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7

2013.12.16

초심으로 돌아간 ‘리얼 버라이어티’

다시 태어난 ‘1박 2일’

  • 윤희성 대중문화평론가 hisoong@naver.com

    입력2013-12-16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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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심으로 돌아간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부진에 빠지면 대부분 혁신을 선택한다. 그러나 출연진을 대폭 물갈이하며 새 시즌을 맞은 KBS 2TV ‘해피선데이- 1박 2일 시즌3’은 첫 번째 여정을 통해 오히려 ‘클래식’으로 회귀를 선언한 듯 보인다. 첫 출연을 앞둔 고정 멤버의 집을 급습해 비몽사몽간 복불복을 시도하고, 여행 장소로 이동하는 중간에도 게임과 지령이 멈추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먹거리와 잠자리는 단순한 게임에 치열하게 임하는 것으로 결정되며, 입수에 대한 위협 역시 여전하다. 마치 ‘1박 2일’의 트레이드마크를 총망라하겠다는 듯 ‘시즌3’의 첫 여행은 가장 ‘1박 2일’다운 것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가혹할 정도로 열악한 생활환경과 쉼 없는 게임만으로 ‘1박 2일’ 정체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지난 시즌에 입증된 사실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만의 특유한 구조와 정서를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이해하는 출연자의 힘이다. 프로그램 중심축이던 강호동과 이승기가 하차한 이후 ‘시즌2’ 시청률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단지 스타의 부재 탓이 아니라 지나치게 ‘발굴’에 초점을 맞춘 캐스팅 때문이었던 것이다.

    의외의 인물은 신선함을 담보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긴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리얼 버라이어티’는 상황을 조망하고 조율해나가는 인물과 그것에 눈치 빠르게 부응하는 인물의 상호작용을 동력으로 삼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멤버 간 균형과 호흡이다. 그런 점에서 ‘시즌3’이 방송 2회 만에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것은 눈여겨볼 점이다. 여행 형식은 물론 그 형식을 만들어나가는 인물 간 관계가 전성기 모습과 제법 닮아 있기 때문이다.

    출연자의 면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능은 물론 리얼 버라이어티에 익숙한 김준호와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확보된 차태현이 상황을 읽어내는 동안 김주혁과 정준영이 돌발적 대응으로 새로운 국면을 제공하는 구조의 무게추가 ‘1박 2일’ 전성기 시절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 문법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방송국 앞에서 ‘1박 2일’ 오프닝 촬영 현장을 보고 부러워했다”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적절히 밝히는 데프콘의 활약은 새로운 ‘1박 2일’의 가장 든든한 카드다. 데프콘은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상황을 스스로 이끌어나가는 방법을 훈련했고,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효율적으로 캐릭터를 부각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그리고 사건이 만들어지고 수습되는 과정 안에서 자기 임무를 유연하게 바꿀 줄 아는 실질적 진행자이자 드러나지 않는 게임메이커이기도 하다.



    사실 새 출연자의 각오를 다지려는 혹한기 훈련으로 마련된 ‘시즌3’ 첫 방송은 출연자뿐 아니라 새 제작진의 오리엔테이션이기도 했다. 그 적응 훈련 결과, 이들은 실패한 게임조차 예능의 재미로 표현할 수 있는 편집 능력과 내러티브 능력을 입증해 보였다. 돌아보면 아무도 빠지지 않은 작은 얼음 웅덩이는 새로운 ‘1박 2일’의 태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소품이었다. 모두가 웅덩이를 뛰어넘는 데 성공하자 PD는 무기력하게 실망하는 자기 모습을 캐릭터로 드러냈으며, 이제는 베테랑이 된 차태현은 이튿날 아침 라면을 두고 경쟁하는 사소한 상황에서 자진해 웅덩이에 발을 담그며 소품의 필요성을 증명해냈다.

    시야는 넓고 순발력은 반짝인다. 제작진은 상황을 통제하기보다 상황의 일부임을 자처하고, 출연자들은 스스로 상황을 이끌어나간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보다 가장 빛나던 시절을 재건하겠다는 확고한 목표는 실현 가능성을 통해 당위를 얻었다. 장고 끝에 나온, 드물게 괜찮은 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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