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7

2013.07.22

“글쓰기에 완전 미친 나 다시 새 작품 구상한다니까 ”

‘정글만리’ 펴낸 작가 조정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07-22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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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에 완전 미친 나 다시 새 작품 구상한다니까 ”
    조정래 작가의 서재는 정갈했다. 말끔히 정돈된 책상 한쪽, 단단히 매듭을 묶은 종이 더미가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 지난 6개월간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정글만리’ 원고 3615장이다. 새하얀 한복 차림의 작가가 그 옆에 서자, 옷만큼 하얀 종이 탑이 가슴 높이까지 올라왔다.

    작가는 1월 10일부터 이 책상에 앉아 이야기를 빚었다. 거대한 중국 대륙을 무대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다섯 나라 비즈니스맨이 경제 전쟁을 벌이는 스토리다. 치열한 경쟁 속에 과거사를 둘러싼 국가 간 갈등이 끼어들고, 풋풋한 사랑도 피어오른다. 4월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연재한 이 소설은 7월 10일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까지 1200만 ‘뷰’를 기록했다. 탈고와 동시에 출간한 책은 선주문만 21만 권이 들어온 상태다. 작가는 이런 반응에 고무된 듯 보였다.

    “연재 시작하고 며칠 안 돼 미국에서 ‘잘 읽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며칠 지나니 중국에 사는 독자가 ‘중국 이야기를 여기서 읽으니 더욱 실감 난다’고 연락해오더군요. 최첨단 과학기술의 힘을 느꼈죠.”

    여전히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고, 휴대전화조차 사용하지 않는 그는 “이번 연재를 계기로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동안은 책의 방해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작품을 전파하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도 있겠더라”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대중의 응원을 받으며 그는 더욱 집필에 힘을 쏟았다. 두 번 몸살을 앓은 때와 설 연휴를 제외하면 하루도 쉬지 않고 원고지 수십 장씩 채워나갔다. 또박또박 적은 글씨와 구두점 하나까지, 그의 땀이 서리지 않은 게 없다.

    실시간 대중 응원 새로운 경험



    조정래 작가는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 감옥’에서 소설 집필을 ‘숨 막히는 노동’에 비유하며 “세상의 모든 노동은 치열한 것을 요구할 뿐 감상적 기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중략) 그 숨 막히는 노동을 견딜 자신이 없으면 작가 되기를 원치 마십시오”라고 했다. 지난 6개월도 그에겐 “스스로를 ‘글 감옥’에 가둔 시간”이다.

    “이걸 보면 알 거요.”

    작가가 1월 10일부터 하루하루 날짜를 적어 놓은 일정표를 꺼내 보이며 한 말이다. 집필을 시작하면서 그는 일력을 두 칸으로 나눠 위에는 매일 쓴 원고 양을 적고 아래엔 누계를 기록했다. 처음엔 하루 40장씩 늘어나던 원고가 4월 몸살 이후 20~30장으로 줄었다. 그렇게 원칙을 정한 뒤엔 탈고 때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늘 오전 여섯 시면 일어나 가벼운 운동을 하고 아침을 든 뒤 책상에 앉아 집필에만 몰두했다. 몸이 뻐근할 때면 서재에 선 채 보건체조를 했다. “하루에 여덟 번도 하고, 아홉 번도 하고, 열 번도 했다”고 할 만큼 꼬박 책상 앞에 머물렀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몰아쳤을까. 작가는 “미래 세대에 꼭 필요한 책을 쓴다는 사명감”이라고 했다.

    “1990년 ‘아리랑’을 쓰면서 중국에 현지 취재를 갔어요. 아직 우리와 수교도 맺기 전이죠. 그때 그곳에서 중국의 힘을 봤습니다.”

    ‘사회주의 붕괴 후 소련은 몰락했는데 왜 중국은 건재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의 눈에 중국 사회의 속살이 들어왔다. 정치적으로 일당 독재를 유지할 뿐, 나머지 분야에서는 세상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호두 하나에 용 수십 마리를 새겨 넣는 중국 사람들의 손재주와 넓고 깊은 인문학의 뿌리도 느껴졌다. 중국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이 막강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살아가는 우리가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에 목이 탔다.

    “그때 언젠가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분단 현실 때문에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적 상상력은 휴전선 이남을 벗어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그 범위를 넘어 우리 문학의 지평을 넓혀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귀국한 뒤부터 그는 중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소설 ‘태백산맥’을 집필하려고 ‘빨치산 전문가’가 됐던 그 열정 그대로, 이번엔 중국에 몰두했다. 1차 자료는 신문이었다.

    “이 수첩이 전부 90권이요.”

    수북한 수첩 더미를 가리키며 그가 한 말이다. 한 권 집어 펼쳐 보니 중국 기사 스크랩북이다. 각 장마다 중국 관련 신문 기사가 붙어 있고, 여백에는 그 내용을 읽으며 새롭게 배우고 느낀 점이 꼼꼼히 메모돼 있다. 정갈한 글씨가 원고지에 있는 필체 그대로다. 작가는 그렇게 아흔 권의 스크랩북을 만들며 동시에 중국 관련 책도 읽었다. ‘왜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없는가’ ‘대장정’ ‘중국민화집’ ‘중국통사’ 등 서가 한쪽을 가득 채운 다양한 분야의 책을 꺼내들자 책장 가득 붙어 있는 메모지가 또 눈에 띄었다. 역시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내용이나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적어둔 것이다.

