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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원홍 귀국이 오히려 독? SK 회장 형제의 악몽

항소심서 모두 구속 SK그룹 충격…횡령죄 아닌 괘씸죄? 수사 결과에 주목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김원홍 귀국이 오히려 독? SK 회장 형제의 악몽

김원홍 귀국이 오히려 독? SK 회장 형제의 악몽
“심판(재판장)이 링 위에 올라가 함께 싸우는 느낌이었다.”(한 법조계 인사)

“감독(변호사)의 2루 도루 사인(펀드 조성 인정)에 슬라이딩하지 않고 서서 뛰다 아웃된 꼴이다. 도루 사인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슬라이딩을 안 한 게 패인인지 알 수 없다.”(SK그룹 내부 인사)

횡령 주범은 누구인가

9월 27일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형제의 회사 돈 횡령사건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 직후 법조계와 SK그룹 내부 관계자로부터 흘러나온 얘기다. 심판은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 4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를 가리킨다. 거친 표현으로 피고인을 공박하고 검찰로 하여금 공소 사실을 추가하게 하는 재판장의 행동을 권투에 빗대어 표현한 것. ‘슬라이딩을 안 한 것이 패인’이라는 말은 최 회장이 항소심에서 일부 잘못을 인정한 뒤, 자신의 죄를 절절히 반성하는 모양새를 보이지 않은 것이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아쉬움을 야구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 결과는 최 회장 형제뿐 아니라 SK그룹 전체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일부 혐의를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번 재판의 핵심 인물로 중국, 대만에 머물던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이번 횡령사건은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베넥스) 대표와 내가 공모해 모두 꾸민 일이며 결국 나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밝힌 녹취록을 공개한 점 등으로 미뤄 최소한 1심보다는 형량이 줄거나 집행유예가 나올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SK그룹의 부푼 꿈은 악몽으로 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에겐 1심과 같은 4년형,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최 부회장에겐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법정 구속했다. 선고 전날인 9월 26일 김 전 고문이 국내로 송환되면서 “선고재판을 연기하고 김 전 고문을 증인으로 채택해 변론을 재개하게 해달라”는 SK그룹 측 변호인단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김준홍 전 대표가 운용하는 베넥스에 SK그룹 계열사인 SK텔레콤과 SK C·C가 펀드 출자금 명목으로 건넨 465억 원을 김 전 고문이 전달받아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는데, 이 과정을 실질적으로 기획한 사람이나 직접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또한 465억 원의 성격이 실제 펀드 투자금인지, 아니면 사적 이익을 얻으려고 빼돌린 돈인지도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1심에서 최 회장은 “펀드 조성 사실조차 몰랐다”고 했고, 최 부회장은 “김 전 대표가 졸라서 그렇게 하자고 했을 뿐”이라며 회사 돈 횡령혐의를 김 전 대표에게 모두 돌렸다. 김 전 대표는 “최 회장이 먼저 펀드 조성에 대해 얘기했다”고 했다가 “최 회장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하는 등 애매한 말로 일관했다. 재판 결과는 최 회장과 김 전 대표는 유죄, 최 부회장은 무죄였다.

그런데 2심에서 김 전 고문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최 회장 형제는 완전히 말을 바꿨다. “이 모든 과정이 최 회장 형제의 투자자문 노릇을 한 김 전 고문과 김 전 대표가 공모해 일어난 일이고, 최 회장은 펀드 조성과 펀드에 건넨 돈이 투자자금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았다”는 것. SK그룹 측은 “최 회장이 말을 바꾼 게 아니라 1심에선 김 전 고문과 최 회장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것이고, 2심에서 한 말은 모두가 실체적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결과론적 얘기이긴 하지만, SK그룹 계열사로부터 465억 원을 빼내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김 전 고문이고 그다음은 김 전 대표이며 최 회장 형제는 한 푼도 손에 쥔 게 없다. 김 전 고문은 아예 그 돈을 통째로 자신의 보험사업에 사용한 후 수수료까지 챙기며 착복했고, 김 전 대표는 펀드 수수료를 챙겼다. 1, 2심 재판부의 실형 선고에 최 회장이 억울해하는 대목도 바로 이 부분이다.

김 전 고문은 항소심 재판 이틀 뒤인 9월 29일 횡령사건의 공범으로 구속되면서 “465억 원은 김 전 대표와의 개인적 금전거래다. 465억 원 가운데 201억 원은 김 전 대표가 나에게 빌려갔던 돈을 갚은 것이고, 나머지는 내가 김 전 대표에게서 빌린 돈이다. 거래는 모두 수표로 이뤄졌다. 횡령하기로 한 돈을 수표로 거래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즉, 김 전 고문은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녹취록 그대로 자신과 김 전 대표가 이 사건 전체를 공모했음을 인정했고, 나아가 김 전 대표를 회사 돈을 빼내 자신에게 준 장본인으로 지목한 셈이다.

