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0

2013.10.28

‘고환율 신화’는 허구다?

수출 제조업 고용 비중 줄어 낙수효과 약화… 한국 경제 전체로 보면 민감도 줄어

  • 이정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tyches@woorifg.com

    입력2013-10-28 09: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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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환율 신화’는 허구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10월 24일 오후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가파르다. 10월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061.4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7월 초까지만 해도 1150원 선을 상회했지만 3개월여 만에 100원가량 하락한 것이다( 참조). 더불어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경기회복세가 둔화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일반적으로 한국 경제는 환율 변화에 매우 민감한 것으로 인식돼왔다. 경제성장의 수출 의존도가 높고 수출 비중이 높은 제조업의 구실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30.3%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GDP 대비 수출 비중은 56.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7.6%)의 2배에 달한다. 더구나 현재 제조업 비중과 수출 비중은 모두 사상 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 향상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고환율(원화 가치의 저평가)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즉 고환율 상황에서는 수출 기업의 수익성이 향상되고, 수익이 늘어난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늘리며, 이것이 소득 증대와 민간 소비 확대 등 전반적인 경기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낙수효과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정책적으로도 작은 내수시장 규모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수출 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고환율을 지지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출이 최근까지도 상대적으로 견조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고용 등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회복세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과거에 비해 낙수효과가 약화됐을 개연성을 제기하는 근거다.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일부 수출 기업의 실적과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 온도차도 점점 커지는 실정이다. 고환율 상황이 반드시 한국 경제 전반에 유리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원화 절상이 한국 경제의 각 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다시 분석했다. 그 결과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민감도는 과거보다 완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생산과 수출, 소비와 투자, 고용 등 세 가지 측면에서 하나씩 살펴보자.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 투입하는 수입중간재(원재료나 부품 등) 부분과 생산한 제품의 수출 부분이 환율 변동에 직접 노출된다. 최근처럼 원화 가치가 상승할 경우 수입중간재의 원화 환산 가격이 하락해 생산비가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반면 수출에서는 원화 환산 수출단가가 낮아져 동일한 물량을 수출해도 수출액이 감소하게 된다. 즉 기업 매출이 하락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환율 변화에 대해 생산비 감소와 수출액 감소가 기업 수익성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부 상쇄되는 부분이 있다.

    원화 절상 소비와 투자에 유리

    ‘고환율 신화’는 허구다?
    그러나 수출 기업의 경우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이 높아 원화 강세가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조업의 경우 2011년 기준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이 수입중간재 비중에 비해 평균 8.7%p 높게 나타났고, 산업 전체적으로도 평균 3.6%p 높게 나타났다. 게다가 원화 강세가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수출 물량에 영향을 미칠 경우 그 피해가 더욱 확대될 소지도 크다.

    예컨대 원화가 10% 절상될 경우 2011년 산업구조 및 투입산출구조를 기준으로 생산과 수출 측면에서 부가가치의 변화는 -1.01%(-12.2조 원)로 추정된다. 동일한 환율 변화에 따른 부가가치의 변화는 1995년(-0.52%)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참조). 자동차, 조선, 기계, 전기전자 등 주요 산업의 수출 비중이 빠르게 증가한 데 따른 결과다.

    다음은 민간과 공공부문의 소비 및 투자다. 원화 절상은 수입 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오히려 소비와 투자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소비와 투자에 필요한 최종재(소비재+자본재) 수입 물량이 동일하다고 보면, 수입최종재에 대한 지출이 감소해 실질적인 지출 여력은 확대된다. 지출 여력 확대를 부가가치 증가로 환산하면 원화가 10% 절상될 경우 소비와 투자 부문에서의 부가가치는 2011년 기준 0.95%(11.6조 원)만큼 증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비와 투자 부문의 부가가치 민감도는 수입최종재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상승세를 나타낸다.

    환율 변동에 따른 기업의 생산과 수출 부문 영향은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여 더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동일한 환율 변동에 대해 생산과 수출 측면, 소비와 투자 측면의 부가가치 변화가 반대 방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두 부문을 합산한 한국 경제 전체의 부가가치 민감도는 각 부문 민감도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2011년 산업구조 및 투입산출구조를 기준으로 할 때 원화 절상에 따른 부가가치의 변화는 -0.05%로 2005년(-0.15%)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 업종별로는 수출 비중이 늘어나고 주력 수출 업종의 영향력이 커져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이 확대됐으나, 경제 전체적으로는 민감도가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고용 측면이다. 산업 전체적으로 수출이 수입보다 크므로 원화 절상은 산출액 감소로 이어지고, 이러한 산출액 감소는 고용 감소로 직결된다. 원화가 10% 절상될 경우 2011년 산업구조 및 투입산출구조를 기준으로 -0.34%(5만여 명)의 피용자 수 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추산된다( 참조).

    세밀하게 검증하고 환율에 접근을

    ‘고환율 신화’는 허구다?
    그러나 동일한 환율 변화에 대한 피용자 수 변화는 2000년(-0.48%) 이후 점차 둔화하는 추세를 보인다. 환율 변화에 대한 고용 민감도가 줄어든 것은 환율 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수출 제조업의 고용 비중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용계수(산출액 10억 원당 피용자 수)는 1995년 13.2명에서 2011년 4.4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서비스업의 고용계수가 18.6명에서 8.0명으로 절반 정도 줄어든 데 비해 제조업의 고용계수는 9.9명에서 1.9명으로 5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특히 주력 수출 업종인 기초소재, 전기전자, 자동차산업 등의 고용계수 하락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처럼 제조업의 고용계수 감소가 서비스업에 비해 큰 폭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경제 전체 고용 중 제조업의 비중은 1995년 34.6%에서 2011년 22.1%로 크게 줄어든 반면, 서비스업의 비중은 52.7%에서 66.8%로 확대됐다. 고환율 상황에서 환율 변화에 민감한 주력 수출 업종을 중심으로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수익 증가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 비중이 세계적으로 높고 경제성장에서 수출 중요도도 매우 큰 편이다. 따라서 최근 같은 환율 하락은 한국 경제 전반에 부가가치 감소와 소득 감소를 유발하는 등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산업구조와 소득분배구조가 지속적으로 변하고 수출 제조업의 고용 효과도 계속 낮아져, 경제 전체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수출 낙수효과가 약화한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고환율로 인한 수혜나 저환율로 인한 피해가 과거에 비해 축소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무조건 한국 경제에는 고환율이 유리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정책비용과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더욱 세밀하게 검증하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환율 신화’는 허구다?

    경기 평택항의 현대·기아자동차 수출 선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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