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7

2013.07.22

“오죽했으면…” 그들 절규를 듣자

탈남·재입북 시도 사연과 환경 공론화 작업 필요

  •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feelfree@ewha.ac.kr

    입력2013-07-22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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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죽했으면…” 그들 절규를 듣자

    북한 이탈주민의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기관 ‘하나원’에서 남한 정착 교육을 받는 새터민들.

    돌이켜보면 북한 이탈주민의 탈남이나 재입북 관련 소식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으로 떠돈 사실이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문가 사이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2012년 여름, 60대 여성 박정숙 씨가 북한 조선중앙TV 기자회견에 등장했을 때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몇 년간 살다 온 “남조선 사회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다”고 비난하는 장면을 접하면서, 순간적이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불쑥 치밀어 오른 게 필자만의 기억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날 북한 현실을 감안할 때, 무슨 이유에서든 일단 탈북했던 사람이 되돌아간 경우 험악한 표현을 동원해가며 남한은 비정한 사회라고 비난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아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돌아간 한 어머니의 애처로운 몸짓을 굳이 이해 못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주변에서 “그 사람은 도대체 왜 저렇게 한국 사회를 비난하느냐”고 힐난 섞인 질문을 할 때마다 필자가 “이미 되돌아갔으니 아들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답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반걸음만 떨어져 생각해보면 생각의 길은 달라진다. 위기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고 북한으로 돌아간 그 어머니는, 만일 대한민국 정부가 완벽에 가까운 북한 이탈주민 지원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했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주변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경제적 안정을 누릴 만한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면 재입북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감히 단언컨대 그 어머니는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완벽한 정착 조건을 누렸다 해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아들을 외면하지 못한 채 결국 재입북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 구성원 인식도 절실

    조선중앙TV는 박정숙 씨의 기자회견을 보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젊은 부부와 갓난아기를 동반한 부모가 등장해 남한이 얼마나 썩고 병든 사회인지, 북한 이탈주민을 얼마나 차별하는지 고발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수많은 언론매체와 전문가는 “우리 정부의 북한 이탈주민 지원정책을 수정하고 국민 전체가 이들을 더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정적 일자리 제공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어김없이 따라 나온다. 그러나 이제는 과연 이것으로 충분할지 되돌아볼 시점이 됐다.



    북한 이탈주민 지원정책을 논의하는 데 있어 비난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방식은 그 효용을 다했다고 본다. 이제는 한층 정교하고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먼저 탈남과 재입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사연과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 그들 관점에서 기록하고 공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추상적인 정책 분석에만 매달리는 전문가 중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를 토대로 담론을 생산하고 전파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나와야 한다. 그들 어깨 위에 놓인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한 첫 번째 수순이다.

    다음으로 북한 이탈주민은 손님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살아야 할 한국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식의 토대 위에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이탈주민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손님이라면 며칠 참다 떠나면 그뿐이지만, 이 땅의 주인이라면 자기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이탈주민 스스로 각인할 수 있도록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더불어 살아갈 사람으로서의 자세, 불가피한 경우에는 싫은 소리나 매서운 견책도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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