항소심의 최대 수혜자 김준홍

김원홍 귀국이 오히려 독? SK 회장 형제의 악몽

9월 25일 SK그룹 회사돈 횡령사건 상고심 재판에서 1심과 같은 형을 선고받은 최태원 회장(왼쪽)과 3년6개월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된 최재원 부회장 형제. 이 재판의 최대 수혜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오른쪽)다.

최 회장 형제가 항소심 선고를 두고 억울해하는 것도 재판부가 김 전 고문의 자백성 진술을 배척한 채 유독 김 전 대표의 진술에 대해선 신뢰를 보인 점과 무관치 않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대표를 20여 차례 공판 가운데 15차례나 불러 펀드 조성을 최 회장이 직접 지시했는지를 물었다. 김 전 대표의 진술 또한 최 회장 형제처럼 그때마다 달랐다. 항소심 막판에 가서는 펀드 조성과 선지급 책임을 최 회장 형제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재판부에 제출된 김 전 대표와 김 전 고문의 대화 녹취록에는 김 전 대표가 펀드 조성 및 선지급을 먼저 제안하고 “펀드 자금의 대여도 가능하다”고 하는 대목도 나온다. “법적으로 문제없느냐”는 김 전 고문의 질문에 김 전 대표는 “문제없다”고 답하며, 오히려 김 전 고문에게 “최 회장을 만나면 1500억 원 정도 펀드를 조성하고 선지급해야 한다고 말해놓으라”고 부탁하는 대목까지 나온다.

결국 김 전 대표는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혼자 웃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1심 형량은 3년6개월 실형이었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선 “김 전 대표의 변호인인 이모 변호사와 문 부장판사의 친분이 재판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펄쩍 뛰며 이런 소문을 극구 부인했다. 다만 “솔직히 죄를 인정하고 사실대로 말하는 피고인에게 상대적으로 관용을 베푸는 문 판사의 성향을 잘 알고 대처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문 판사가) 대학 1년 후배고, 서울지방법원 민사재판부에서도 같이 있었으며, 부인과도 알 만큼 친한 게 맞다. 내가 법원장 출신인데 친한 판사가 한둘이겠는가. (문 판사는) 그중 한 명일 뿐이다. 절대 재판 과정에선 만나지 않았고, 만났다면 (문 판사 성격에 비춰) 도움이 될 게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해가 됐을 것이다. 심지어 ‘예비 사돈’이라고 알려졌는데, 정말 턱도 없는 얘기다.”

재판부도 처음엔 김 전 고문에 대한 조사와 증인 채택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했다. 재판부가 8월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한 배경에도 그동안 감춰졌던 김 전 고문의 구실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당초 작성한 공소장에는 김 전 고문의 구실이 빠져 있다.

그런데 재판 후반부에 김 전 고문의 녹취록이 공개되고 대만에서 김 전 고문이 체포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김 전 고문의 체포 현장에 최 부회장이 함께 있었음이 알려지면서 SK그룹의 기획입국설이 나돌았고, 언론이 김 전 고문이 SK그룹 회사 돈 횡령사건의 총 기획자이자 주범인 것처럼 보도하자 재판부는 이를 최 회장 형제가 SK그룹과 언론을 이용해 ‘사법부를 조정하려 한 것’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김 전 대표의 항소심 변론을 맡은 이 변호사는 “최 회장 형제가 SK그룹을 통해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으며, 솔직하게 죄를 인정했으면 전적으로 책임지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원홍 수사 미룬 검찰의 속셈

검찰 수사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2월 월간 ‘신동아’를 비롯한 언론은 김 전 고문이 최 회장 형제의 회사 돈 횡령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해 보도했지만 검찰은 “김 전 고문은 참고인일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신동아’는 “김 전 고문이 2007년 8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최 회장의 돈을 받아 자신이 보험모집인이자 계약자이고 수익인인 일명 ‘자기계약’ 방식으로 총 2000억 원의 보험금을 납부했으며 이 중 200억 원에서 400억 원을 보험모집인 계약 수수료로 챙겼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소극적인 행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김 전 고문을 안 잡나, 못 잡나”라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7월 31일 김 전 고문이 대만에서 이민법 위반으로 체포됐을 때도 검찰이 그의 국내 송환에 애를 태운 흔적은 없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선 “1998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14년간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과 최 회장 형제에게 돈 수천억 원을 받아 선물옵션에 투자할 정도라면 김 전 고문이 다른 대기업 오너나 정관계 인사의 돈도 받아 관리 또는 착복했을 개연성이 크다. 검찰이 김 전 고문에 대한 수사에 수동적이던 이유 중에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싫은 점도 작용했을 법하다”는 얘기가 나온다(상자 기사 참조).

