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3

2017.06.21

국제

수니파 사우디와 시아파 이란, 시리아에서 정면충돌할까

양국 외교관계 단절, 1400년 전 ‘피의 전쟁’ 재현 가능성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6-19 1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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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홀라 호메이니(1900~89)는 이란에서 신(神)과 같은 존재다. 호메이니는 1979년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혁명을 성공시키면서 현재의 신정체제를 구축한 이란의 국부(國父)다. 호메이니는 생전에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종교와 정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란에선 호메이니를 아야톨라(고위 성직자)가 아닌 이맘이라고 부른다. 이맘은 수니파에선 단순히 종교 지도자 또는 설교자라는 의미지만, 시아파에선 이슬람 창시자이면서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후계자이자 신앙 지도자를 뜻한다.



    13번째 이맘, 호메이니

    이란은 시아파에서 주류인 12이맘파에 속한다. 12명의 이맘은 초대 알리부터 12번째까지 모두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계자다. 알리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로 4대 칼리프였다.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무함마드의 종교·정치적 권한을 이어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린 최고통치자다.

    12이맘파는 예수의 부활과 비슷하게 12번째 이맘 무함마드 알마흐디가 최후의 날에 재림(再臨)해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12이맘파에서 알리와 그 후손인 12명의 이맘 외 이맘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인물은 오직 호메이니뿐이다. 호메이니가 사실상 ‘13번째 이맘’인 셈이다. 호메이니는 테헤란 외곽 베헤쉬트 자흐라에 세워진 영묘(靈廟)에 잠들어 있다. ‘이맘 호메이니 영묘’라 부르는 이곳은 12이맘파의 ‘성소(聖所)’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비롯해 이란 종교계와 정부 고위 인사들은 물론, 국민도 수시로 참배한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맘 호메이니 영묘와 의사당에 테러 공격을 감행한 것은 이란 정부와 국민의 격분을 불러왔다. IS 대원 6명이 6월 7일 두 곳에 침입해 자폭 테러를 벌이고 AK-47소총 등을 난사해 17명이 숨지고 52명이 부상했다. IS가 이란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이맘 호메이니 영묘에 테러 공격을 자행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란 전체 인구는 8280만여 명으로 이 가운데 시아파는 90~95%에 달하고 수니파는 4~8%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아랍어 사용자는 전체의 2%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IS는 그동안 이란에서 거의 활동하지 못했다. IS가 테러 공격을 벌인 것은 종파 분쟁을 더욱 촉발하려는 의도에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IS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수니파 국가들이 6월 5일 친이란 성향을 보여온 카타르에 대한 단교와 봉쇄조치를 단행한 지 이틀 만에 테러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IS는 그동안 시아파를 이교도로 지목하고 ‘종파 청소’를 선동해왔으며, 3월 이란을 정복하겠다는 내용의 아랍어 선전물을 유포하기도 했다. IS는 이번 테러로 종파 갈등이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경우 수니파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연합군의 공세로 궁지에 몰린 IS가 종파 갈등을 극대화해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의 관계는 현재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양국은 국교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다.

    사우디가 지난해 1월 자국 내 시아파 성직자를 사형에 처하자 이란 과격 시위대가 주테헤란 사우디대사관에 불을 지르고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양국은 단교했다. 이번 테러로 양국의 갈등과 대립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될 것이 분명하다. 이란의 신정체제를 수호해온 혁명수비대는 “테러리스트의 소행은 미국 대통령이 테러를 지원하는 사우디 정부의 지도자를 만난 지 일주일 뒤에 일어났다”며 “미국과 사우디에 보복하겠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 부사령관인 후세인 살라미 준장도 “우리 국민을 순교자로 만든 테러리스트와 추종자들에게 복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강경한 태도로 볼 때 혁명수비대가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군사 행동을 벌일 개연성도 있다. 이란은 그동안 수니파 근본주의인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사우디 왕조가 수니파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IS의 후원자라고 주장해왔다. 와하비즘은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1703∼1792)가 창시한 이슬람 사상이다. 핵심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와하브는 무함마드 외 우상숭배 및 외부 정치체제 배격, 음주도박간통 금지, 여성의 외출 및 사회활동 제한, 엄격한 종교적 생활 등을 구체적 덕목으로 제시했다. 수니파 테러단체들은 와하비즘을 따르고 있으며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도 와하비즘에 근거해 서방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벌여왔다. IS도 마찬가지다. 사우디 왕가는 와하비즘을 추종하는 테러단체들을 은밀히 지원해왔다는 의혹을 받았다.   



