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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국수와 살다

힐링푸드 맛있게 후루룩!

겨울철 춥고 지친 몸에 국수 한 그릇이면 에너지 충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힐링푸드 맛있게 후루룩!

힐링푸드 맛있게 후루룩!
‘뜨거운 멸치국물과 함께 약간의 양념, 고춧가루, 김치에 사각거리는 느낌이 나도록 설탕을 치고 입맛을 개운하게 하는 김을 듬뿍 넣어 비벼먹는다. 약간 신맛이 돌면서 담백한 이 비빔국수….’

소설가 성석제가 산문집 ‘쏘가리’에서 강화도 한 비빔국숫집의 국수 맛을 예찬한 대목이다.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틀림없는 국수 마니아다.

국물이 있든 없든, 뜨겁든 차갑든, 양념이 알싸하든 심심하든, 면발이 쫄깃하든 뚝뚝 끊어지든 일단 ‘국수’라면 무조건 가슴 뛰는 사람들이 있다. 겨울은 특히 국수 마니아를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 온라인 냉면동호회 회원인 김관옥 씨는 “한겨울에 찬 냉면 육수를 들이켜면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짜릿하고,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며 “냉면은 사시사철 맛있지만 특히 겨울이 제맛”이라고 했다. 쫄깃한 밀가루 면에 걸쭉한 장국을 붓고 갖가지 고명을 얹어 먹는 잔치국수, 꼬들꼬들한 라면도 겨울에 더욱 맛있는 음식이다.

한국인의 국수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세계라면협회(WINA)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2.4개. 세계 1위다. 짜장면, 스파게티 등 다른 종류 국수도 우리나라 외식 선호 메뉴 조사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최근엔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색다른 국수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면을 튀기지 않고 구운 저열량면, 트랜스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이 없는 곤약을 이용해 만든 면과 두부, 해초, 메밀, 녹두 등을 첨가한 건강면이 여러 업체에서 출시 중이다.

냉면은 역시 겨울에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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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텐 프리’ 국수도 눈길을 끈다. 글루텐은 밀가루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성분. 이 물질이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비만과 성인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밀 대신 쌀, 옥수수, 감자 등을 이용해 만든 국수가 개발되고 있다. 조사 결과 글루텐 소화 장애를 가진 사람은 보통 인구의 약 1%, 글루텐 섭취 뒤 두통, 피로, 관절 통증 등을 느끼는 이는 약 6% 수준이다. 애초 이들을 겨냥해 만든 ‘글루텐 프리’ 제품이 최근엔 ‘건강식품’으로 새롭게 조명받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기후 특성상 밀을 재배하기에 적절치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쌀, 메밀, 고구마, 감자 등을 활용한 국수를 많이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한귀정 농촌진흥청 가공이용과장은 “우리나라 국수는 밀을 재배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소량의 밀에 다량의 다른 재료를 섞어 만든 고유의 음식”이라며 “북부지방의 메밀, 감자나 남부 지방의 콩, 녹두 등이 어우러져 밥과 반찬으로 내지 못하는 독특한 맛을 선사하는 음식이 됐다”고 설명했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이러한 우리 국수를 ‘한식 세계화의 히든카드’로 선정하고, 전국을 제주도·전라도·경상도·충청도·강원도·경기도·서울·이북5도 등 8개 권역으로 나눠 각 지역의 대표 국수를 소개하는 ‘대동여면도(大同輿麵圖)’를 만들었다. 이 국수를 바탕으로 음식 한류, 이른바 ‘케이푸드(K-food)’ 열풍을 이끌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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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을 분쇄한 뒤 물과 함께 치대 반죽하고, 이를 썰거나 눌러 뽑아내야 비로소 완성되는 국수 가락은 밥과 빵이 줄 수 없는 고급스러운 식감을 선물한다.

