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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세계 속의 한국학 03

미국 내 최대 한국학 프로그램 남미 전파 징검다리 구실

LA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 LA=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미국 내 최대 한국학 프로그램 남미 전파 징검다리 구실

미국 내 최대 한국학 프로그램 남미 전파 징검다리 구실

제니퍼 정 김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한국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속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5월 7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포웰 도서관 186호실. 학생 12명이 제니퍼 정 김 교수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감독, 2001)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 여성은 고교 졸업 후 일반적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해요.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죠.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장르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요?”

김 교수의 질문에 페미니즘 영화, 사회참여 영화, 친구(buddy) 영화 등 다양한 반응이 학생들에게서 나왔다. 학생들은 영화를 본 뒤 시대별 한국 사회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수업에 참석한 터였다. 한 학생은 “가족이 여동생보다 남동생을 좋아하고, 여자 직업이 제한적인 한국 사회를 고발하는 페미니즘 영화 같다”고 자기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김 교수는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대형 모니터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와 브라질 상파울루대 학생들이 화상으로 수업을 참관하는 모습이 나왔다. 김 교수가 모니터를 보면서 두 대학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이어간다.

“프란시스코는 어떻게 생각해요?”



“영화 속 태희는 부모로부터 자유를 원하지만 집에서 떠날 수 없는 현실을 고민하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어요.”

TIP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혼자 있길 좋아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신비로운 동물인 고양이를 닮은 스무 살 처녀들의 삶을 담은 영화. 착하지만 엉뚱한 태희(배두나 분), 예쁜 깍쟁이 혜주(이요원 분), 그림을 잘 그리는 지영(옥지영 분), 명랑한 쌍둥이 비류(이은실 분)와 온조(이은주 분)가 단짝친구로 등장한다. 인천에서 여자상업고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이들 인생은 달라진다. 증권사에 입사한 혜주는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고 싶지만 직장에서 차심부름을 하고, 돈을 벌어 유학을 가고 싶은 지영은 부모가 없는 탓에 번번이 직장에서 퇴짜를 맞는다. 태희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뇌성마비 시인을 좋아하고, 쌍둥이 자매는 액세서리 노점상을 차린다.


영화 내용 놓고 열띤 토론

“영화에서 고양이가 의미하는 건 뭘까요?”

“고양이는 개처럼 순종하는 동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데다 원하면 언제든 떠나는 동물이잖아요? 스무 살 한국 여성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물 아닐까요?”

이어 학생들은 영화의 주요 부분을 함께 시청한 뒤 배경 도시인 인천과 한국 사회에서 여성 지위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에 대해 김 교수와 의견을 나눴다. 학생들은 한국 여성들의 우정, 인천이 차이나타운이 있는 항구도시라는 점, 한국 여성의 생일파티 문화와 여전히 남은 남아선호사상에 대해 흥미로워했다.

이날 수업은 한국 영화를 통해 한국 여성의 지위와 한국 사회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 영화 속 여성의 묘사(Representations of Women in Korean Films)’의 여섯 번째 강좌로, 한국 도시 여성노동자의 삶에 대해 얘기해보는 자리였다.

학생들은 앞선 수업시간에 영화 ‘자유부인’(1956), ‘영자의 전성시대’(1975) 등을 통해 6·25전쟁 후 한국 여성의 인권과 삶에 대해 이미 공부해서인지 “요즘은 40~50년 전에 비해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한국 여성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존 던컨 UCLA 한국학연구소장은 “과거 내가 한국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주로 한반도 냉전체제와 6·25전쟁 발발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지금은 재미교포 학자도 많이 늘었고,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한국 문화를 많이 접하고 있어 한국학을 보는 시각과 문제의식도 다양해졌다”며 “이 강좌 역시 학생들에게 친근한 영화를 통해 전후 50여 년간 한국 여성의 구실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변화상을 보여주려고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한국이 서구에 알려진 건 19세기 말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사와 외교관 등에 의해서다. 던컨 소장의 말처럼 해외에선 일제식민지 지배 탓에 왜곡된 한국 정보에 의존하거나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한국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에서 한국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된 것은 해방 직후 미국 주도로 한반도에 대한 지정학적 관심이 높아지면서라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날 수업에 참석한 로렌 양 씨는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필리핀인인데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두 나라에 대해 잘 몰랐다”며 “한국학 수업을 통해 한국인과 아버지 나라에 대해 알게 됐다. 심리생물학이 전공이지만 지난 학기에는 ‘한국전쟁의 이해’ 수업도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UCLA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남미 주요 도시에 한국학을 전하는 거점대학 구실을 한다. 다른 나라 대학과의 화상 수업은 공휴일이나 시차 때문에 조율할 게 많지만 남미 주요 대학에서 한국학 프로그램에 대한 인기가 점점 높아져 UCLA 한국학연구소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게 대학 측 설명이다.

