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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의 중국 속 북한

평양에서 온 IT 고급 인력 미국·일본계 기업도 고용

투먼 경제개발구 입주 업체, 기숙사 신축 등 앞다퉈 ‘北 인력 모시기’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평양에서 온 IT 고급 인력 미국·일본계 기업도 고용

평양에서 온 IT 고급 인력 미국·일본계 기업도 고용

투먼 경제개발구 청사 안에서 일하는 북한 정보기술(IT) 인력들. 봉제공장 인력보다 한층 자유로운 모습이다.

2012년 9월 다시 북·중 접경도시 투먼을 찾았다. 3월과 7월에 이어 세 번째였다. 주변 지역에서 다른 취재를 마친 뒤 투먼 경제개발구로 향했다. 그해 5월 투먼에 처음 들어온 북한 인력에 대한 고용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필자는 기숙사 건물에 이어 북한 인력까지 잠입 취재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유명 스포츠 의류 공장에서 시작된 북한 인력 고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투먼 경제개발구 내 기업들은 잇달아 북한 인력 고용을 신청했다. 기업은 미국계와 일본계, 중국계 등 다양했다. 이에 발맞춰 북한 인력이 속속 들어왔다. 필자는 2012년 9월 당시 투먼과 훈춘 2개 도시에서 북한 인력 300여 명이 일하는 것을 확인했다.

군대식 인솔자 따라 걸어서 이동

현지에서 차량을 빌려 직접 운전하고 다니며 찾아낸 첫 번째 업체는 일본계 건축자재 회사였다. 북한 여성 근로자 20명이 고용돼 있었다. 밖에서는 공장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으니 연두색 옷을 입은 북한 여성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주로 중년 여성으로 20명 안팎이었다. 이른 오후 시간대였는데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공장에서 나온 여성들이 인솔자를 따라 줄을 맞춰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7월 취재 때와 달리 북한 인력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다. 어느 정도 통제와 관리가 되다 보니 걸어 다니도록 허용한 것이다. 다만 군대식으로 인솔자가 있고 줄을 지어 이동했다.

쇼핑백과 비닐봉투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미국계 기업도 북한 인력을 고용했다. 이 기업은 북한 인력을 고용하는 데 대해 의지가 강했다. 실제로는 소수를 고용했지만 대규모 인력을 수용하는 전용 기숙사 건물도 별도로 계획하고 있었다. 이 밖에 유명 브랜드 가죽제품을 생산하는 중국계 기업도 북한 인력을 쓰겠다며 투먼시 당국에 신청을 했다. 북한 인력 첫 수입 후 넉 달째, 투먼 경제개발구 안에 입주한 기업은 앞다퉈 북한 인력 고용에 나섰다.



취재를 마치고 투먼 경제개발구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필자 취재원이 어디선가 차를 몰고 나타났다. 눈짓과 손짓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신호를 주고는 급히 사라졌다. 멀리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당장 차를 움직여 촬영을 시작했다. 20대로 보이는 발랄한 젊은이 7명이 자유롭게 떠들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남성 2명과 여성 5명이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촬영했다. 그러곤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도통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갑갑해진 필자가 차에서 나왔을 무렵, 이들이 골목길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봉투를 하나씩 든 채 웃고 떠들며 걸어왔다. 알고 보니 투먼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에 쇼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들은 여러 면에서 여타 북한 인력과는 확연히 달랐다. 옷차림부터 그랬다. 단체복이 아니라 다양한 색상의 자유복장이었다. 줄을 맞춰 이동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점,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를 오가고 쇼핑한다는 점도 큰 차이였다. 일종의 특권을 누리는 셈이었다.

확인해보니 이들은 평양에서 온 고급 정보기술(IT) 인력이었다. 모두 29명이라고 필자 취재원이 전했다. 남성 20명, 여성 9명이었다. 일하는 곳과 묵는 곳도 남달랐다. 기숙사 건물이 아니라 투먼 경제개발구 청사 5층에 머물렀다. 인력이 들어오기 전 고성능 컴퓨터 수십 대가 먼저 들어왔다고 한다. 투먼시 정부가 이들을 특별 관리하는 것으로 보였다.

평양에서 온 IT 고급 인력 미국·일본계 기업도 고용

중국 훈춘 시내 한 봉제 공장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여유를 즐기는 북한 여성 인력들(왼쪽). 창가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투먼시 정부가 특별 관리

방송기자에겐 ‘그림’이 중요하다. 투먼 경제개발구 청사와 공장 건물을 배경으로 ‘스탠딩’(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코멘트하는 것)을 해야 했다. 우리는 7월 방문 때 숨어서 취재했던 위치를 다시 찾았다. 이런 때가 방송기자에겐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현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높은 톤의 오디오와 함께 기자 몸이 드러난다. 첫 번째 스탠딩은 풀이 무성한 장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었지만, 엄폐물이 없는 공사장에서 진행한 두 번째 스탠딩은 이야기가 달랐다.

