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0

2013.10.28

그래도 사형제는 사형시켜라!

실질적 사형제폐지국 한국, 사형제 폐지 10가지 이유

  • 허일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장 ithuh@dau.ac.kr

    입력2013-10-28 09: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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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사형제는 사형시켜라!

    유인태 민주당 의원(가운데)과 사형제에 반대하는 종교ㆍ사회 단체 회원들이 2012년 12월 국회 정론관에서 사형집행 중단 15주년을 맞아 사형제의 법적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말 사형수 23명에 대한 형 집행 후 현재까지 15년 10개월 동안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사형을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은 국가를 실질적 사형제폐지국으로 분류한다. 한국은 이미 5년 10개월 전부터 실질적 사형제폐지국으로 등재돼 인권국가 반열에 올랐다.

    한국의 이런 상황을 부러워한 일본변호사연합회는 2011년 말 사형제폐지연구회를 구성했고, 2012년 6월 일본의 전직 법무성 장관 2명을 포함한 법조인 14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우리가 실질적 사형제폐지국이 된 배경을 묻고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를 비롯한 각계 의견을 청취했다.

    전 세계 21개국에서만 사형 집행

    무고한 생명을 아무 이유 없이 무참히 해하는 반인륜적이고 흉악한 살인사건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그러기에 이런 반인륜적 살인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하는 게 정당하고 또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범법자에게 사형을 집행하면 범죄 예방효과가 적지 않으며, 살인자를 사형에 처해야 국가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논거다. 반인륜적 범죄를 연쇄적으로 범한, 즉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범에 대해서만은 사형 집행을 재개해야 한다는 요구도 지속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국의 인권국가 지위를 잃게 할 뿐 아니라,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 국가는 복수로서의 형벌제도를 두지 않는다. 반인륜적 살인범에게조차 마찬가지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사회 불안을 가중한다. 복수로서의 형벌은 이미 극복된 구시대 사상이다.

    둘째, 바로 이런 이유로 세계 198개국 가운데 사형제를 법률적 또는 실질적으로 폐지한 국가가 140개국에 이른다. 사형제 폐지 국가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 현재 58개국만 사형존치국가에 속한다. 이들 중에서도 과반이 되지 않는 21개국에서만 사형을 집행한다.

    셋째, 국가는 개인과 같은 감정적 존재가 아닌, 윤리적이고 이성적 존재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고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도 안 된다. 국가가 국민에게 절도하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민 재산을 절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국민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국가 스스로 사람을 죽이는 사형제를 유지한다는 건 모순의 극치다.

    넷째, 모든 인권국가에서는 반인륜적 흉악범에 대해 손발을 절단하는 등 신체 절단의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다. 이런 형벌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기 때문이다. 손발을 절단하는 것이 잔인해 용납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사형제는 더욱 잔인한 형벌로 결코 허용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다섯째,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는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여기서 기본적 인권의 본질적 내용은 생명이며,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손발에 대한 절단형이 신체자유에 대한 본질적 침해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면, 신체자유의 본질적 내용은 인간 육체와 그 육체에 대한 생명의 결합으로 생긴 자유다. 즉 신체자유 가운데 인간의 생명인 정신을 제거하면 육체만 남게 되는데, 생명이 없는 육체는 시체에 불과하다. 인간의 시체가 신체자유의 본질적 부분일 수 없으며, 생명을 전제로 하는 신체만이 신체의 본질적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여섯째,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에서 인도된 범인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범죄인 인도조약을 2009년 EU와 체결했고, 2011년 국회가 이를 비준했다. 이 때문에 EU에서 우리나라로 인도된 범인이 흉악범죄를 범했어도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렀거나 일본 혹은 미국 등에서 인도된 반인륜적 흉악범에 대해 사형집행을 하는 것은 ‘법 앞의 평등권’을 천명한 헌법에 반한다.

    일곱째, 우리나라에서는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과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계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사법살인을 당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사형제가 있었기 때문이며, 사법살인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사형제 폐지다.

    반인륜범죄 예방 효과도 없어

    여덟째, 사형제는 살인범죄를 비롯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실질적 예방효과가 없다. 유엔인권이사회는 1988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 존치가 살인사건을 실질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 예방 효과가 있음을 입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홉째, 사형제는 사형을 당한 자만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교도관과 사형당한 자의 가족에게도 본의 아니게 큰 고통을 안긴다.

    이 모든 이유와 더불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 마지막 이유는 사형제가 안고 있는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 사형제와 동일한 정도로 반인륜적 흉악범의 재범 소지를 영원히 차단할 수 있는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이라는 대안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형수 현황

    15년 넘게 사형 중단…61명 사형 확정 판결

    그래도 사형제는 사형시켜라!

    이승만 정부에서 간첩죄 등으로 검거된 죽산 조봉암(오른쪽)이 재판을 받는 모습. 그는 환갑을 맞은 해인 1959년 7월 31일 사형에 처해져 8월 2일 서울 중랑구 망우리묘지에 안장됐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따르면 2013년 1월 현재 우리나라 사형수는 61명이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12월 30일 23명이 사형당한 뒤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은 없지만, 사형 선고는 계속 나오고 있다. 2000년대에도 유영철(2005년 6월)을 비롯해 여성 10명을 연쇄 납치, 살인한 강모 씨(2009년 7월), 여행 온 청년 4명을 배 위에서 살해한 ‘보성 어부’ 오모 씨(2010년 6월) 등이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오씨는 재판 중이던 2008년 9월 헌법재판소(헌재)에 사형제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지만, 헌재가 2010년 2월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뒤 사형이 확정됐다. 이때 헌재는 “사형제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조항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고, 헌법이 규정하는 기본권 제한 대상에 생명권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후 국회에서 유인태 민주당 의원 등이 중심이 돼 사형제 폐지를 추진 중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 수립 후 현재까지 920명이 사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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