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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칵테일 | 테킬라 선라이즈

뜨거운 해돋이…멕시코 정열이 ‘듬뿍’

‘불타는 태양’서 주인공 맥이 즐겨 마시는 술로 등장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뜨거운 해돋이…멕시코 정열이 ‘듬뿍’

뜨거운 해돋이…멕시코 정열이 ‘듬뿍’
영화 ‘불타는 태양(Tequila Sunrise)’은 로버트 타운 감독의 1988년 작품이다. 74년 ‘차이나타운’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타운 감독이 각본까지 담당한 이 작품은 범죄스릴러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비평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맥(멜 깁슨 분)은 한때 유명한 마약 판매상이었으나 지금은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 다만 이혼한 전처가 아들 양육권을 걸고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것이 골칫거리다. 마약단속청에서는 여전히 맥을 의심하며 담당관을 몰래 파견해 감시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 처한 맥과 그의 친구이자 LA경찰서 형사인 닉(커트 러셀 분)의 관계가 중심을 이루며 전개된다.

맥과 닉의 관계는 복잡하다. 우정은 두텁지만 껄끄럽다. 마약거래 용의자와 형사 신분으로 만난 데다, 미모의 레스토랑 주인 조 앤(미셸 파이퍼 분)을 놓고 미묘한 삼각관계에도 놓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약당국은 멕시코 마약왕 카를로스가 맥과 접선하려고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감시담당관은 맥을 미끼로 카를로스를 체포하려 한다. 그런데 카를로스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어 그의 얼굴을 안다는 멕시코 경찰국 소속 에스칼란테 경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사실 그가 바로 카를로스였다. 위장한 카를로스는 여유롭게 맥을 만난다. 그의 이번 방문 목적은 맥의 보트 속에 몰래 숨겨놓은 거액의 마약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은 자신의 사촌 동생을 거침없이 살해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조 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카를로스에게 반감을 갖게 된다. 사실 그는 돈만 보관하고 있었을 뿐 마약 거래에는 관심을 끊은 지 오래였다. 맥은 과연 마약을 거래한다는 의심을 떨치고 카를로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닉과의 삼각관계에서 조 앤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

테킬라+석류시럽+오렌지주스



뜨거운 해돋이…멕시코 정열이 ‘듬뿍’

영화 ‘불타는 태양’에서 테킬라 선라이즈를 연상하게 하거나 직접 등장하는 장면들.

영화 ‘불타는 태양’의 원제인 ‘테킬라 선라이즈’는 유명 칵테일 이름이라 개봉 초부터 영화에 이 이름을 붙인 이유부터 칵테일이 등장하는 영화 장면까지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영화 팬이 정작 영화에서 칵테일이 나오는 장면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테킬라 선라이즈를 언급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칵테일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여러 장면에 테킬라 선라이즈가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칵테일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마치 해돋이를 연상케 하는 색깔 자체가 특징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이 칵테일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맥이 조 앤의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릴 때 닉이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다. 이때 맥이 마시던 술이 바로 테킬라 선라이즈다.

두 번째는 맥이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닉과의 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장면에서다. 여기에서는 칵테일과 함께 그 재료가 되는 테킬라, 석류시럽(그레나딘), 오렌지주스까지 등장한다. 테킬라로는 말굽 모양 상표로 유명한 멕시코 제3의 테킬라 회사 ‘에라두라’ 제품을 썼다. 테킬라 선라이즈가 마지막으로 등장한 장면은 맥이 조 앤을 찾아 그녀의 식당에 갔을 때다. 식당 바에 앉아 있는 맥에게 바텐더가 테킬라 선라이즈를 서빙한다.

테킬라 선라이즈를 영화 제목으로 정한 데는 영화에서 비중이 큰 멕시코 마약왕 카를로스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멕시코야말로 테킬라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맥이 즐겨 마시는 술 역시 테킬라다. 그리고 영화에서 일몰을 배경으로 해변에서 맥과 닉이 함께 그네를 타는 낭만적인 장면도 비록 일몰과 일출의 차이는 있지만 이 칵테일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테킬라 선라이즈는 마르가리타와 함께 테킬라 베이스 칵테일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 칵테일은 테킬라에 석류시럽과 오렌지주스를 섞어 만든다. 석류시럽의 정열적인 붉은색과 그 위에 얹는 여명과도 같은 부드러운 느낌의 오렌지색이 이루는 절묘한 조화는 마치 태양의 나라 아즈텍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이다. 석류시럽과 오렌지주스가 층을 이루는 것은 비중 차이를 이용한 것이다.

칵테일 맛도 일품이어서 마시다 보면 테킬라 향을 바탕으로 처음에는 오렌지주스의 산뜻함이 느껴지다가 이어서 석류시럽의 달콤함이 서서히 입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장식은 보통 오렌지 조각으로 하고 하이볼 잔에 담아 서빙한다.

오리지널은 새벽 여명 분위기

뜨거운 해돋이…멕시코 정열이 ‘듬뿍’
그런데 테킬라 선라이즈의 원 레시피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과 조금 다르다. 이 칵테일을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 애리조나 빌트모어 호텔의 한 바텐더였다. 당시 레시피는 테킬라에 크림드카시스, 라임주스를 섞은 뒤 소다수를 적당량 채운 것이었다. 크림드카시스는 비중이 1.1833으로 1.1720의 그레나딘보다 높아, 층을 이루는 칵테일에 사용하는 재료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칵테일은 옅은 갈색의 크림드카시스와 라임주스의 색깔 때문에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즉, 오늘날 레시피의 테킬라 선라이즈가 어느 정도 떠오른 찬란한 태양을 나타낸다면,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든 칵테일은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 여명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맛 자체도 상큼한 라임이 향긋한 크림드카시스와 어우러지면서 소다수에 의해 짜릿하게 입안으로 퍼지는 느낌이다.

테킬라 선라이즈가 유명해진 데는 1970년대를 풍미한 밴드 ‘이글스’의 영향도 컸다. 히트곡 ‘호텔 캘리포니아’로 잘 알려진 이글스는 71년 LA에서 결성된 록 밴드다. 이들이 73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데스페라도’의 첫 번째 싱글 곡이 바로 ‘테킬라 선라이즈’다. 이 곡이 팬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으면서 같은 이름의 칵테일 역시 대중의 관심을 더 많이 받게 됐다.

테킬라 선라이즈는 그 인기만큼이나 변형도 많이 됐다. 대표적인 것으로 테킬라 대신 럼을 넣은 캐리비언 선라이즈, 테킬라 대신 보드카를 넣은 러시안 선라이즈가 있다. 또 붉은색의 그레나딘 대신 짙은 갈색의 블랙베리 브랜디를 넣어 일몰 광경을 표현한 칵테일 테킬라 선셋도 있다.



주간동아 2013.12.09 916호 (p76~77)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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