문제의 공사장은 북한 인력이 일하는 의류공장이 가깝게 보이는 장소였다. 반대로 의류 공장에서도 우리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공사장엔 인부들도 종종 오갔다. 들킬 위험이 컸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속전속결로 스탠딩을 하고 곧장 현장을 뜨는 것이다. 누군가 눈치채더라도 무슨 일인지 판단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카메라맨은 차 안에 숨어 촬영하기로 하고, 필자는 무선 마이크를 달기로 했다. 최대한 실수 없이 한 번에 코멘트를 해야 한다. 적당한 위치를 찾아 차를 세웠다. 준비한 원고를 열심히 외며 상의에 무선 마이크를 달았다. 북한 인력을 고용한 의류 공장을 배경으로 현장에 섰다. 카메라맨은 차 안에서 창문을 살짝 내리고 촬영을 시작했다. “큐!” 신호가 들어왔다. 이제 10초 정도 길이의 코멘트만 끝내면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열 발자국 남짓 떨어진 앞에서 커다란 개가 필자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목끈도 없었다. 개가 달려들까 걱정되자 말이 자꾸 꼬이기 시작했다. 투먼 공안당국에 붙잡히는 것보다 개한테 물리는 게 훨씬 무서웠다. 겨우 코멘트를 마치고 황급히 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다행히 개는 짖지 않았고,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현장을 달아나듯 빠져나갔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투먼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우리는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훈춘으로 향했다. 훈춘에는 당시 봉제 기업 두 곳에서 북한 인력을 고용하고 있었다. 하나는 시내에, 다른 하나는 훈춘 경제개발구 안에 공장이 있었다. 접근이 용이한 시내 봉제 공장부터 찾아갔다. 이른 아침 공장 정문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사람들이 출근하길 기다렸다.

평양에서 온 IT 고급 인력 미국·일본계 기업도 고용

훈춘 경제개발구 내 봉제 공장 안에 자리한 북한 인력 전용 기숙사. 앞부분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 건물이 북한 인력들이 일하는 공장이고, 붉은색 지붕 4층 건물이 기숙사다.

북한 인력 기숙사는 공장에서 다소 떨어져 있었다. 이들은 출퇴근 전용버스로 이동했다. 버스는 예상과 달리 공장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린 북한 여성 인력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대부분 공장 입구 거울에서 몸단장을 한 뒤 계단을 통해 올라갔다. 이 공장에선 북한 여성 38명이 일했다. 잠시 뒤 2층 창가에서도 모습이 보였다. 젊은 여성 2명이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야기를 나눴다.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낯선 이국땅에서의 생활, 북한 주민으로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외국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가 느껴졌다.

공장 정문 입구에 있는 수위실에는 중년 여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조카가 조선(북한)에서 온 여성이다. 이 공장에서 조선 여성들이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여기서 일할 수 있겠는가. 일하기엔 어떤가.” 여성은 “조선에서 온 인력은 위층에서 일하고 중국 근로자는 아래층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급여라든가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한다. 구체적인 사항은 나중에 약속을 잡고 직접 회사를 찾아와 면담하라”고 덧붙였다.

취재 화면 날아간 사고 발생

평양에서 온 IT 고급 인력 미국·일본계 기업도 고용

북한 인력을 고용한 투먼의 일본계 건축자재 회사.

곧바로 훈춘의 북한 인력이 묵는 기숙사를 찾았다. 2012년 3월 멀리서 외경 촬영만 가능했던 곳을 이번엔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기숙사는 훈춘 경제개발구 내 또 다른 봉제 기업 안에 있었다. 넓은 땅에 자리한 이 회사는 정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정문 수위실에 아무도 없었다. 차를 몰고 정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아무도 막지 않았다.

이 공장에는 북한 인력 10명이 일하고 있었다. 기숙사는 공장 바로 옆 건물이었다. 묵고 있는 북한 인력은 48명. 특이한 점은 기숙사 건물에 북한의 인력송출 담당 회사 ‘능라도’가 입주해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공식 허가한 북한 인력 수입 도시는 투먼뿐이었음에도 훈춘에 북한 인력이 우회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훈춘과 ‘능라도’의 긴밀한 관계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훈춘의 중국인들에게도 북한 인력은 호기심 대상이었다. 공장 부근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북한 인력을 봤다며 목격담을 전했다. 바로 전날 저녁에도 북한 여성 인력들이 서로 손잡고 춤추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였다. 2012년 9월 당시 중국 정부가 수입한 북한 인력 300여 명은 투먼과 훈춘 2개 도시 7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복귀했다. 정작 황당한 일은 복귀한 후 벌어졌다. 공안에게 걸릴까, 개에게 물릴까 노심초사하며 촬영한 투먼에서의 ‘스탠딩’ 촬영분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잠입취재 과정에서 우리는 그날 찍은 촬영분은 그날 저녁 모두 정리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가급적 컴퓨터나 외장하드에만 영상을 보관하고 카메라에서는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만에 하나 중국 공안에 잡혔을 때 빼앗기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그런데 촬영원본을 노트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 주요 화면이 모두 날아가버린 것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한 영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현지에서 고용한 카메라맨도 자신이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자책하며 사직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렇지만 카메라맨만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연일 긴장 속에서 취재와 촬영을 강행하고 열악한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발생한 결과였다. 방송기자의 남모르는 고충이었다.



주간동아 2014.01.06 920호 (p50~52)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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