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7

2013.10.07

몰락한 현재현(동양그룹 회장) 날개는 있나

재계 10위 법정관리 신청 그룹 해체 위기… CP (기업어음) 불완전판매 등 경영권 유지 힘들 듯

  • 장관석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jks@donga.com

    입력2013-10-07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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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한 현재현(동양그룹 회장) 날개는 있나
    한때 재계 10위를 호령하던 동양그룹(동양)은 결국 이렇게 무너지는가. 현재현(64·사진) 동양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만기를 앞둔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상환하려고 동서인 담철곤(58)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지원을 부탁했지만 끝내 거절당하면서 우려했던 위기가 가시화됐다. 유동성 위기를 막지 못하고 9월 30일과 10월 1일,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동양시멘트 등 동양 계열사 다섯 곳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동양 CP 투자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고, 그룹은 공중분해될 처지다.

    법정관리 신청을 계기로 CP 불완전판매 의혹이 확산되면서 현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성난 투자자들이 현 회장 일가가 직접 책임지라며 매섭게 노려보는 데다, 정치권도 조만간 그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러 세울 태세다. 현 회장과 그룹을 믿고 CP 판매를 계속한 동양증권 임직원들은 현 회장의 예상치 못한 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신청에 반기를 들고 있다. ‘법조인 출신 가운데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꼽히던 현 회장의 몰락. 그는 재기할 수 있을까.

    시멘트, 섬유, 가전, 증권 등 3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동양은 200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사업 적자가 발생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그룹 모태이자 주력인 동양시멘트는 최근 3년간 18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냈고, ㈜동양도 2000억 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자금난이 가중되자 2010년에는 알짜 계열사인 동양생명보험의 지분 46.5%를 보고펀드에 9000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200억 차이로 매각 협상 대상 바꿔”

    구조조정과 자산매각이 더뎠던 점도 그룹 붕괴를 앞당겼다. 지난해 12월 동양은 당초 부실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시멘트, 화력발전, 금융부문 등을 중심으로 재편할 계획이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그룹의 캐시카우 구실을 충실히 하던 동양매직과 미래 핵심 사업으로 선정한 에너지부문(동양파워) 지분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매각은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동양이 매각에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재계 관계자는 “시장의 불신이 깊었던 데다, 현 회장 등 경영진이 구체적 매각 대금이나 경영권 유지 여부를 따지다 결국 자산 매각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동양은 동양매직 매각 작업이 한창이던 7월 말 협상 대상을 교원그룹에서 사모펀드인 KTB PE로 변경했지만, 9월 30일 KTB PE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무산됐다. 동양 관계자는 “당시 KTB PE가 교원그룹보다 가격을 200억 원 높이 부르면서 협상 대상을 바꿨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자금난이 지속되자 동양은 동양증권의 영업력을 이용해 CP와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자금을 마련했다. CP와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면 다시 CP와 회사채를 발행하는 ‘폭탄 돌리기’가 법정관리 직전까지 계속됐다. 금융권 차입보다 회사채 발행이 많았기에 개미들의 피해가 크다. 이번 사태를 두고 ‘1999년 대우 회사채 파동’ 이후 최대 피해 규모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동서 회사 오리온의 지원 거부

    동양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것은 현 회장 동서인 담철곤 회장이다. 동양은 담 회장이 개인적으로 가진 주식을 담보로 5000억~1조 원의 자사담보부증권(ABS)을 발행해 CP와 회사채를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두 그룹 오너 일가는 추석 성묘를 마치고 고(故) 이양구 동양 창업주의 부인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 자택에서 만나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담 회장과 부인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이 끝내 거절했다. 이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최근 동양으로부터 자금 지원 요청을 받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고민했으나 오리온은 존속과 번영을 지속해야 한다”며 거절 이유를 밝혔다. 담 회장 부부는 지분을 담보로 내놓았다가 자칫하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담 회장이 4월 대법원에서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재계에서는 ‘피보다 시장이 진했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동양은 국내 재벌가에서는 드물게 사위가 경영권을 승계한 그룹이다. 맏딸 내외는 동양을, 둘째딸 내외는 2001년 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오리온그룹을 맡고 있다.

    몰락한 현재현(동양그룹 회장) 날개는 있나

    9월 24일 서울 중구에 있는 동양증권 지점을 방문한 고객들이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돈을 뽑고 있다.

    현 회장과 이혜경(62) 동양 부회장은 1976년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의 소개로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대학 3학년 때 사법시험(12회)에 합격했다. 고려대 초대총장인 고 현상윤 박사가 그의 조부이고 부친은 고 현인섭 이화여대 의대 교수다.

    현 회장은 19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결혼 후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입사했다. 그는 장인인 이양구 회장과 함께 직접 경영 현장을 누비며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 회장이 83년 고혈압으로 건강을 잃자 현 회장은 34세 나이에 동양시멘트 사장에 선임돼 이때부터 사실상 그룹 경영권을 주도해왔다.

    동양시멘트 법정관리는 재기 발판?

    현 회장은 증권사를 인수하고 신규 회사를 설립하면서 회사 몸집을 키웠다. 1984년 일국증권을 인수하는 것을 계기로 시멘트와 제과 일변도이던 동양을 금융업 중심으로 업종 다변화시켰다. 93년부터는 동양의 금융부문 매출이 비(非)금융부문 매출을 앞지르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결국 동양을 지켜내는 데는 실패했다.