    중국 관련 메모 수첩이 90권

    이렇게 공부한 뒤엔 현지 취재에 나섰다. 1990년 이후 지금까지 조정래 작가가 중국을 찾은 건 모두 여덟 번. 2011년엔 한 달 일정으로 ‘정글만리’의 주무대인 베이징, 상하이, 난징, 시안 등을 두루 둘러봤다. 그 내용도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다.

    “낮에는 쉴 틈 없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호텔에 앉아 하루 동안 보고 느낀 걸 차근차근 옮겨 적었어요.”

    작가가 펼쳐 보인 ‘취재수첩’에는 현지인들과 나눈 생생한 대화가 가득했다. ‘정글만리’에 등장하는 짝퉁시장을 찾아가 가게의 위치와 간판 모양까지 스케치해둔 페이지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해놓으면 글을 쓸 때 영상처럼 살아 움직인다”고 했다.

    집필 준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작가는 다음 단계로 자신이 만든 ‘중국 총정리’ 노트를 펼쳐 보였다. ‘대장정’ ‘문화혁명’ ‘일당독재’ 등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쇳말들을 본인의 언어로 풀이해놓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여기까지 하면 머릿속에 소설의 90%는 완성된 겁니다.”

    나머지 10%는 이야기 구상이다. 원고지 3000장이 넘는 장편소설의 얼개를 짜고, 등장인물 관계도와 줄거리 등까지 별도의 노트에 정리한 뒤 그는 비로소 책상 앞에 앉았다. 그게 지난 1월 10일이다.

    “이렇게 안 하면 누가 내 책을 읽겠어요.”

    배시시 웃는다. 느릿느릿 움직이고,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저 몸 어디에 이토록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는 걸까. 서재를 가득 채운 중국 관련 자료를 함께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소설 집필은 숨 막히는 노동”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런 작업실을 보고 소설 쓸 엄두를 낼 이가 몇이나 될까.

    “대학 문창과 교수들이 그런 얘기를 합디다. 학생들 데리고 ‘태백산맥 문학관’에 가면 다들 기가 질려서 ‘이렇게 해야 소설이 되는 거면 나는 글 안 쓸랍니다’ 한다고요. 나는 그게 참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열정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아야지. 안 되는 놈들은 빨리 포기하는 게 나아요.”

    “글쓰기에 완전 미친 나 다시 새 작품 구상한다니까 ”

    ‘정글만리’ 집필을 위해 준비한 기초 자료를 보여주는 조정래 작가. 그의 왼 팔 옆으로 3600여 장 분량의 ‘정글만리’ 원고가 보인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달리는 천리마

    그가 이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작가로서의 열정이 아직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정글만리’를 써놓고 책 서문에 “이제 세 권의 소설을 마친다. 다시 새 작품을 향해 새 길을 떠날 짐을 꾸려야겠다”고 적었다.

    또 새로운 이야기를 쓸 엄두가 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리랑’을 쓰면서 ‘정글만리’를 구상한 것처럼, 이번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다음 작품 생각을 했다. 장편 한 권짜리 두 가지, 세 권짜리 두 가지, 단편집 한 권, 산문집 한 권을 더 쓸 내용이 있다”고 했다. “두고 보라. 앞으로 10년 뒤 이걸 90% 달성할 것”이라고도 했다.

    “내가 미쳐버리는 것이요. 이 소설을 끝내고 다음 날 나도 모르게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책상에 놓았는데, 오매, 이것이 다음에 쓸 소설 자료야. 소름 끼쳐서 다시 치워버렸어요. 내가 그런 사람이요. 아주 미쳐 있어.”

    그를 ‘미치게 만드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고 배우는 기쁨, 그리고 자신의 글을 많은 이가 더불어 읽는 데서 오는 희열이다.

    “내 책을 동시대 사람들이 보고, 젊은이가 그 안에서 길을 찾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래서 그는 책을 쓰는 것 외엔 어떤 것도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무소속 안철수 후보 후원회장을 지내고, 최근 안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에 참여한 것도 “진실하고 세상에 빚진 것 없는 정치인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일뿐, 다른 뜻은 없다고 했다. 작가는 “그가 국민이 바라보고 평가하는 데서 어긋난다면 지금의 지지도 단호하게 끝낼 것”이라고 한다.

    조정래 작가의 바람은 평생 시대와 호흡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는 “괴테가 ‘작가는 80에도 소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면서 “나도 작품에서나, 일상에서나 나이 타령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늘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

    “천재는 끝없는 열정을 지닌 자, 무수하게 많은 책을 읽은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살아가며 늘 이 사실을 깨달아요. 최선을 다했음에도 부족함을 느끼고,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예술이 있습니다. 나는 항상 부족해요. 그래서 오만할 수도, 나태해질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리는 천리마. 조정래 작가가 자신에게 붙인 별명이다. “인생은 그렇게 내가 나를 타고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열정이 다음에 또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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