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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펜’은 약하고 ‘돈’의 힘은 세다

중국 신콰이보 언론자유 투쟁 황당한 뇌물 수수 반전으로 마무리

  • 고기정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펜’은 약하고 ‘돈’의 힘은 세다

‘펜’은 약하고 ‘돈’의 힘은 세다

‘신콰이보’는 10월 27일 1면에 자사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 천융저우(위 가운데)가 돈을 받고 기사를 썼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의 사과문을 내보냈다(박스 안 왼쪽 아래). 이 신문은 “천 기자가 뇌물을 받고 허위 보도를 했다”고 털어놨다.

“문을 닫으라고 하면 닫겠다.”

10월 24일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의 유력지 ‘신콰이보’는 자사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천융저우(陳永洲·27)를 석방하라며 이렇게 외쳤다. 전날 1면에 ‘(체포된) 기자를 석방해달라’는 기사를 내보낸 뒤 다시 1면에 이어 5면 전면을 할애해 폐간까지 각오하고 있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하지만 사흘 뒤 신콰이보는 1면에 사과문을 냈다. “천 기자가 뇌물을 받고 허위 보도를 했다”고 실토했다. 문을 닫겠다는 기세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신콰이보의 도전을 언론자유 투쟁이라며 격찬하던 누리꾼의 지지도,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대응을 예의주시하던 국내외 다른 매체들의 관심도 함께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국의 언론자유는 권력으로부터 거부된 것일까, 언론이 스스로 거부한 것일까.

“허위 보도” 1면에 사과문 발표



이 사건은 지난해 9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콰이보는 건설 중장비를 생산하는 국영기업 중롄중커(中聯重科)의 재무 비리를 고발하는 첫 기사를 내보냈다. 이 회사는 홍콩과 상하이 증시에 상장돼 있다.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소재였다. 올해 8월 8일까지 신콰이보가 중롄중커를 겨냥해 내보낸 기사는 18편. 이 가운데 천 기자 이름으로 나간 기사가 14편이다.

그동안 중롄중커 경영진이 신문사를 찾아와 수차례 항의했다. 설득이 먹히지 않자 가오휘(高輝) 중롄중커 부회장이 자신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천 기자와 신콰이보를 비난하는 글을 게재했다. 그러자 8월 6, 7일 천 기자와 신콰이보는 각각 가오 부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해당 사건이 법정으로 가자 중롄중커도 당국에 수사를 의뢰했다.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경찰은 두 달여 동안의 조사 끝에 10월 18일 천 기자를 전격 체포했다. 죄목은 ‘상업적 신뢰도 훼손죄(損害商業信賴罪·형법 221조)’. 사실을 날조해 유포하고 타인의 영업 신뢰도와 상품 명예에 손해를 입히며 타인의 권리에 중대한 손실을 끼치는 행위다.

신콰이보의 대응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10월 23일 1면에 무기명 평론원(논설위원) 이름으로 석방 탄원문을 내보냈다. 중국 신문이 자사 기자와 관련한 내용으로 1면을 모두 털어 기사를 게재하기는 처음이다. 신문은 “독자 제위와 동종업계 기자들의 이해를 구한다”며 “공공의 정의를 돌보지 않고 혁명과 희생과 헌신의 용기가 없다면 정말로 유약하고 이기적이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책임 있는 보도를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우리가 순진했다. 잘못이 있다면 중롄중커의 광고비와 접대비 5억1300만 위안(약 890억 원) 전체를 광고비라고 잘못 쓴 것”이라고 했다. 신문은 24일에도 “기자에게 ‘선체포, 후조사’ 관행을 적용하면 안 된다. 먼저 사실을 확인한 뒤 체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상황까지는 중국 언론민주화 투쟁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했다. 정부와 한 몸인 국영기업에 대한 통렬한 비판, 기자의 구속, 해당 매체의 저항이라는 도식에 잘 맞아떨어졌다. 여론 반응도 뜨거웠다. 인터넷은 신콰이보를 응원하는 글로 넘쳐났다. 관영 신화(新華)통신마저 당시엔 상황 파악을 못 한 듯 “기자를 무조건 체포하는 게 대중의 공감을 얻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난팡도시보’는 “툭하면 기자를 잡아들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포학(暴虐)”이라며 지원사격을 했다.