당초 국수가 인근의 가장 좋은 식재료를 써서 만든 ‘고급 음식’이었다는 점은 ‘국수 한류’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김상보 대전보건대 전통조리과 교수는 ‘조선왕조의 면식문화’에 대한 논문에서 ‘국수를 완성하려면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야 하고, 일단 만든 가루는 체에 쳐서 고운 가루가 되게 해야 하며, 물을 넣어 두 손으로 힘껏 움켜쥐어 여러 번 치대 반죽하고, 이 반죽을 밀판으로 밀어 썰거나 또는 국수틀에 눌러 뽑아내 끓는 물에 삶아 건져낸 다음 찬물에 담가 헹구어 움켜쥐어 다시 건져내는 힘든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맛도 맛이지만 이런 힘든 공정 때문에 그것이 어떤 곡물을 재료로 하여 만든 국수든, 모든 국수류는 가장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다’고 했다.

좋은 면을 완성한 뒤 조리하는 단계에도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삶고 튀기고 끓이고 조리는 방식에 따라 수만 가지 다른 맛이 탄생하는데, 우리나라 국수의 특징은 육수를 중시한다는 점. 쇠고기, 돼지고기, 꿩고기, 명태 등을 삶은 물에 동치미 등 김칫국물을 혼합해 만드는 평양식 냉면 육수부터, 서귀포에서 많이 잡히는 옥돔, 붉바리, 장태(양태), 볼락 등을 푹 끓여 만드는 제주도의 생선국수 육수까지 전국 각지에는 다양한 특산물을 활용한 토박이 국수가 있다. 끓는 물에 재료와 국수를 함께 넣어 익혀 먹는 ‘제물국수’와 국수를 따로 삶아 건진 뒤 별도의 육수나 고명을 더해 먹는 ‘건진국수’ 모두 재료 맛을 충분히 살린 ‘육수의 감칠맛’이 있어야 ‘맛있는 국수’로 평가받는다.

입술 통과할 때 최대 감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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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수를 국수이게 하는 제일 조건, 즉 기다란 면발이 주는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면을 뽑아내려면 정성과 더불어 과학이 필요하다. 허영만의 ‘식객’에 등장한 인천 ‘권오길 손국수’의 권오길 사장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면’의 조건으로 강력분과 중력분의 1대 13 비율을 꼽았다. 또 “반죽할 때 너무 되면 끈기가 없어져 씹는 맛이 떨어지고 질게 하면 면이 빨리 불고 건조할 때 무게를 이기지 못해 늘어진다”며 정확한 물 양도 강조했다. 이렇게 만든 면은 3차에 걸쳐 건조, 숙성해야 상품이 된다.

유명 인스턴트 면류 제조업체들도 자체 연구소를 두고 ‘면발 과학’을 연구한다. 팔도 중앙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판 라면의 면발 굵기는 팔도 ‘남자라면’ 2.26mm, 오뚜기 ‘진라면 매운맛’ 2.18mm, 농심 ‘신라면’ 2.12mm 등으로 각각 다르고, m당 중량과 전체 길이도 크게 차이가 난다. 업체마다 최적의 맛을 내려고 고안해낸 ‘황금비율’이다. 농심의 경우 쌀을 이용한 인스턴트 국수를 출시하면서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려고 840t 분량의 쌀을 실험용으로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면 가운데에 실처럼 가는 구멍을 뚫은 ‘RT면(rice tube·중공면)’을 개발했다.

‘음식, 그 상식을 뒤엎는 역사’의 저자 쓰지하라 야스오는 국수의 매력에 대해 ‘찰기가 느껴지는 혀 맛, 끊을 때 이에 전해지는 쾌감, 식도를 통과할 때의 상쾌함이 삼박자를 이뤄 만족감은 물론이고 빨아들일 때 입술을 통과하는 최대의 감칠맛까지 준다. 밥이나 빵에서는 이런 자극을 느낄 수 없다. 길고 가느다란 음식에 약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 예민한 기관의 쾌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썼다.

음식은 인간을 생존하게 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도구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때로는 먹는 기쁨이 다른 모든 목적을 잊게 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다. 한겨울 춥고 지친 몸과 마음에 후루룩 넘어가는 국수만큼 따뜻한 위로가 또 있을까. 이번 세밑에는 면발과 국물, 고명과 양념이 어우러져 최고의 기쁨을 주는 맛있는 ‘국수 한 그릇’을 찾아볼 일이다.



주간동아 918호 (p36~37)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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