한편 자리에서 일어날 때 비틀거리거나 갈 지(之) 자로 걷는 이유는 소뇌 기능의 억제 때문이다. 소뇌는 우리 몸의 운동기능이나 평형감각 유지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앞에서 말한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기억 기능을 맡은 해마에 술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술이 감정 조절이나 원초적 욕망을 주관하는 변연계에 영향을 미치면 갑자기 감정적으로 바뀌어 사소한 자극에 웃고 울거나 성욕을 참지 못해 성 추행 같은 사고를 치기도 하고, 혹은 성 기능이 아예 저하되기도 한다. 노래를 열심히 부르지만 노래 실력은 확 떨어지는 것 역시 술에 의한 변연계 기능의 억제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각종 현상에도 계속 술을 마시는 사람의 최종 도착지는 ‘사망’이다. 뇌 가장 깊숙하면서도 아래쪽에 위치한 숨뇌(연수)가 마비돼 급기야 호흡 마비로 죽음을 맞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알면 함부로 술을 많이 마시는 우를 범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술을 너무 가볍고 관대하게, 심지어 멋들어지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알코올중독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알코올중독 원인을 한 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의학계에서는 개인의 유전적 또는 생물학적 요인, 주변의 사회·문화적 요인, 음주를 시작하는 시기와 동기, 그리고 개인의 정신병리 등이 서로 작용한 결과로 알코올중독이 발생한다고 본다.

예컨대 부모가 알코올중독인 경우 그 자녀는 정상인 부모의 자녀에 비해 알코올중독이 될 확률이 4배에 이른다. 또한 알코올중독 환자는 일반적으로 반사회적 성향이 강하고, 자아와 초자아의 발달 과정 이전, 즉 만 1세 이전 구순기적 상태에서 인격 발달이 정지된 사람이다. 따라서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욕구, 고통, 해결되지 않은 성적 충동의 좌절, 사회적 좌절감을 알코올 효과로 해결하고자 한다.

알코올에 빠진 뇌 “세상이 취했어”
통증이나 감각이 둔해지는 현상

그러나 알코올 효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이들은 다시 불안하거나 우울하며 아울러 적개심과 죄책감을 함께 느낀다. 그 결과 알코올중독 환자는 이런 느낌을 피하려고 더 많은 양의 알코올을 계속 섭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알코올중독 증상은 다양해 일정하게 얘기하긴 어렵다. 초기엔 주변 사람 눈에 잘 띄지 않고 본인도 과음을 곧잘 부인하지만, 대개 가족과 직장 동료가 환자의 과음을 가장 먼저 인식한다. 환자는 점점 직업상 능률 저하, 일상 습관의 변화, 생산성 감퇴, 지각이나 무단결석, 기분의 잦은 변화, 성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점차 얼굴에 붉은 반점이 생기거나 딸기코가 되고, 에스트로겐 증가로 손바닥이 붉어지는 등 신체 변화도 나타난다. 심해지면 지방간으로 간이 커지고, 빈번하게 감염 증세가 나타나며, 기억상실이 생긴다.

그뿐 아니다. 자주 사고를 당하거나 몸에 상처를 입고, 음주 상태에서의 운전 또는 보행으로 교통사고를 일으키거나 거친 행동으로 법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더 진행되면 간 기능 장애가 악화돼 황달과 복수가 나타나고, 고환이 위축되며, 가슴이 여성처럼 부푸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쯤 되면 환자는 대개 실직하고 가정은 파탄에 이른다.

알코올중독은 그 자체가 정신의학적 질환이면서 여러 정신질환을 동반한다. 가장 흔히 동반되는 정신질환이 우울증인데, 이 경우 자살 시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양극성 기분장애(조울증), 불안장애, 다른 물질의 남용(담배, 마약류, 수면제 등)도 알코올중독에 흔히 동반되는 정신의학적 질환이다. 혹은 알코올을 장기간 과도하게 섭취하거나 중독 상태에 빠진 경우 그 자체가 각종 정신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알코올 유발성 정신병적 장애, 알코올 유발성 양극성 장애, 알코올 유발성 우울성 장애, 알코올 유발성 불안장애, 알코올 유발성 수면장애, 알코올 유발성 성적 기능 불능, 알코올 유발성 신경인지학적 장애가 그것이다. 설령 알코올 유발성 정신질환에 이르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장기간 음주는 두통, 우울, 불안, 불면 등 다양한 정신 증상을 일으킬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뇌를 쪼그라들게 만들어 기억력이 떨어지고 뇌 세포 파괴와 뇌 기능 이상을 야기한다.