미국 내 최대 한국학 프로그램 남미 전파 징검다리 구실

존 던컨 UCLA 한국학연구소장이 강의하는 모습.

경제학보다 인문학 강의

김 교수는 “미국에서 한국학은 경제학 중심이지만, UCLA는 인문학 강의를 주로 한다. 한 학기에 최소 2개 강좌를 개설해 강의한다”고 말했다.

UCLA는 1993년 한국학센터(Center for Korean Studies)를 설립하고 한국어와 한국문화, 한국문학, 한국불교, 문화사 등 관련 학위를 수여하는 등 미국 내 최대 한국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학이다. 처음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한국학 교수진 17명(교수 13명, 강사 4명)이 한국학 연구와 학술교류 등에 나서고 있다.

던컨 소장은 “오클라호마 같은 시골 동네 사람도 나한테 e메일을 보내 ‘한류에 관심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한국을 공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며 “한국학이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다양한 한국학 프로그램 개설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일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도 나선다. 재단은 교수직 설치와 교원 채용, 한국학회 지원, 학생 장학금 지원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한국학 전파에 나서고 있다. 배성원 한국국제교류재단 LA 사무소장의 설명이다.

“해외에서 한국학 강좌 확대는 일종의 공공외교(소프트파워)인데, 이런 노력을 통해 한국을 아는 식자층을 만들고 지한파(知韓派)를 늘리는 문화외교적 효과도 크다. 그렇게 되면 현지 국가의 대(對)한국 외교정책을 포함해 한국에 우호적인 정책이 반영되고, 결국 한국 외교와 경제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현지 한국학 연구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UCLA의 경우 재단 지원과 현지 기부금을 받아 연구소를 운영하는데, 기부금 모금이 잘 이뤄지지 않아 한국학 관련 사업이 줄어드는 실정이다.

김세정 UCLA 한국학연구소 부소장은 “한국학을 배우는 학생이 많고, 한국 학자들을 대거 길러내면 결국 기업이나 한인사회 위상도 올라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당장 효과를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부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터뷰 | UCLA 한국학연구소 존 던컨 소장

“중국학과 경쟁하는 ‘빅 코리아’…한국 대학들 지원 기대”


미국 내 최대 한국학 프로그램 남미 전파 징검다리 구실
“한국 대학들이 한국학에 관심을 갖고 학생 교류를 적극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학생 교류장학금을 마련하느라 한국학 교수들이 동냥하러 다니기 바빠요.”

‘한국학 대부’로 불리는 존 던컨(68·사진) UCLA 한국학연구소장은 최근 미국과 중남미에 부는 한류(韓流) 바람은 강한데 한국학 연구 지원은 턱없이 부족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던컨 교수는 1960년대 주한미군으로 경기 파주에서 근무하다 한국의 매력에 빠져 고려대 사학과에 편입했고, 이후 한국사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에는 저서 ‘조선왕조의 기원’을 통해 “조선의 관료 5000여 명을 조사했지만 고려 말 신흥 사대부와 같은 새로운 엘리트 집단의 출현은 없었다”고 주장해 국내 사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사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나는 미국의 지나친 개인주의에 약간의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근무할 때 정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참 좋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공부하면서 어렵지 않았나.

