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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中 혁명 성지’에 개발 망치 소리

시내 곳곳에 붉은색 문구의 ‘옌안정신’… 서부대개발 교두보 한국 기업 투자 ‘손짓’

  • 옌안·시안=김동원 동아일보 기자 daviskim@donga.com

‘中 혁명 성지’에 개발 망치 소리

‘中 혁명 성지’에 개발 망치 소리

중국 산시성 시안 하이테크 기술산업개발구 안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차세대 10나노급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 현장.

여객기가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국제공항을 출발한 것은 이른 아침. 2시간 남짓 서쪽으로 날자 산악지대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황토고원이라 부르는 험준한 지형에서 오목하게 파고 들어간 지대에 역사를 품은 옌안(延安)이 옷고름을 풀 듯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공산혁명 성지로 부르는 지역답게 붉은색 글씨로 대형 선전문구를 써놓은 현수막이 여기저기 보인다. 비행기가 착륙하려고 고도를 낮추자마자 중국공산당 홍군(紅軍)이 양자링(楊家齡) 계곡에 숨어 투쟁할 당시 동굴이 창문 밖으로 포착됐다.

11월 말 찾은 옌안은 마오쩌둥(毛澤東)의 홍군이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군대의 추격을 피해 약 9600km 장정(長征) 끝에 도착한 혁명 발원지다. 장정이란 홍군이 1934년 10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1년 남짓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수도였던 장시(江西)성 루이진(瑞金)에서 산시(陝西)성 옌안까지 행군해 이동한 것을 일컫는다. 장정의 최종 도착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옌안 중심가의 이름도 역시 예상대로 성지(聖地)라고 했다. 중심가를 거쳐 마오가 10년 넘게 살았다는 토굴을 보려고 계곡으로 방향을 틀었다. 성지로(路)를 거쳐 야트막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양자링 계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10여 분 산길을 오르니 옌안 시절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周恩來), 류사오치(劉少奇) 등 지도부가 오랫동안 살면서 투쟁을 지휘하던 산속 토굴이 역사 속 스토리와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혁명 성지’인 이 토굴은 넓이 6.6~ 9.9m2(2~3평)인 움막 수준이다. 현지에서는 산속 토굴을 야오동(窯洞)이라고 부른다. 땅을 파고 들어간 집이라는 뜻이다.



마오가 살았던 야오동을 찾았다. 붉은 깃발을 치켜든 단체 관람객 서너 팀이 몰려와 토굴 안팎은 인파로 붐볐다. 마오 토굴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오래된 침대와 작은 책상, 혁명 관련 서적이 꽂힌 책꽂이 하나가 전부였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일행에게 성지를 안내하던 30대 여성은 토굴 내 소박한 가재도구를 가리키며 “혁명지도부의 솔선수범은 당시 당원은 물론, 인민의 마음을 움직여 튼튼한 혁명의 기반을 만들었다”며 목소리 톤을 한 옥타브 높여 강조했다.

전시관에 울려 퍼진 공산당가(黨歌)

마오는 신변보호를 위해 당시 옌안에서도 몇 곳을 옮겨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보존된 토굴 앞에는 ‘1938년 11월부터 1943년 10월’까지 머물렀다고 표시돼 있다. 인근에 있는 류사오치 토굴도 마오 토굴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3~4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혁명을 함께 한 동지였지만 훗날 이들의 운명이 천양지차였음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1959년부터 10년가량 국가주석을 지낸 류사오치는 마오와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주자파로 몰려 실각했다. 말년에는 반감금 상태로 지내다 생을 마감했다.

성지를 찾아 상하이(上海)에서 왔다는 중국공산당원 류옌펑(劉延風·38) 씨는 “몇 년간 벼르고 별러 혁명 성지를 찾아와 혁명지도부가 살던 현장을 보니 눈물이 날 정도”라며 “이런 고난을 극복하고 대국으로 성장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혁명세대는 물러갔지만 중국 국민 뇌리엔 고난을 이겨낸 자신감이 배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내 곳곳에서 ‘옌안정신(延安精神)’이라는 붉은색 문구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혁명 당시 시대정신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옌안은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국민당 군부에 쫓겨오기 전까지는 인구 수천여 명 사는 조용한 산골마을이었다. 지금은 200만여 명이 거주하는 중견 도시로 탈바꿈했다. 산악지대인데도 여기저기서 아파트와 대형 빌딩을 짓는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혁명 성지인 이곳도 중국 전역에 부는 개발 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어서 찾은 옌안혁명기념관. 이 기념관은 중국 홍군 장정의 역사를 생생히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연안시 서쪽에 자리 잡은 옌안혁명기념관은 마오 동상을 전면에 두고 한일(一)자 형태로 건축됐다. 이곳에는 마오가 베이징대 도서관 사서에서 중국공산혁명 지도자가 되기까지 과정을 선동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한 색채와 현장감을 고스란히 담아 전시해놓았다.