특히 여성은 알코올 섭취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거와 다르게 여성의 음주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알코올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즉 남성보다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어 쉽게 취한다. 대략 남성 주량의 절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직장 회식자리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원 샷’을 외치는 것은 의학적 측면에서 매우 무모한 행동이다.

게다가 여성은 음주로 만성질환(위궤양, 간염, 간경화)에 걸릴 확률이 남성보다 4배나 높다. 음주는 월경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과다 월경 또는 무(無)월경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불임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알코올 의존으로 진행되는 속도 역시 남성의 2배에 달한다. 가장 심각한 영향은 임신 중 음주에 의한 ‘태아 알코올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임신 중 엄마가 마신 술은 태반을 거쳐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가장 큰 영향은 태아 지능 저하와 심신 발달 저하, 얼굴 기형이다. 태아 알코올증후군은 그 밖에도 눈이 작고 눈꺼풀이 짧은 외모, 윗입술에 비해 두드러지게 얇은 아랫입술, 주의 산만, 충동적 성격, 발달 지연 등을 나타낼 수 있다.

알코올중독은 정신의학적 치료를 요하는 질병이다. 환자가 술에 많이 취한 상태라면 충분한 영양 공급, 수액 투여, 비타민B 복합체 투여를 통해 먼저 해독(detoxification)을 해줘야 한다. 이때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함께 투여해 금단 증상을 줄여준다. 환자가 신체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면 정신치료 과정으로 가장 먼저 환자에게 알코올 의존이라는 병명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

알코올중독 치료는 이처럼 병에 대한 인식(insight)이 첫 단계다. 이때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무척 중요하다. 가족, 특히 배우자가 같이 참여하고 협조하는 가족치료도 유용하다. 상담 과정에서 환자가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욕구에 치료 초점을 맞추고, 또 술을 마신 결과가 과거에는 어떠했고, 현재는 어떠하며, 또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력 상실은 물론 뇌세포 파괴

알코올에 빠진 뇌 “세상이 취했어”

알코올중독은 반드시 가정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최근에는 단주(斷酒)를 위한 약물이 개발돼 매우 효과적으로 임상에 응용되고 있다. 술에 대한 갈망을 줄여주는 아캄프로세이트와 날트렉손이라는 약제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약제들의 치료 효과는 정신·사회적 치료와 함께 이뤄질 때 극대화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환자가 단주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는 △환자가 음주를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 상황을 가려내는 기술 △위험 상황에 대응하는 기술 △자신의 음주 갈망과 요구에 대한 대응 기술 △술과 음주에 대한 생각의 지속적인 관리 기술 △술을 거절하는 기술 △스트레스를 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는 기술 △술을 마시게 하는 동기인 분노를 조절하는 기술 △긴장감을 해소하는 기술이 포함된다.

‘단주동맹(Alcoholic Anonymous·AA)’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주동맹이란 한때 알코올 의존자였던 두 미국인이 1935년 결성한 민간 금주운동단체로, 자조집단(self-help group)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단주동맹의 근본 목적은 술을 마시지 않고 다른 알코올 의존 환자가 술을 끊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과 우리 사회 전체 문제다. 한창 일할 나이인 사람이 알코올중독으로 고통 받는다면 한 가정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우리 사회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술을 적당히 마시고 사회적 교류 수단 정도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의 정착이 요망된다.

혹시 자신이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일 뿐 알코올중독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다음 요건에 모두 들어맞아야 한다. 첫째, 나는 스트레스를 술로 해결하지 않고 사회적 음주를 즐길 뿐이다. 둘째, 음주하려고 술자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사교하려고 술자리에 참석한다. 셋째, 술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넷째, 필름이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다섯째, 마실 때 만취를 주의하고 실제로도 만취에 이르지 않는다. 여섯째, 술 마신 다음 날 지각과 결근이 전혀 없다. 일곱째, 매일 연이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과음한 다음에는 며칠간 금주를 실천한다. 만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벗어난다면, 당신은 벌써 알코올중독으로 가는 길에 있을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14.02.10 924호 (p14~17)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sysoh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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