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7

2013.10.07

“번번이 꼬이는 北核 협상 그래도 대안은 6자회담뿐”?

‘동북아평화 이니셔티브’ 워싱턴 세미나…미국 조야 무용론 분위기 팽배

  • 워싱턴 DC=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3-10-07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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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번이 꼬이는 北核 협상 그래도 대안은 6자회담뿐”?

    9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유니버시티클럽에서 열린‘동북아평화 이니셔티브 - 한반도를 위한 로드맵 구축’ 국제세미나.

    6자회담 재개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이어진 ‘말 폭탄’ 국면을 돌아 각국 사이의 대화 재개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조만간 회담이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관련국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쏟아져 나왔지만, 하반기 들어 ‘조건 없이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북측 주장과 ‘북한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 측 견해가 맞닥뜨리면서 상황은 외견상 정체에 접어들었다.

    반면 9월 중순 이후 물밑에서 감지되는 흐름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9월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북한, 중국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6자회담 10주년 기념 세미나, 9월 25일 독일 베를린과 10월 2일 영국 런던에서 잇달아 열린 북·미 전·현직 당국자들의 비공개 세미나 등 반관반민(半官半民) 형식의 ‘샅바싸움’이 연이어 진행됐기 때문. 6자회담 참가국이 서로의 로드맵을 조율하는 이들 자리에서는 다양한 낙관과 비관이 오가며 회담 재개 가능성이 타진됐다.

    이와 관련해 9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유니버시티클럽에서는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 국가정보국(DNI) 국가비확산센터 소장 등 북핵 문제의 전직 핵심 당국자들이 참석한 ‘동북아평화 이니셔티브 - 한반도를 위한 로드맵 구축’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미국 워싱턴타임스재단이 한국과 주변 4강을 순회하는 국제세미나의 일환으로 진행한 이 행사는 8월 일본과 서울에서 열린 데 이어 세 번째. 워싱턴타임스재단 측은 “문선명 창간인 서거 1주년을 맞아 그가 생전에 벌인 세계평화운동을 기념하는 취지에서 마련한 행사”라고 밝혔다. 일본 현역의원 4명을 포함해 각국의 다양한 인사가 참석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전제조건과 향후 전망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이 오갔다.

    테이블에 앉기 전 해야 할 일

    “번번이 꼬이는 北核 협상 그래도 대안은 6자회담뿐”?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한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 국가 정보국(DNI)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위), 준 이소무라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

    첫 번째 발표를 맡은 힐 전 차관보는 자신이 6자회담 수석대표로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05년의 경험을 회고하며 “당시에도 형식화한 6자회담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물밑에서 진행된 민간 차원의 접촉을 시작으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 일정부분 합의를 이뤄낸 후에야 본격적인 회담 재개 논의가 가능했고, 그 결과가 2005년 9·19공동성명이라는 성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었다. 무조건 협상테이블에 앉고 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사전준비를 한 후 회담을 열어야 북핵 문제의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같은 취지에서 힐 전 차관보는 향후 진행될 북핵 협상이 기존 합의의 연속상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측이 최근 주장하는 이른바 ‘조건 없는 회담 재개’는 이러한 기존 합의를 되돌리려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협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제시하면서, 대화와 인도적 지원 같은 우호적 조치와 병행해 국제사회의 제재나 미사일방어망(MD) 구축 같은 물리적 대응수단도 함께 마련해 압박 수위를 높여가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핵을 포기한 뒤에도 북한을 무력으로 공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평양과 베이징에 확실히 인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와 함께 힐 전 차관보는 북한 내부의 소요나 쿠데타 등 이른바 ‘급변사태’의 개연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같은 극단적 상황에 대비할 필요는 있지만, 조만간 그러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많지 않고 그 개연성에 기대 정책을 추진할 수도 없다는 단언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관련해 미국 보수진영 일각에서 제기된 ‘북한과 신뢰 있는 관계가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에 대해서는 “한반도 문제, 특히 통일과 관련된 문제는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서적 측면이 있다”면서 “미국의 가장 소중한 동맹인 한국의 판단과 정책방향을 함부로 예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워싱턴 일각의 비판에 대해 역비판을 가했다.

    두 번째 연설자로 나선 양창식 워싱턴타임스재단 이사장은 9월 중순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역도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애국가가 연주되고 태극기가 게양된 일을 거론하며 “최근 수 주간 낙관적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기통치를 염두에 두고 있을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서는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느린 속도로나마 관계 개선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와 함께 양 이사장은 1945년 해방 직후 38선을 설정한 과정에 미국 측이 개입한 사실을 거론하며 “분단에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한 미국이 이제는 통일을 위해 긍정적인 기여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섣불리 낙관할 수 없는 이유

