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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추락하는 월가의 황제 날개는 있나

JP모건체이스 앤드 컴퍼니 제이미 다이먼, 거액 벌금 물고 형사기소 당할 판

  • 박현진 동아일보 뉴욕특파원 witness@donga.com

추락하는 월가의 황제 날개는 있나

10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57) JP모건체이스 앤드 컴퍼니(JP모건)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의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줘 화제가 됐다. 10월 초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주요 금융인이 회동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례적으로 뒷좌석을 배정받았다. 대통령과의 회동 때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바로 맞은편에 앉았던 그였다. 바로 이전 모임에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기탄없는 의견을 주고받은 그였지만 이날은 거의 말이 없었다는 게 참석자들 전언이라고 WSJ는 보도했다.

2011년 하반기 거대 금융자본의 탐욕을 규탄하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을 때 월가를 대변하는 선봉에 섰던 인물이 다이먼 회장이다. 당시 그는 “미국 자본주의의 성공에는 월가가 자리 잡고 있다”며 시위대를 맹비난했다. 또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가장 강하게 맞섰다. 실제 지난해 8월 한 은행가들 모임에서 그는 “여기는 소련이 아니라 할 말을 다하는 미국이다. (월가를 공격하는 것과 관련해) 전 세계가 미쳐 돌아간다”고 울분을 토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비속어인 ‘퍼킹(fucking)’을 사용해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그의 자신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탄탄한 리스크 관리로 잘 이겨낸 점과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JP모건을 미국 최대 은행(자산 기준)으로 키워낸 능력에서 비롯됐다. AIG,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 내로라하는 금융회사가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릴 때 그는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거의 헐값에 사들여 덩치를 키웠다.

월가 대변인에서 애물단지로

다이먼 회장의 경영능력과 리더십은 일찌감치 빛을 발했다. 그리스계 이민자 후손으로 1956년 뉴욕에서 태어난 다이먼 회장은 부친의 직장상사였던 샌포드 웨일 전 씨티그룹 회장 겸 CEO의 설득에 이끌려 그의 비서로 금융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0년 뱅크원 CEO로 있으면서 JP모건과의 합병을 단행한 뒤 피인수 은행의 경영자로는 드물게 2005년 JP모건의 CEO에 오르는 놀라운 수완을 보여줬다. 이듬해엔 회장까지 겸직하면서 9년째 자산 2조5000억 달러(약 2640조 원)와 임직원 25만여 명(이상 지난해 말 기준)을 거느리는 ‘금융 황제’로 자리매김했다.



정치권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막대한 로비자금을 워싱턴에 쏟아부으며 ‘메인스트리트’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해엔 로비자금으로 800만 달러를 썼으며, 올해도 250만 달러를 갖다줘 정치권에 가장 많은 재정적 기여를 하는 금융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는 오바마에게 베팅했다. 월가 개혁으로 백악관과 골이 깊어지기 전까지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총애하는 은행인으로 평가받았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다이먼 회장을 재무부 장관 후보로 고려하기도 했다.

JP모건 회장 취임 이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선정 ‘영향력 있는 100인’에 4차례나 오를 정도로 막강했던 그의 파워가 최근 들어 급격히 쇠퇴하고 있음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6월 임직원에게 보낸 내부 e메일에서 “규제기관들과 투명하고도 열린 문화를 쌓고 유지해나가려면 우리가 잘 순응하고 원하는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쓸데없는 규제로 금융권을 못살게 군다’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증권위원회(SEC)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최근에는 JP모건 자회사인 JP모건체이스은행 회장직에서 물러났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다이먼 회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지난해 5월 터진 일명 ‘런던고래 사건’이다. JP모건 런던지점의 파생상품 트레이더인 브루노 익실(별명 런던고래)이 투기거래를 하다 62억 달러라는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다이먼 회장의 명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꼼꼼하기로 유명한 다이먼이 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그가 책임을 지고 당장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그가 30년 동안 쌓은 명분을 잃는 데는 45분이면 충분했다”고 조롱했다. 45분은 다이먼 회장이 파생상품 투자 실패의 원인을 콘퍼런스콜로 애널리스트 등에게 해명하던 시간이다. 또 당초 손실액을 20억 달러로 밝혔다가 한 달 만에 62억 달러라고 정정하면서 사건을 은폐 또는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JP모건은 지난달 이 사건으로 벌금 9억2000만 달러(약 9725억 원)를 내기로 미국과 영국 금융규제당국과 합의했다. 1조 원에 육박하는 벌금을 미국 통화감독청(OCC)과 연준, 영국 금융감독청(FCA)에 각각 나눠 내기로 했다. 장외파생상품에 대규모로 투자해 손실이 나는 과정에서 은행이 제대로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한 사후에 손실을 은폐하려고 고위로 관련 장부를 조작하면서 감독당국에 재무상태를 정확하게 보고하지 않은 책임도 물었다.

그의 목 정조준하는 규제당국과 사법부

추락하는 월가의 황제 날개는 있나

2008년 4월 16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춰 열린 미국 경제계 주요 인사 오찬간담회에 참석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맨 오른쪽)이 당시 박해춘 우리은행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강정원 KB국민은행장(맨 왼쪽부터)과 담소하고 있다.

문제는 다이먼 회장의 시련이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런던고래 사건’과 관련해 미 연방수사국(FBI)과 검찰은 형사 기소에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JP모건이 회사채와 연계된 시장 지수를 조작했는지와 글로벌 환율 조작에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에 착수했다.

이 조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태풍이 불어닥칠 곳은 과거 금융위기를 불러온 진원지로 불리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쪽이다. 10월 19일 세계 주요 언론은 JP모건이 2005, 2006년 투자자들에게 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모기지 증권을 부실 판매한 혐의로 130억 달러(약 13조8060억 원)를 지불하기로 법무부와 잠정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합의안을 법원이 수용해 최종 확정되면 법무부가 물리는 사상 최대 합의금이 된다.

이번 합의는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감독하는 미 연방주택금융청(FHFA)과 뉴욕 주 검찰이 각각 2011년과 지난해 JP모건에 대해 소송을 낸 것이 발단이 됐다. JP모건은 두 소송 취하 조건으로 FHFA에 벌금 40억 달러를 물고 사법당국에 벌금 50억 달러를 내기로 했다. 나머지 40억 달러는 피해 고객들에 대한 손해배상액으로 지급하기로 법무부와 합의했다. 이번 합의금은 지난해 JP모건 순이익(213억 달러)의 절반을 넘는다. JP모건이 모기지와 관련해 각종 소송 합의금 및 정부에 낸 벌금만 2012년과 올해 합쳐 이미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다음 달에는 SEC에서 수억 달러에 달하는 모기지 관련 벌금을 물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이먼 회장은 이달 초에도 워싱턴으로 달려가 에릭 홀더 법무부 장관에게 매달렸다. 몇 달 전만 해도 합의금 30억 달러를 제시했던 다이먼 회장은 지난달 110억 달러 선에서 형사기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합의하자고 제안했으나 홀더 장관은 단칼에 거부했다. 결국 130억 달러로 합의금을 올리고 형사기소는 그대로 유지하는 당국의 강수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금까진 거액의 합의금을 내면 형사기소를 취하하는 것이 월가 관행이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번에 그 관행을 바꾸려 하며, 그 첫 사례가 JP모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이먼 회장이 앞으로도 ‘불면의 밤’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간동아 2013.10.28 910호 (p54~55)

박현진 동아일보 뉴욕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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