그러나 26일 관영 중국중앙(CC)TV에 나온 천 기자가 돈을 받고 기사를 썼다고 실토하면서 언론 민주화 투쟁은 ‘부패 기자 스캔들’로 급반전됐다. 머리를 박박 깎은 채 죄수복을 입은 그는 “중롄중커 기사를 모두 내가 쓴 건 아니다. ‘그들’이 원고를 건네주면 조금 손봐서 회사에 넘겼다”고 자백했다. 누리꾼은 화면에 비친 천 기자의 자술서에서 신콰이보 경제부 주임 왕중(王中)과 중롄중커의 경쟁업체인 ‘싼이(三一)중공’의 이름을 포착해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었다. 천 기자는 “나는 돈이 필요했다. 기사 한 건에 50만 위안(약 8730만 원)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천 기자가 강압적인 상황에서 거짓 자백을 강요당했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이튿날 신콰이보의 사과문은 한 가닥 남은 기대마저 내려놓게 했다. 천 기자가 돈을 받고 기사를 넘긴 게 사실이라면 개인뿐 아니라 발행부수 100만 부를 자랑하는 신콰이보의 생존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1년 가까이 관련 기사 18편이 나갈 동안 데스크가 이를 검증하지 못했다면 신문사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뉴스 취사선택) 기능이 마비됐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뇌물을 매개로 데스크와 기자가 의도적으로 합작했다면 결말은 불 보듯 빤하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정권의 두 축은 총대(무력)와 붓대(선전)”라고 말했다. 선전은 언론을 통해 이뤄진다. 중국이 언론사를 선전도구로 삼는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중국 언론사는 신화사, 런민(人民)일보, CCTV 등 11개 관영 매체를 빼면 모두 2003년 이후 민영화됐다. 알아서 먹고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각 매체는 정부에 등록해야 하고 당이나 정부가 지분을 가진 법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의 민간기업이라고 볼 수 없다. 여기에 당 선전부가 내려보내는 보도지침에 따라 주요 기사의 논조와 팩트를 결정하기 때문에 자율성이 많지 않다. 신콰이보의 중롄중커 관련 기사는 경제뉴스라 상대적으로 당국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보도지침과 홍바오(紅包)

언론사가 국가의 철저한 통제 하에 있고 자유로운 취재와 사실에 입각한 기사 작성이 제한적인 만큼 기자들의 사명감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에는 흔히 두 부류의 기자가 있다고 한다. 관영매체 기자와 일반 기자다. 예를 들어 신화통신 기자는 기자라기보다 정부 공무원에 가깝다. 이들 중에는 내참(內參)기자도 있다. 정보보고용 내부 참고 기사를 만들어 당과 국가 주요 기관에 보내는 구실을 한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1명인 류윈산(劉雲山)도 신화통신 기자를 거쳤다.

일반 기자들은 월급에 매여 산다. 관영매체 자매지인 A사의 2년 차 기자의 경우 기본급 2000~3000위안에 주택보조금 1500위안, 사회보장비와 성과급을 더해 6000위안(약 104만 원)가량을 받는다. 관영매체가 아니면 이 돈의 절반도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뒷돈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취재 의뢰를 하려면 홍바오(紅包)라 부르는 거마비를 줘야 한다. 200~300위안에서 많게는 1000위안(17만4000원) 이상 주기도 한다. 언론사나 기자별로 다르게 책정한다. 기업들이 주최하는 언론 설명회에 가면 홍바오를 받으려고 줄을 선 기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홍바오를 받으면 부서 내 상급자와 나누는 경우도 많다. 상사가 허가하지 않으면 외부 취재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언론사와 고용계약을 체결할 때 매달 목표 기사량을 정한다. A사의 한 기자는 “월 8000자를 써야 하는데 거기에 못 미치면 바로 그 달 급여가 깎인다. 그보다 많이 쓴다고 해서 급여가 느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상대적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다는 한 경제신문의 경우, 외부적으로는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지만 기자들은 월 1만2000자 이상을 써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중노동에 가깝다”고 전했다.

언론자유에 대한 고민과 한계

‘펜’은 약하고 ‘돈’의 힘은 세다

기업의 재무문제를 보도한 후 경찰에 구속된 동료 기자의 석방을 요구한 ‘신콰이보’ 1면 기사.

중국에선 한국 기업들이 제품이나 회사 홍보 차 한류 스타를 언론 설명회장에 동원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가 현지 기자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취재는 애당초 관심 밖이다. 갓 스물이 됐을까 싶은 여기자들이 한류 스타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며 몰려가거나 서명을 받아달라고 업체를 조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언론자유를 위한 진정성 있는 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베이징에서 발행하는 ‘신징보’ 기자들은 2005년 편집국장 해임에 항의해 사흘간 파업을 했다. 경제주간지 ‘차이징(財經)’에서도 2009년 편집국장이 강제 퇴임하자 기자 60여 명이 함께 회사를 그만뒀다.

1월에는 광저우 ‘난팡주말’ 기자들이 헌정(憲政)을 주장하는 기사가 광둥성 퉈전(震) 선전부장의 지시로 수정된 채 게재되자 파업에 돌입했다. 난팡주말은 중국 내 진보언론의 표상으로 꼽힌다. 더욱이 당시는 시진핑 주석이 막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등극(2012년 11월)한 시점이라 그 어느 때보다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광저우 시민들까지 나서서 거리 집회를 하며 난팡주말을 지지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중국의 언론자유 투쟁이 어떤 한계를 갖는지를 명확히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난팡주말 기자들은 광둥성 정부가 퉈 선전부장을 적당한 때 경질하겠다고 하자 이틀 만에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퉈 부장은 여전히 현직에 있다.

거리 집회를 하던 시민들도 대가 무르긴 마찬가지다. 언론자유를 반드시 쟁취해야 할 민주화 과정의 핵심 기제로 보기보다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인 일종의 사회 현상 정도로 생각한다. 당시 거리 집회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1980년 한국의 광주에 대해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은 그런 식의 희생을 원치 않는다. 민주화가 목숨을 걸 사안은 아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기자는 언론자유에 대한 소명의식이 부족하고, 시민은 이를 추동할 만큼 조직화되지 않은 게 오늘날 중국의 현주소다. 국제 언론환경 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는 올해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중국이 조사 대상 179개국 중 173위라고 밝혔다. 한국은 50위다.



주간동아 2013.11.04 911호 (p47~49)

고기정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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