    1400년 동안 대립

    사우디와 이란의 적대관계는 큰 틀에서 볼 때 1400년간 이어온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두 종파의 분쟁은 칼리프제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632년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사망한 후 이슬람은 후계자 선정을 놓고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됐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족인 알리가 당연히 칼리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아파를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수니파는 무함마드와 혈연관계가 없어도 이슬람의 통치자 자격이 있는 사람이 칼리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슈라(원로회의)는 만장일치로 무함마드와 피가 섞이지 않은 아부 바크르(재위 632~634)를 초대 칼리프로 선출했다.

     2, 3대 칼리프를 거쳐 알리(재위 656~661)가 4대 칼리프로 등극했지만 수니파와 시아파는 끊임없이 권력투쟁을 했다. 그러다 두 종파는 알리가 661년 이라크 쿠파에서 암살되면서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수니파는 680년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이끄는 시아파와 전투해 승리하며 이슬람의 주류가 됐다. 후세인이 전사하는 등 패배한 시아파는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수니파는 생후 몇 개월밖에 안 된 후세인의 아들 알 아스가르마저 무참하게 살해했다. 이런 ‘피의 역사’ 때문에 이슬람 전체 인구 15억 명 가운데 수니파가 85%이고, 시아파는 15%에 불과하다. 

    양국은 이미 시리아와 예멘 내전에서 ‘대리전쟁’까지 벌이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서 사우디는 반군을, 이란은 정부군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예멘 내전에선 사우디는 정부군을, 이란은 후티 반군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이란은 이번 테러를 계기로 시리아에서 IS 격퇴를 명분 삼아 직접 지상군을 파병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도 파병해 시리아에서 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 특히 혁명수비대는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비롯해 무장단체들이 사우디와 수니파 국가를 상대로 테러 공격을 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할 수 있다. 이란은 사우디 내 시아파 과격 세력을 통해 수니파 성지에 ‘대리 보복 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 찰리 윈터 영국왕립대 중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란의 반격이 시작되면 양국은 물론 두 종파 간 대립이 격화돼 중동 정세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은 이미 사우디가 주도하고 있는 카타르에 대한 육해공 봉쇄조치에 개입하고 있다.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는 테러단체들을 지원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카타르를 상대로 전면적인 압박 조치를 단행했다. 물론 이런 조치의 진짜 이유는 수니파인 카타르가 그동안 중립 외교노선을 표방하면서 친이란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는 등 세력을 확대해왔다. 사우디는 이란의 부상으로 중동지역 질서가 재편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게다가 이란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테러단체들도 지원해왔다. 카타르도 이란과 마찬가지로 테러단체들을 비호해왔다. 실제로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하마스 고위 간부들의 망명을 허용해왔다.


    비아랍계 이란과 터키

    특히 카타르는 수니파 왕정국가들과 달리 가장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했다.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은 2014년 34세인 왕세자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선왕이 죽어야 왕위가 계승되는 수니파 왕정국가들은 카타르의 이런 행보가 불편하기만 했다. 카타르는 또 자국 왕실 소유인 중동 최대 방송매체 알자지라가 수니파 왕정국가들을 비판하는 것을 언론의 자유 보장을 내세워 묵인해왔다. 카타르에 불만을 품어왔던 수니파 왕정국가들은 셰이크 타밈 국왕이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비판하자 카타르 제재조치에 나섰다. 카타르는 국왕의 발언이 해킹으로 인한 ‘가짜뉴스’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이란과  핵 합의 등으로 미국과 사우디는 사이가 나빴다.  사우디는 미국으로부터 향후 10년간 1100억 달러(약 120조 원)에 달하는 무기 계약을 체결하는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다시 구축했다. 이에 고무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사우디를 방문해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사우디에 힘을 실어줬다.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사우디는 이란과 단교 등 10개 항의 요구조건을 제시하면서 카타르를 옥죄고 있다. 이에 맞서 이란은 카타르에 해상과 공중을 통해 식료품을 직접 수송하고 있다. 이란은 또 터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터키는 수니파 국가지만 쿠르드족 독립을 막고자 이란과 협력해왔다.

    이란과 터키 국민은 비(非)아랍계라는 공통점도 있다.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 등 수니파 왕정국가 국민은 아랍계다. 터키는 그동안 카타르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터키는 카타르에 군 병력 500∼600명을 파병할 계획이다. 이란과 터키에 우호적인 러시아와 중국도 사우디 측에 카타르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재 중동지역 전체가 사우디와 이란 편으로 갈려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같은 카오스(혼돈) 상태라면 자칫 1400년 전 벌어진 피의 역사가 재현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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