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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영화된 공기업이 만만하냐

포스코·KT·KT&G CEO 흔들기… 정치권 입맛 따라 교체 이젠 안 될 말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민영화된 공기업이 만만하냐

민영화된 공기업이 만만하냐

정준양 포스코 회장

민영화된 공기업은 정치권의 봉인가. 박근혜 정부 들어 KT, 포스코, KT&G 등 민영화된 공기업의 수장을 흔드는 유령이 활개치고 있다. 8월 말 청와대가 이석채 KT 회장에게 간접적으로 사임 압력을 넣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이 문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사임 종용 발언의 당사자로 지목된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입을 닫고 있다. 조 수석은 9월 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를 부인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에게도 조 수석이 그런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소문이 도는 걸 아느냐”는 물음에 조 수석은 이렇게 답했다.

“그 문제라면 할 말이 없다. 내가 왜 거기(KT, 포스코)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내가) 거기 갈 것도 아닌데.”

조 수석의 메시지를 이석채 회장 측에 전달했다는 A씨에게도 사실 여부를 물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KT 사외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청와대에서 그런 일이 없다는데 왜 내 이름이 거론되는지 모르겠다”며 부인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하며 이 어설픈 해프닝을 지켜보고 있다. 조 수석이나 A씨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소문이 나돈 것은 이들 기업 수장을 노리는 이들이 한 일일 개연성이 높다. A씨도 “(주변에서) 많이 흔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증권가 정보지에는 이미 누구누구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뛴다더라 하는 소문이 버젓이 오르내린다. KT뿐 아니라 포스코, KT&G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KT와 KT&G는 2002년, 포스코는 2000년 각각 민영화돼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다. 정치권이 이들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의 배경은 단 한 가지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공단 등이 이들 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국민연금공단은 KT와 포스코 지분을 각각 8.65%, 6.14% 보유하고 있다. 반면 KT&G의 경우 금융공기업인 기업은행이 지분 6.93%를 보유한 상태다.

그런데 이건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국민연금공단은 현대건설(9.89%), 삼성물산(9.57%), LG전자(9%) 등 다른 민간기업 300여 개에도 투자한 상황인데, 이들 기업에도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민영화된 공기업의 경우 정치권 입맛에 따라 수장이 달라진 전력이 있다. 포스코의 경우 박태준 초대회장의 뒤를 황경로 전 회장이 이어받았는데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1년밖에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만제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상부 전 회장에게 밀려났다. 노무현 정부 때 선임된 후임 이구택 전 회장은 이명박 정권 초기 정준양 회장이 들어서면서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정 회장은 연임에 성공해 2015년 3월까지가 임기다.

KT의 경우 이명박 정부 들어 남중수 당시 사장이 구속되는 바람에 2008년 이석채 회장이 취임했다. 당시 통신업계에는 “남 사장이 구속된 이유는 청와대에서 내보내라고 했던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 비서관 출신 임원을 남 사장이 감싸고돌자 손을 본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 회장 취임 당시 이상득 의원 추천설 등이 돌았다.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해 2015년 3월까지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민영진 KT&G 사장은 내부에서 승진한 경우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 사장은 올해 2월 3년 연임에 성공했다. 원칙상 현 최고경영자(CEO)들의 임기는 보장돼야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 갑작스러운 세무조사 압박

국세청은 9월 3일부터 갑자기 포스코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정기 세무조사라고 하지만 포스코는 이미 2005, 2010년 5년 단위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예정대로라면 2015년에 조사받아야 한다. 청와대 하명사건을 주로 맡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투입한 데다, 전국 사업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그래서 3년 만에 실시하는 이번 세무조사의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포스코가 인수한 대우인터내셔널의 역외탈세 건을 집중 조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정준양 회장을 압박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정 회장도 동행했지만 이석채 KT 회장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만찬에 초대받지 못했다. 8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10대 그룹 총수 오찬에도 초청받지 못했다. 포스코는 재계 서열 6위지만 청와대는 “순수 민간그룹만 초청했다”고 해명했다. ‘순수’라는 의미가 모호하다.