    한편 법정관리 신청으로 현 회장의 그룹 경영권 유지는 어려워졌다. 현 회장이 지분 30%를 보유한 동양레저는 ㈜동양의 지분 36.25%를 갖고 있어 그룹 경영권의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데, 이 두 회사는 파산 절차에 들어갈 개연성이 크다. 채무 변제 과정에서 현 회장의 지분 가치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동양,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등 3사에 대한 법정관리는 예견된 수순이었으나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의 법정관리는 논란을 남겼다. 동양시멘트는 동양의 주력 회사이고, 동양네트웍스는 현 회장 일가의 가족회사다. 특히 동양시멘트의 경우 부채비율도 190%대로 다른 계열사보다 현저히 낮고 문제가 된 CP도 거의 발행하지 않았다. 두 계열사는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등 자체적인 재기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현 회장은 법정관리 길을 선택했다.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 법정관리 결정에는 그룹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핵심 관계자들조차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해체된 전략기획본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비교적 건전한 편이고 부실 규모가 작았던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가 법정관리를 받기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공시가 나기 직전에야 알았다”며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진행된 것 같다. 우리는 배제됐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법정관리는 자율협약보다 채권단의 간섭을 덜 받고 경영권을 유지할 가능성도 높다”면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경우 자율협약 개시와 함께 경영권이 박탈됐는데 이 점을 고려한 선택 같다”고 분석했다. 법정관리의 경우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기존 관리인 유지(DIP)’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풍파에도 현 회장이 재기할 수 있을까. 금융당국 관계자는 “무엇보다 부실 CP 판매 책임이 크다”면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려면 현 회장의 자택을 팔아서라도 피해를 변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회장과 부인 이 부회장이 공동 소유한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은 토지면적 1478㎡(약 447평)에 지하 2층, 지상 3층 건물로 땅값만 9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1일 법원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해당 토지와 건물에는 어떠한 담보설정도 돼 있지 않았다.

    동양 투자 개미들 피눈물

    “좋은 단기상품이 휴지조각… 노후자금 다 날릴 판”


    몰락한 현재현(동양그룹 회장) 날개는 있나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1층에 마련된 ‘동양그룹 관련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신고센터’에 민원인들이 모여 있다.

    “10년 가까이 거래해온 곳이라 그냥 믿었어요. 창구 직원이 ‘동양시멘트 주식이 담보로 들어가 있다. 안전하다’ 해서 엄마 노후자금 4000만 원을 넣었는데….”허은주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9월 12일 동양증권 영업점에서 ‘동양 MY-W전자단기사채신탁 3071호’에 투자했다. 78세 노모가 평생 모은 돈이었다. 그러나 상품 가입 후 채 일주일이 지나기 전부터 언론에 ‘동양그룹 위기설’이 보도됐고, 급기야 10월 1일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의 신탁증권은 곧 휴지조각이 될 상황에 놓였다. 허씨는 “어머니는 아직 이 사태를 모른다”며 “마을버스비가 아까워 먼 거리도 걸어 다니고, 겨울 추위도 전기장판으로 나는 분이다. 그렇게 모은 돈을 전부 날리게 됐다는 사실을 알면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렵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동양은 특수목적회사 티와이석세스를 통해 7월과 9월 일곱 차례에 걸쳐 3개월짜리 전자단기사채 1569억 원어치를 발행했다. 그중 60%는 그룹 위기설이 파다하던 9월 쏟아냈다. 다른 계열사에 비해 비교적 재무구조가 양호한 동양시멘트 지분을 담보로 잡아 투자자들을 안심시켜놓고, 돌연 해당 기업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투자자들은 “사기성 채권 발행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동양증권이 동양그룹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판매하면서 투자 위험을 숨기거나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른바 ‘불완전판매’ 논란도 일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9월 30일 설치한 ‘동양그룹 관련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신고센터’(신고센터)에는 이틀 동안 피해 신고가 1800여 건 접수됐다. 투자자 A씨는 “원래 동양증권 종합자산관리계좌(CMA)만 갖고 있었는데 직원이 좋은 단기상품이 나왔다며 전화로 ‘동양뉴리더 CP신탁’ 투자 가입을 권유했다. 직접 전화까지 할 정도면 정말 좋은 상품인가 싶어 가입했다”고 했다.

    B씨는 “7월 평소 거래하던 동양증권 창구직원에게 동양 회사채 투자를 권유받고 곧 입주할 아파트 잔금을 모두 넣었다”고 했다. 그는 “나를 증권사 말만 믿고 투자한 바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하지만 기업이 나 같은 바보를 상대로 사기를 칠 때까지 금융당국은 대체 뭘 한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투자자는 “언론보도를 보면 금융권에는 진작부터 동양그룹 부실 소문이 돌았고, 그래서 기업들은 동양 회사채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더라”며 “결국 개미들만 피해자가 됐다”고 억울해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동양그룹 사태로 손실을 볼 개미 투자자가 4만6000명 이상일 것이라고 추산한다. 이들 사이에서 집단소송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 금융소비자원은 9월 23일부터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소송인단을 모으는 중이다. 10월 2일까지 1만6000건 이상을 접수했다. 이화선 금융소비자원 총괄지원본부 실장은 “하루 종일 개인투자자의 문의전화가 빗발쳐 전화가 불통되고, 사례 접수 인터넷 사이트도 계속 다운되고 있다. 며칠 더 접수를 받은 뒤 본격적인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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