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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집트 수렁’에 빠진 미국과 오바마

피 흘리는 혼돈에도 美 외교력 엉거주춤…명분과 실리 모두 잃는 사태 올 수도

‘이집트 수렁’에 빠진 미국과 오바마


요즘 이집트 사태로 골치가 아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기쁜 소식이 있다. 뉴욕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국제평화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집트인은 중동에서 자기들의 앙숙이라고 할 이란 지도자보다 오바마 대통령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호감도는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이끌던 오사마 빈 라덴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에서 미국의 알카에다 척결 작전을 가장 열심히 돕는 이집트가 정작 알카에다보다 미국을 더 싸늘하게 바라보는 것. 최근 유혈시위로 얼룩진 이집트 사태를 해결하는 데 미국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오바마 외교정책 핵심은 관여

201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관여(engagement)’가 핵심 키워드다. 적대국들과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군사력보다 외교, 경제, 문화 등 소프트파워로 관계를 호전해나간다는 것. 도덕적 명분을 앞세운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대의 일방주의 외교에 지친 미국인 사이에서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오바마 독트린’을 환영하는 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최근 관여정책이 삐끗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정작 상대 정권이 관여정책에 호응하지 않아 미국의 옵션이 사라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외교 난맥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대화를 추구하다 유혈 내전이 발생하자 화학무기 사용을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설정하며 군사 개입 엄포를 놓았지만 알아사드 정권은 탄압을 멈추지 않는다.



시리아 사태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적극적인 개입 없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던 미국이건만, 이집트에서 더 큰 일이 터졌다. 8월 14~16일 사흘간 벌어진 이집트 군부 및 경찰과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 시위대의 격렬한 충돌로 1295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군경 사망자는 60~70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인이다.

미국은 7월 3일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세웠을 때 이를 ‘쿠데타’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군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민간 (무르시) 정부에게 가능한 한 이른 시기 안에 정권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미지근한 발언을 했다.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은 “민주주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라며 오히려 군부 행동을 지지했다. 미국은 무르시 지지자들의 시위가 격해지자 막후에서 군부를 상대로 무력 진압을 삼가고 대화로 문제를 풀 것을 설득했다.

중동서 심각한 이해관계에 처한 상황

미국은 이집트 군부의 유혈진압 사태 직전 유럽, 아랍 동맹국들과 평화 중재안까지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재안은 군부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무르시 지지 시위대는 수도 카이로 집결을 포기하는 내용이었다. 윌리엄 번스 미 국무부 부장관은 이 중재안을 들고 카이로를 방문해 양측을 설득했지만 군부의 거부로 무위로 돌아갔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유혈진압 사태가 터지자 오바마 대통령, 케리 장관, 척 헤이글 국방부 장관은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나섰지만 외교적 대응은 자제했다. 9월로 예정된 이집트와의 합동군사훈련 ‘브라이트 스타’를 취소하고 이집트 군부에 F-16 전투기와 아파치 헬기의 인도를 보류하는 것이 지금까지 미국이 이집트 군부에 취한 행동이다.

국제사회 관심은 미국이 15억5000만 달러(1조7300억 원 상당)에 달하는 대(對)이집트 원조를 중단할지에 모아진다. 미국은 1948년 이후 이집트를 계속 원조해왔다. 이집트는 다른 중동국가들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지만, 미국 원조는 반세기 넘는 미국·이집트 동맹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만일 이것이 중단된다면 양국 관계는 물론, 중동 정세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경제 분야에 할당된 2억5000만 달러를 중단할 움직임을 보이지만 원조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군사 지원을 끊을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 정부 당국자들에게 이집트 원조를 중단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We have other fish to fry)”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전했다.

이집트는 군부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 관리들은 이집트를 방문하면 군부 인사부터 찾았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집트 군부는 미국이 중동에서 벌이는 대테러전쟁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동시에, 이란의 세력 확장을 막는 교두보 구실을 해왔다. 또 다른 중동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집트는 1979년 체결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을 통해 미국이 중동에서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펼쳐나가는 것도 지원해왔다.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 공을 들이는 미국으로선 이집트 군부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유혈진압 사태가 발생한 후 미국에 원조를 유지하라고 강한 압력을 넣고 있다. 헤이글 장관은 원조를 끊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심각한 이해관계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이 나서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이집트 정책을 “총체적 실패”라고 비난하며 당장 원조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51%는 원조를 끊어 이집트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원조를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26%였다. 미국 양대 신문인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원조를 중단하라는 사설을 나란히 게재했다.

유럽도 이집트 군부를 제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미국 처지는 더욱 난처해졌다. 유럽연합(EU)은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원조 중단은 물론, 무기 수출 금지, 이집트와의 외교관계까지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중동국가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집트 유혈진압 사태에 엇갈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미국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이유다. 중동국가들과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미국은 이집트 유혈진압 사태에 대해 단합된 대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무르시 정권을 지지했던 터키와 카타르는 이집트 군부의 무력 진압을 ‘대학살’이라고 규탄한다.

두 나라 충돌 코스로 향하나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왕정국가들은 군부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며 무르시 지지자들에게 사태 책임을 돌린다. 이들 국가는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 시민혁명이 번지는 것을 우려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미국과 유럽은 아랍 문제에 간섭하지 마라”고 경고하며 무르시 축출 후 이집트 군부에 120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원조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와 중단해야 하는 이유를 각각 제시했다.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이집트가 중동에서 미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조를 중단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친이슬람 국가들이 미국의 공백을 메우며 이집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것이다. 또 미국이 원조를 중단하면 이집트 군부가 눈치를 보지 않고 더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탄압하는 길을 열어주는 셈이 될 뿐이다.

그러나 원조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도 있다.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사살한 정부를 계속 지원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는 미국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학자 제임스 트라우브는 “전략적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집트 지원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집트 군부를 지원하고 용인하는 것은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초기 인도주의적 외교관이 지배했을 시절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바마 외교정책을 원칙보다 이익을 따지는 실용주의자들이 주도한다는 비판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론자들은 묻는다. “과연 미국이 지원을 중단한다고 해서 이집트 사태가 나아질까.” 이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 사람이 더 많다. 미국이 이집트 군부의 정책 결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미국의 끈질긴 설득에도 군부가 유혈진압에 나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을 하야시킨 2011년 혁명 때부터 이집트에서는 반미(反美) 감정이 날로 높아져 미국은 ‘공공의 적’으로 몰리는 신세다. 무르시 대통령 축출 과정에서 무르시 지지파와 반대파 모두 미국이 상대방을 지원했거나 묵인했다고 보고 불신을 품고 있다. 원조를 중단해도 이집트 군부가 민주적 이행에 나서지 않을 경우 미국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최악의 경우를 맞게 될 수 있다.

이집트 사태는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오바마 행정부 외교력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이집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국과 더는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집트. 한때 역사적 맹방이던 두 나라는 이제 충돌 코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주간동아 2013.08.26 902호 (p51~53)

  • 정미경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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