정 회장이 보인 약점이 문제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포스코는 정 회장이 취임한 뒤 핵심 사업인 철강업과 무관한 회사들을 대거 인수해 25개였던 계열사가 70개로 늘어났다. 부실 회사를 다수 인수했고, 인수 뒤에도 경영 상태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영업이익률은 20%대에서 2012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신용등급도 빨간불이다. 2011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포스코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내렸는데 2012년 10월엔 BBB+로 낮췄다. 무디스의 지난해 평가도 BBB1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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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정권 핵심 인사들이 포스코를 농단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정 회장 임명 과정에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개입한 사실이 이명박 정부 말기에 밝혀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차관이 자신과 가까운 포스코 출신 이모 회장에게 조언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포스코에 관한 한 이 회장이 ‘실세’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정 회장은 지금까지 사퇴할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5월 10일 포스코 전직 임원들 모임인 중우회 멤버와 현직 임원 20여 명을 초대한 만찬자리에서 정 회장은 “창조경제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포스코 안팎에서는 “정 회장이 스스로 사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과시한 자리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실 포스코는 겉으론 국영기업이었지만 민간기업에 버금가는 자율성을 보장받았다. 상법상 주식회사로 출발하도록 한 것도 그런 취지에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종합제철소 착공 준비가 한창이던 1970년 정부나 정치권의 인사청탁과 납품 요청이 거세지자 외부 간섭을 배제한다는 의미를 담은 문서에 자필서명을 했고, 외부 압력이 있을 때 이를 제시하라고 했다. 현재 포스코 역사관에 전시된 이 문서를 포스코 내에서는 ‘종이마패’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정권이 바뀌면서 수장의 수난사가 이어졌다.

민영화된 공기업이 만만하냐

국세청이 9월 3일 포스코 포항 본사와 전남 광양제철소,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동시에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사진은 포스코 포항 본사 전경.

포스코는 2011년 한국거래소로부터 지배구조우수기업에 선정됐고 지분 분포도 외국인, 기관투자자, 국민연금공단 등 고르게 분산된 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특히 외국인 지분이 51.8%에 이르기 때문에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특정 외부세력이 경영권을 좌우한다면 대외 신인도가 더욱 하락해 외국인 투자 유치는 상상도 못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예로 지난해 5월 ‘정권교체기가 되면 포스코 경영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내용의 보도가 이어졌을 때 포스코는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외국인 파트너사가 안정적인 사업 진행이 어려운 것 아니냐며 난색을 표해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최근의 실적 부진도 경영 문제라기보다 세계적인 철강경기 불황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신일철주금(1.4%), 중국 보산강철(4.3%), 유럽 아르셀로미탈(2.56%) 등에 비해 포스코는 그나마 7.8%의 영업이익률을 내며 수위를 차지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포스코와 경쟁관계에 있는 글로벌 회사들이 본연의 수익성 향상과 경쟁력 확보에 매진할 때 포스코는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전력을 분산한다면 국가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석채와 주변 흔들기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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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채 KT 회장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사무금융연맹)은 9월 4일 오전 청와대가 보이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석채 KT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이 회장이 KT에 온 뒤 KT그룹 사망자는 2011년 43명, 지난해 56명으로 해마다 늘었다. 인력 퇴출 프로그램, 성과 연봉제 등으로 KT 노동자를 죽음의 행렬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KT의 상반기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24% 급감하고 7월 실적은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이 회장은 과실을 확실하게 챙겼다”며 “박근혜 정권은 이 회장을 사퇴시켜라”고 요구했다.