    세 번째 패널을 맡은 디트라니 전 소장은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래 20년 동안 국제사회 전체에 북한에 대한 피로감이 쌓인 게 사실이지만, 비핵화를 택하면 경제적 안정과 북·미 관계 정상화 등 ‘좋은 길’이 열릴 것임을 보여줄 책임은 여전히 미국과 국제사회에 있다”고 말했다. 핵을 포기하는 것이 북한 체제에 위험스러운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시킬 때만이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그는 인민군에 대한 조선노동당의 통제력 강화와 개성공단 재가동 합의 등 최근 북측의 행보를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면서 “대화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이와 함께 미국이 북한에 대한 관심을 낮춰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눠 제시하기도 했다. 2300만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주의적 책임, 핵폭탄과 미사일 위협을 차단해야 하는 전략적 책임, 이러한 대량살상무기가 동아시아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하는 비확산 측면의 책임을 함께 지고 있다는 것. 이를 수행하려면 당장 정서적으로 불편하더라도 북측과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 소통을 늘려나가고, 이를 통해 휴대전화 같은 통신수단이 더 많은 북한 주민에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 외에는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분석국 등에서 40년 가까이 북한 문제를 다뤄온 디트라니 전 소장은 ‘북한 속내를 정확히 꿰뚫어보는 몇 안 되는 미국 측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2012년 4월과 8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북·미 비밀접촉 당시에는 시드니 사일러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북한 담당관과 함께 특별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체제의 ‘진의’를 타진한 바 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10월 2일 런던에서 열린 북·미 비공개 접촉에도 참여해 이용호 외무성 부상 등 북측 참석자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 발표를 맡은 준 이소무라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할수록 지역 내 긴장이 커지는 현실을 주로 분석했다. 동북아 평화체제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마련되지 못하면 중국과 일본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100년 전 역사가 고스란히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 특히 현재의 동북아 질서를 만들어낸 당사자인 미국이야말로 최근 변화의 흐름이 어디로 향할지 그 로드맵을 명확하게 제시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러한 미래 비전에 대해 관련국 사이에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돼야만 북한 핵 문제의 해결도 비로소 문이 열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협상에 대해 원칙적 태도를 견지하는 상황에서 개최된 이번 세미나에서는 최근 워싱턴 조야에 흐르는 ‘회담 무용론’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 있었다. 2008년 영변 냉각탑 철거라는 초대형 이벤트로 명성을 얻은 힐 전 차관보의 견해도 2~3년 전에 비해 자못 강경해졌고, ‘외로운 협상파’로 불리는 디트라니 전 소장의 발제 역시 협상을 통한 해결을 확신하기보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취지에 가까웠다. 워싱턴의 누구도 북핵 협상의 성과를 소리 높여 자신할 수 없는 상황.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북·미 간 물밑접촉과 중국 측의 강도 높은 드라이브에도 6자회담 재개를 섣불리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갈 길이 멀다.

    인터뷰 |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북한이 기존 논의 인정해야 미국도 6자회담 나설 것”


    “번번이 꼬이는 北核 협상 그래도 대안은 6자회담뿐”?
    세미나의 첫 발표자로 나선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사진)는 2005~2009년 북핵 협상의 주요 국면을 진두지휘했던 당사자다. 2004년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하기도 한 그는 2010년 현역에서 물러난 뒤 현재는 미국 덴버대 조세프코벨국제대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세미나 전 별도 인터뷰를 통해 북핵 현안에 관한 그의 견해를 들었다.

    최근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시설은 본인이 2007년 불능화 작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이후 자신의 주요 업적으로 기록돼왔다는 점에서 소회가 남다를 텐데.

    “물론 개인적으로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특히 북한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화에 대한 북측 의지는 조금 나아진 부분이 있는 듯하지만 행동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악화됐고, 이는 대화 자체를 매우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관심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최근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북한을 절대 핵 국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극단적 현실론이든 협상 무용론이든, 북핵을 인정하는 뉘앙스의 발언은 북한을 돕는 결과만 낳는다. 평양 당국자들로 하여금 언젠가 국제사회로부터 핵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견지하며 북한을 압박해야 하는 시점이다. 협상과 제재, 군사적 준비 등을 모두 동원해가며 핵을 추구할수록 북한 체제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와 동시에 핵 개발을 포기하면 더 나은 미래가 열린다는 사실도 함께 주지시켜야 한다.”

    6자회담 문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견해는 2012년 2·29합의보다 진전된 북한의 행동, 이른바 ‘플러스 알파(α)’가 있어야 재개 가능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 측 자세를 평가하자면.

    “최근 북한이 말하는 ‘조건 없는 대화 재개’는 듣기에만 그럴듯할 뿐 알맹이가 없다. 그건 이제까지 이뤄온 논의를 무시하고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나처럼 그간 협상을 진행하느라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허무한 노릇이다. 그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한데도 언제 다시 그간의 논의를 부인하고 나설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북한이 진정으로 대화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평양의 정책결정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예컨대 2005년 9·19 공동성명이나 2007년 2·13합의에 근거해 이러저러한 논의를 첫 회담에서 진행하자는 구체적인 제안을 해온다면 (미국으로서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럴 의도가 없어 보이고, 진심으로 대화를 원한다는 징후가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조만간 그러한 태도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회의론자도 긍정론자도 아니다. 논리적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비핵화뿐이지만, 북측 지도자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것 같다는 게 문제다. 오히려 북한은 핵 보유를 인정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국제사회에 형성되기를 기다리려는 것 같다.”

    흔히 북한을 협상가들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북·미 협상을 담당했던 많은 미국 측 당국자가 뚜렷한 성과 없이 임기를 마치는 일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북한과 엮이게 된 것을 후회한 적 있나.

    “(웃음) 직업외교관에게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임무에 덤벼들겠다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북한이라는 이슈를 피했다면 아마 지금쯤 (후회로) 밤잠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북한은 정말 어려운 상대였고 그와 관련해 힘든 일도 많았다. 반면 얻은 것도 있다. 한국에 대한 이해와 친밀감이다. 지금도 서울에 갈 때는 친정집에 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단지 내가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기 때문이 아니라, 남한 국민에게 심정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오랜 기간 다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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