안내를 맡은 군복 차림의 20대 청년은 시종일관 날카로운 쇳소리와 중국 특유의 하이톤 발성으로 중국공산혁명 당시 상황을 무성영화 변사가 연출하듯 흥미롭게 설명했다.

당시 기록해놓은 공산당가(黨歌)의 빛바랜 음표가 한 전시실에 걸려 있었다. “어떻게 부르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 청년은 망설임 없이 공산당가를 힘차게 불렀다. 같은 전시실에 있던 중국 젊은 관람객들도 당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해 이내 웅장한 합창을 듣는 듯했다.

‘中 혁명 성지’에 개발 망치 소리

중국 산시성 옌안의 혁명전적지 내에 있는, 마오쩌뚱이 머물렀던 집.

이번 한중 언론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최대식 팀장은 옌안혁명기념관을 둘러본 후 “혁명 당위성을 한국 기자단에게 인식시켜주려고 혁명 태동기부터 세부적인 진행 과정을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 기념관은 1936년 10월부터 47년 3월까지 옌안을 거점으로 반일, 반국민당 투쟁을 벌였던 중국공산당 역사를 보여준다. 당시 유물 가운데 일부가 베이징에 있는 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아직도 수많은 유적이 ‘혁명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중국 중서부 혁명부터 첨단까지 공존

옌안혁명기념관 입구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류사오치 등 혁명 핵심 인물의 실제 모습을 방불케 하는 밀랍모형이 웅장하게 포진돼 있다. 혁명을 부르짖는 그들 모습은 옌안이 중국공산혁명의 요람이었음을 웅변했다.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마오가 옌안 시절 쓴 저서도 원래 소책자 형태로 그대로 남아 있다. 중국공산당 홍군이 썼던 붉은 깃발과 총칼, 창 같은 실제 유물도 6개 전시관에 넘쳐났다. 일제강점기 우리 젊은이가 활동했던 조선항일군정학교의 옛 사진이 특히 눈에 띄었다. 옌안 시절에도 한국인 수십 명이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 한 명이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다.

옌안에서 본 현장이 중국공산혁명의 생생한 과거였다면, 옌안에서 남쪽으로 6시간 정도 차를 몰아 도착한 천년고도 시안(西安)은 미래로 달리려고 몸을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첨단 산업도시로의 탈바꿈도 그중 하나.

시안은 요즘 서부대개발 전략의 핵심 교두보 구실을 하는 도시다. 하지만 중국 역대 13개 왕조의 수도가 시안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한 번 더 놀란다. 베이징과 상하이, 톈진 등에 앞서 인구가 100만 명을 넘은 최초의 도시가 시안이라는 점도 이러한 배경과 닿아 있다. 그런 시안이 요즘 첨단 산업도시로 변모하려고 전력투구하는 것. 대표적인 예가 ‘시안 하이테크 기술산업개발구’ 건설과 삼성전자 시안공장 유치다.

시안 하이테크 기술산업개발구는 중국 정부가 애착을 보이며 건설 중인 6개 첨단 과학기술단지 가운데 하나다. 투자 유치 상담부터 공장 건설까지 획기적인 ‘원스톱 서비스’ 시스템을 갖췄다고 중국 정부가 자랑하는 신(新)경제중심지역이다.

양녠톈(楊念田) 시안하이테크개발구관리위원회 부총경리는 “시안은 한국을 원하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의 시안 진출은 언제나 대환영이며, 중국 어느 지역에서도 제시할 수 없는 최고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특히 지금 건설 중인 삼성전자 시안공장이 이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엔진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서부대개발 특수를 누리려고 현재 시안에 총 7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단일 사업으론 대(對)중국 투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주간동아 918호 (p52~53)

옌안·시안=김동원 동아일보 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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