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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대중은 왜 日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나

팍팍한 현실 위로하는 ‘나은 세계’와 ‘진실한 삶’ 이야기에 공감

  • 정지우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저자 jiwoo9217@gmail.com

대중은 왜 日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나

대중은 왜 日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나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화된 우리나라 사회에서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근래 일본 애니메이션이 대중문화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등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개봉해 흥행하는 한편, ‘진격의 거인’이나 ‘원피스’ 같은 장편 애니메이션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 더불어 전통적으로 일본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양가적’ 감정도 함께 일어 논란이 된다. 가령 ‘바람이 분다’ 속 주인공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전투기를 설계한 인물이라든지, ‘진격의 거인’의 작가가 우익 성향을 지닌 인물이라는 사실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열풍은 국내적 요인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의 성장과도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에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1998년은 마침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번성하던 시기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드래곤볼’이 86년 시작했고, ‘세일러문’(1992), ‘슬램덩크’(1993), ‘포켓몬스터’(1997), ‘원피스’(1999) 등이 연달아 히트했다. 2003년 ‘강철의 연금술사’와 ‘나루토’도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적 묘사와 생동감 있는 연출

대중은 왜 日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나

‘원피스’

일본 애니메이션이 갖는 차별성은 이전 미국 애니메이션과 비교할 때 분명히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선악 대결을 주제로 한 영웅 이야기나 전통적인 유럽 동화의 환상 세계를 다룬 미국 애니메이션과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은 매우 다양한 주제로 발전했다. 로맨스, 코미디, 공포, 모험, 스포츠 같은 장르에 동양의 신화적 모티프를 차용하기도 하고(‘드래곤볼’ ‘나루토’ 등), 무엇보다 일상과 매우 가까운 모습을 만화로 그렸다. 가령 한국에서 크게 유행한 ‘세일러문’이나 ‘카드캡터 체리’(1998)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인공은 일상생활에서 그저 학생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주로 밤에 변신해 활동하는데, 그러한 ‘일상에 감춰진 비밀’이라는 요소가 큰 공감과 흥미를 끌었다.

기법 면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매우 사실적 묘사와 생동감 있는 연출을 보여준다. 인물의 표정, 행동, 일상 등 모든 것이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수준으로 섬세하게 표현된다. 그리하여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국 애니메이션의 과장되고 단순화된 캐릭터 표현에 비해 큰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처럼 사실적이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주제로 새롭게 출시하는 수많은 애니메이션에 노출됐던 세대가 현재 한국 사회의 청년층을 이룬다. 현재 20~30대 청년층은 어렸을 때 비디오가게에서 만화를 빌려 보거나, 이후 생겨난 ‘투니버스’ ‘애니원’ ‘애니박스’ 같은 TV 만화 전문 채널을 시청한 기억을 갖고 있다. 이들은 현재 극장을 자주 이용하고 VOD(video on demand)를 사서 보는 든든한 대중문화 소비층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산업의 확장과 기술적, 주제적 발전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친숙한 문화가 됐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는 현대 사회에 대한 좀 더 상징적이고 현실적인 은유를 담은 작품도 등장했다. 이러한 작품은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단순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을 넘어, 좀 더 현실적인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인 작품이 ‘진격의~’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진격의 거인’이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진격의 거인’은 인류 대부분이 멸망한 뒤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인 채 바깥 거인들에게 극도의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았다. 거인들은 계속 진격해오며 인간의 영토를 잠식하는데, 지적 능력이 없는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맹목적으로 인간을 잡아먹기만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전에도 좀비나 외계인이 인류를 공격하는 내용의 작품은 많았지만, 그들에게는 적어도 목적이 있었다. 인간을 먹이 삼아 자기 종족을 번성케 한다든지, 인간을 몰아내고 땅을 정복한다든지 같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 속 거인들은 그저 신이 내린 벌처럼 ‘광기 어린 상태로’ 혹은 ‘발달장애 같은 상태로’ 인간을 죽이는 데만 열중할 뿐이다. 인간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한계 상황에 내몰린다.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좁은 영토 안에서 자원은 극도로 제한돼 있고, 남은 것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맹목적인 생존 문제뿐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현대 한국인의 가슴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외환위기의 고통을 경험한 이후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와 사회 불안 속에서 우리 사회가 극도의 생존 중심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경쟁은 날로 극심해지고, 사회는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가 됐다. 도태하지 않기 위한, 박탈당하지 않기 위한, 그리고 일말의 안위를 향한 열망이 모든 것을 경쟁, 비교, 전투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진격의 거인’ 속 인류처럼 생존에 매달리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진격의 거인’이 가진 핵심 모티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에렌은 우리에게 좀 더 내밀한 곳에 자리 잡은 어떤 정서에 대해 얘기한다. 에렌은 거인을 모두 죽이고 토벌하는 일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한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이런 에렌을 작가 성향이 투영된 군국주의의 ‘우익적 인물’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에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자유로운 세상을 보고 걷고 즐기는 일이다.