과연 최 회장 형제는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항소심의 선고 내용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전적으로 공범으로 구속된 김 전 고문의 입과 그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7월 26일 최 회장이 김 전 고문을 사기혐의로 고소한 사건의 향배도 상고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 회장이 김 전 고문을 계속 압박하면 “모든 게 김 전 대표와 내가 한 것”이라는 주장이 언제든 “최 회장 형제가 시켜서 한 일”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김원홍 사기혐의 고소장

“큰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때가 왔다”


“자산 팔고 빌려 마련한 5687억 원 떼였다”

김원홍 귀국이 오히려 독? SK 회장 형제의 악몽
‘귀신같은 족집게’ ‘무속인’ 등으로 알려진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은 지난해 초 SK그룹 최태원 회장 형제의 회사 돈 횡령사건이 터지면서 세간에 이름이 알려졌지만, 실제 그의 이력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주간동아’ 확인 결과, 김 전 고문은 1961년 2월 10일생으로 경주 문화고를 졸업했으며 대학은 다니지 못했다. 첫 직장은 현대자동차인데, 당시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은 “그가 82년부터 몇 년간 근무하다 회계사시험을 준비한다고 산으로 간 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90년 대 중반 다시 모습을 보였을 때 그는 이미 증권가의 큰손이 돼 있었다.

하지만 세인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김 전 고문의 이력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최 회장 형제를 만났고 최 회장이 사기당한 돈은 얼마이며 그 돈의 출처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주간동아’는 최 회장이 김 전 고문을 사기혐의로 7월 26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고소장을 입수했다. 최 회장은 고소장에서 “김씨가 ‘비범한 능력으로 선물옵션투자를 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조만간 반드시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주겠다’고 현혹해 2005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수십 차례에 걸쳐 고소인으로부터 선물옵션투자금 등의 명목으로 5687억 원 상당을 편취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이 김 전 고문을 만난 것은 손길승 명예회장이 소개해서다.

“손 명예회장이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던 SK해운의 고문으로 김씨를 위촉하고 깍듯하게 경어를 쓰면서 존중해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제를 시작했는데, 그가 정치·경제 분야에 관한 전망이나 분석을 내놓으면 실제 대부분 사실로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의 재력이나 다양한 분야의 사회 유명 인사들과의 인맥을 과시했고, 건강과 생활습관까지 챙겨주기도 해서 집을 왕래하는 등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생 최재원 부회장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관계가 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손 명예회장은 2003년 8월 SK해운에서 7800억 원을 빼돌려 해외 선물옵션에 투자했다가 6000억 원의 손해를 회사에 끼친 혐의로 구속됐는데, 이 사건 배후에도 김 전 고문이 관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고문은 최 회장에게 “내가 운용하는 자산만 해도 수조 원에 달한다”고 거듭 설명하면서 “투자운이 좋아 큰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때가 왔다”면서 2005년부터 투자금을 받아갔다. 고소장에 나온 내용대로라면 김 전 고문이 다른 재벌과 정관계 인사로부터 돈 수조 원을 받아 주식투자를 했고, 이로 인해 귀신같은 족집게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김 전 고문의 얘기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최 회장은 투자 실패로 원금 회수를 위해 약정서까지 썼지만, 김 전 고문은 이를 갚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 회장은 약정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처음에는 투자금 수익을 김 전 고문과 내가 절반씩 나눠 갖도록 구두로 약속했고, 나중에 법적 관계를 정리하려고 약정서를 썼다. 김 전 고문에게 투자했다 받지 못한 5687억 원 가운데 3175억 원은 주식 등 자산매각 대금이고 2511억 원은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이었다.”

고소장에는 최 회장 형제가 지난해 1심 과정에서 왜 김 전 고문의 존재를 숨겼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김 전 고문이 1심이 한창 진행되던 6월까지 투자금과 수익금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2008년 2월까지 투자금과 수익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반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후 몇 차례 반환 약속을 미루다 2012년 6월까지는 갚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까지도 투자금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




주간동아 2013.10.07 907호 (p36~39)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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