앞서 8월 29일엔 민주당이 이 회장 사퇴를 촉구했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청와대가 민간기업인 KT 회장의 거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하지만 오늘의 사태(청와대 사임 압력)를 불러온 사람은 다름 아니라 이 회장 자신이다. 자리보전을 위해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심지어 친YS(친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정치권 인사들을 전문성과 관계없이 끌어들여 KT를 낙하산 집합소로 만든 장본인이다. 기업을 정치 장으로 만든 책임을 무겁게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KT새노조(위원장 이해관)는 이 회장의 잘못으로 △YS인맥(김기섭 KT텔레캅 고문, 오정소 고문, 임경묵 KT네트웍스 고문)부터 친이(박병원 KT 사외이사, 서종렬 KT미디어본부장, 김은혜 KT 홍보실장, 허중수 KT 사외이사), 최근의 친박(홍사덕·김병호 KT 경영고문) 인사까지 정치권 낙하산 인사 △7월 발생한 사상 첫 월간 적자(141억 원) △39개 부동산, 1조 원어치 매각 △임기 중 KT 노동자 26명 자살, 205명 사망 △친인척 연루 배임 혐의로 피고발 등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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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이석채 KT 회장은 자신의 자리를 흔드는 임직원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주변의 흔들기에도 이 회장은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그는 9월 2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KT LTE-A No.1 결의대회’에서 주파수 경매를 통해 1.8GHz 주파수 대역을 따낸 것과 관련해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한편,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자리를 흔드는 임직원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자기 울타리, 회사, 집이 무너져가는데도 바깥에다 대고 회사를 중상모략하고 회사가 어쨌다 저쨌다 끊임없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다. 게으른 사람, 아직도 태평인 사람은 나가라고 걷어차야 한다. (이들이) 하나하나 바깥에다 대고 희한한 소리를 해대는 것을 여러분의 힘으로 막아야 한다. 나가지 않으면 최소한 회사를 해코지하지 말라는 얘기는 확실히 전하라.”

KT노동조합(노조)도 이 회장 편에 섰다. 민주당이 논평을 낸 그다음 날 노조는 성명서에서 “KT노조는 현 CEO의 경영능력을 믿으며 그간 KT의 혁신과 체질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평가한다. 더구나 CEO의 임기는 상법과 주주총회 결의에 따라 엄연히 보장된다”며 이 회장을 지원하고 나섰다.

# 검찰의 본사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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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진 KT&G 사장

KT&G는 민영화됐다는 점에서 포스코, KT와 같은 처지이지만 여전히 공기업 성격을 띤다는 점에 차별성이 있다. KT&G의 핵심 사업인 담배사업 관련 법규를 기획재정부가 관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입김이 앞의 두 회사보다 더 강하다. 현재 민영진 사장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낙점한 인물로 알려졌다. 민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의 사촌 처남인 김재홍 KT&G 복지재단 전 이사장,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과 가까운 사이다.

그러나 KT&G는 겉으로는 100% 민간기업이다. KT&G의 최대주주는 지분 6.93%를 보유한 기업은행이다. 민 사장은 2월 28일 주주총회에서 3년 연임이 결정됐다. 그럼에도 CEO 흔들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주주총회 직후 시작된 특별 세무조사,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 광고회사에 물량 몰아주기 특혜 의혹, 청주공장 땅 매매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 때문이다. 이 사건들과 관련해 8월 5일 검찰이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민 사장은 회사자금으로 15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매입해 사택으로 사용하고, KT&G의 실적이 악화됐음에도 3년간 성과급을 포함해 연평균 12억 원의 보수를 받는 등 논란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개인적 약점까지 불거지면서 사장에 대한 음해 수위도 높아졌다. KT&G 측은 “사장으로 선임되길 기대하는 특정 정치 성향의 불명예 퇴직자들이 근거 없는 악의적 투서를 유포해왔다. 비정상적인 상황이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민영화된 공기업 수장들의 경영 능력에 문제가 있다 해도 이들의 거취 문제는 결국 주주들의 권한이다. 즉 주주들로부터 위임받은 이사회가 결정할 사안인 것이다. 한 재계 인사는 “실적이 나쁘거나 처음 선임될 당시 문제가 있었다 해도 현 정부나 정치권이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현 정부가 국가주도형 사회주의 정부도 아니고, 주주도 아닌 상황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 민영화된 공기업 수장들을 흔드는 일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면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박근혜 정부가 그 불합리한 관행을 과감히 끊어야 한다.



주간동아 2013.09.09 904호 (p20~23)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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