“한국어가 제일 어려웠다. 한국에서 제법 한국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에 편입해보니 수업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노트를 빌려줘 하숙집에서 밤새 공부한 기억이 난다. 그래서 외국 사람이 한국학을 공부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안다.”

UCLA에서 한국학은 언제 시작했나.

“1989년 한국문명사를 개설했다. 1학년 대상 강좌였는데 25명이 신청했다. 그땐 대부분 한인 학생이었다. 지금 그 강의를 개설하면 200~250명이 듣는데 비(非)한국계 학생이 70% 정도 된다. 그만큼 한국학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중국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사에 대한 관심도 느는 데 비해 일본사에 대한 관심은 줄고 있다. 한국사는 꾸준하다.”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꾸준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

“20년 전에는 한국학이 일본학과 경쟁했으나 이제는 중국학과 경쟁한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고 정치민주화, 힙합, 한류 등의 영향으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 이후 잠시 주춤하다 2000년대 들어 다시 학생이 몰려들고 있다. 이럴 때 한국 정부가 중남미 등 해외 한국학 연구지원을 늘리고 한국학을 연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빅 코리아’ ‘리틀 차이나’ ‘리틀 저팬’이라고 말한다. 한국학 전공 대학원생이 제일 많기 때문이다.”

UCLA에서 던컨 교수가 길러낸 박사는 30여 명. 1994년 처음 박사를 배출했는데 대부분 미국과 한국 대학 교수가 되거나 연구기관에서 활동한다.

수업을 들어보니 중남미 학생도 한국학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중남미는 한국을 국가모델로 생각한다. 경제발전과 민주화, 한류에 대한 관심이 크다. 중남미 대학에서 강의 요청도 잇따른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한 고위관계자가 UCLA에 와서 ‘한국에서는 시차 때문에 e스쿨 강의가 어렵지만 UCLA에서 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하기에 한 번 해보자고 나선 거다. 남미에는 주로 외교학, 경제학 교수가 많은데 한국역사나 인문학 전공 교수는 거의 없다. 우리는 각 대학에 한국학 강좌를 제공하고 그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한국학 전공자를 양성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르게 하는 게 목표다. 멕시코 한 대학에는 한국학 대학원 과정이 생겼고, 브라질 상파울루대 학부에서는 한국학 전공을 인가받았다. 아르헨티나에도 한국학회가 생기는 등 활발히 성장하고 있다.”

한류와 한국학은 상관관계가 있나.

“쉽게 말해 한국의 힙합, 드라마 등 한류에 대한 강좌를 개설하면 많은 학생이 강의를 들을 수 있고, 그중 일부는 한국학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사실 미국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고 현대자동차, 대우컴퓨터를 수입하면서 한국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60, 70년대 한인 이민자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한국학 강좌 개설 요청이 많았다.”

한국 정부의 지원은?

“비교적 많이 받았다. e스쿨 지원금과 한국국제교류재단 기금으로 장학금을 주지만, 최근 미국 내에서 주립대 재정지원이 줄고 있어 UCLA 한국학연구소에 대한 재정지원도 확 줄었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는 더 어렵다. 연구소가 학교로부터 받는 경비, 봉급 등은 과거 10만 달러 정도였지만 지금은 3만 달러로 줄었다.”

이에 대해 김세정 UCLA 한국학연구소 부소장은 “대학 지원은 줄고 등록금은 많이 오르니 대학원생 장학금 지원도 많이 줄었다”면서 “기금 200만 달러를 만들고 있는데 이 또한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던컨 소장은 김 부소장이 “12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고 말하자 “아이고, 많이도 해먹었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 대학과의 교류는 어떤가.

“좋은 지적이다.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대학원생을 서로 교환해 공동연구도 해야 하는데, 교환학생 수가 너무 적다. 주요 대학도 1~2명에 불과하다. 1만5000달러 정도 생활비를 줘야 하니 부담되는가 보다. 그 때문에 돈을 만들려고 한국학 교수들이 동냥하러 다니기 바쁘다. 크게 보고 적극 교류하면 좋겠다.”




주간동아 2013.08.12 900호 (p18~20)

LA=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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