생존 중심주의와 ‘진격의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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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의 주인공은 인간과 인간이 우애를 나누며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이 꿈은 바깥세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동경으로 가득 찬 에렌의 친구 아르민이 그에게 불어넣었다. ‘진격의 거인’에는 에렌이 거인으로 변해 광기에 사로잡힌 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그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놓는 것은 바깥세상에 대한 순수한 꿈이다. 아르민이 끈질기게 에렌에게 저 바깥세상에 대한 꿈을 기억하라고, 함께 그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자 에렌은 깨어나 인간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현대인의 가장 내밀하고 진실한 정서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인간과 인간의 유대감, 우정, 인류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탱하는 요소는 개인이 가진 ‘내면의 꿈’이다.

그 꿈은 우리 시대를 장악한 성공과 출세, 물질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자유로워진 세상에서 너와 내가 우애를 나누며, 끝없이 펼쳐진 세계의 다원성을 누리는 꿈이다. 이러한 다원성은 이전에 열풍을 일으켰던 ‘원피스’의 꿈이기도 하다. ‘원피스’는 현대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진격의 거인’이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한계 상황을 그렸다면, ‘원피스’는 현대의 또 다른 가능성인 자기만의 꿈을 긍정하며 다원적 세계상을 드러낸다. ‘원피스’의 세계에는 동료 간 진심 어린 우정, 서로의 꿈을 북돋아주고 인정하는 다원성,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희망이 담겼다.

‘대해적의 시대’라고 부르는 ‘원피스’의 세계에서 수많은 해적은 자기만의 개성으로 바다로 나선다. 해적 중에는 악당도 있고, 그저 순수하게 모험을 즐기는 이도 있으며, 심지어 정의로운 해적도 있다. 특히 주인공 루피가 선장인 ‘밀짚모자 해적단’의 멤버들은 각기 다른 꿈을 꾸며 한 배를 탄다. 루피는 해적왕이 되는 것이 목표이고 조로는 세계 최고의 검사, 상디는 최고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 밖에도 각자 훌륭한 의사, 저격수, 고고학자, 가수, 항해사가 되기를 바라는 멤버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배에 올라탄 뒤 ‘위대한 항로’라는 바다를 모험한다.

희망 찾기 핵심적 정서 계속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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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위)와 ‘벼랑 위의 포뇨’.

‘위대한 항로’에는 각기 다른 체제와 문화를 가진 수많은 섬이 자리한다. 이 항로를 여행하는 사람은 특별한 나침반을 이용해 오직 하나의 섬에서 다음 하나의 섬으로 갈 수 있다. 그 규칙을 어기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만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오직 ‘다음 목표’만을 향한 단기적 모험만이 에피소드처럼 존재한다. 이는 거대담론, 단일한 미래와 목표를 향한 진보, 고정적이고 안정된 세계를 거부하는 것으로, 유동적인 현대 세계를 훌륭하게 재현한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 역시 인간과 인간이 우애를 나누며 살아가는 삶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출세, 성공, 명예, 부에 대한 갈망은 이 애니메이션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몸을 잃고 영혼만 갑옷에 남아 있는 동생 알폰스와 팔다리를 하나씩 잃어 기계로 대체하는 에드워드의 여행은 원래의 몸을 되찾고 ‘소박한 행복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최근 영화계를 흔드는 다양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역시 우리에게 진실한 삶에 대한 꿈을 속삭인다. 얼마 전 은퇴를 선언한 미야자키 감독의 주된 정서도 바로 다원적 세상의 꿈이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이 놓치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갈망하는 정서를 그려냈다. ‘벼랑 위의 포뇨’ ‘마루 밑 아리에티’ 등은 인물들이 낯선 이를 만나 서로 마음을 열어가고 긍정하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꿈이 펼쳐지는 다원적 세계의 희망을 그려냈다.

마찬가지로 최근 출시한 신카이 감독의 ‘언어의 정원’ 역시 구두 디자이너라는 특별한 꿈을 가진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며, 호소다 감독의 ‘늑대아이’도 우리가 늘 그리워하는 전원적 세계의 소박하고 진실한 행복이 깃든 삶을 꿈꾸게 한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 현실 속에서 이러한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잊지 말아야 할 ‘더 나은 세계’와 좀 더 ‘진실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새로운 애니메이션 개봉 소식에 미소 짓고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극장을 찾는 이유는 바로 그 희망 때문일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우리 사회의 바로 그 핵심적 정서에 계속해서 변주하며 다가온다.



주간동아 2013.11.04 911호 (p60~62)

정지우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저자 jiwoo9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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