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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학 박사 1호 이동천의 ‘예술과 천기누설’

선문대박물관 소장 ‘묘작’ 오원 아닌 안중식 작품

필력 약하고 묘사력도 부족…장승업은 무섭게 치밀한 사실력의 대가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선문대박물관 소장 ‘묘작’ 오원 아닌 안중식 작품

선문대박물관 소장 ‘묘작’ 오원 아닌 안중식 작품

1 장승업 작품으로 위조된 안중식의 ‘묘작’. 2 장승업의 ‘산수영모 10첩 병풍’ 중 제4폭. 3 안중식이 1891년 그린 ‘황화금산’. 4 위조된 장승업 글씨와 안중식의 ‘묘작’ 원작.

요즘 ‘원자력발전소(원전) 부품 비리 및 가동 중단 사태’에 대한 전 국민의 우려가 깊다. 짝퉁 부품을 둘러싼 비리와 은폐가 문제다. “어느 한 곳 곪지 않은 곳이 없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원전은 소수의 ‘원전 마피아’가 수십 년 동안 폐쇄적으로 운영했고, 그들만의 끼리끼리 봐주기로 썩을 대로 썩어 이번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민 생명을 위협한다는 면에서 원전의 짝퉁 부품이나 짝퉁 미술품은 다르지 않다. 예부터 짝퉁 미술품을 구매해서 본 피해는 호랑이한테 물려 죽는 호환(虎患)에 비유됐다. 필자는 ‘주간동아’ 882호와 884호에서 미술사가인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사진을 조작해 졸렬한 가짜인 1000원권 뒷면 그림 ‘계상정거도’를 거듭 두둔한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문화재청과 한국미술사학계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한다. 전문가라고 불리는 소수의 사람이 권력화해 국민을 속이고 미술시장을 농락하고 있다.

미술품 감정은 제작 당시를 재구성해 마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가짜 고서화를 분류하고 본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짝퉁 부품은 당연히 전량 폐기해야 하지만, 가짜 고서화는 소모품이 아니기에 감정을 통해 원작가를 찾는 데 힘을 기울인다. 앞으로도 위조는 계속될 터이므로 가짜 중에서도 옛날에 잘 만들어놓은 것은 증거품으로 남겨 감정 학습에 활용해야 한다.

가짜 그림 가운데 순전히 가짜로 위조된 것 외에, 원작가가 창작한 작품을 위조자가 ‘돈’을 더 벌고자 그 작품을 오래된 시기의 작품 또는 유명한 대가의 작품으로 조작한 게 있다. 이때 원작가의 서명과 인장을 없애고 돈 되는 작가의 것을 새로 위조해 첨가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선문대박물관이 소장한 오원 장승업(1843~1897)의 ‘묘작’(그림1)은 장승업 작품이 아니라, 심전 안중식(1861~1919) 작품이다. 조선서화미술회에서 소림 조석진(1853~1920)과 안중식으로부터 그림을 배운 이당 김은호(1892~1979)는 “소림, 심전이 젊었을 때 그린 그림이 오늘날에도 오원 그림 행세를 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오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그림1’이 안중식의 그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힘을 주는 증언이다.



‘주간동아’ 890호에서 말했던 것처럼 장승업은 한자를 몰랐고 인장도 자주 잃어버렸다. 따라서 ‘그림1’ 속 글씨와 인장은 감정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오직 그림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림1’을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한 장승업의 ‘산수영모 10첩 병풍’ 중 제4폭(그림2) 또는 한양대박물관이 소장한 장승업의 ‘쌍압유희도’와 비교해보면 언뜻 비슷하나, 다른 필력과 화법이 보인다. 안중식은 장승업을 흉내 냈지만 필력도 약하고 묘사력도 부족했다. ‘그림1’을 성균관대박물관이 소장한 안중식의 1891년 그림 ‘황화금산’(그림3)과 비교하면, ‘그림1’은 안중식이 ‘그림3’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노련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면 ‘그림1’은 어떻게 그린 것일까. 위조자는 안중식 그림을 가져다가 장승업 작품이라고 글씨를 쓴 뒤 인장 ‘오원’과 ‘장승업인’을 날인했다(그림4). ‘그림1’은 글씨와 인장을 제외하면 안중식 작품이다.

선문대박물관 소장 ‘묘작’ 오원 아닌 안중식 작품

5 장승업의 가짜 ‘오동폐월도’. 6 개 그림 비교. 7 김용진이 그린 장승업의 가짜 ‘기명절지도’. 8 수선화 그림 비교. 9 난초 그림 비교.

안중식 그림 가져다 오원 인장 날인

위조자도 ‘그림1’과 같은 가짜에 속긴 마찬가지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장승업의 ‘오동폐월도’(그림5)는 ‘그림1’과 같은 가짜를 장승업의 것으로 잘못 안 위조자가 그 화법을 따라 만든 가짜다. ‘그림5’를 성균관대박물관이 소장한 안중식의 ‘오음폐월’과 비교하면, ‘그림5’는 장승업보다 안중식 화법을 비슷하게 베꼈다(그림6).

장승업의 묘사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1931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김용준(1904~67)은 동양화를 꽤나 우습게 알았다. 그는 장승업이 일자무식 화가라는 점에 호기심을 갖고 장승업 작품들을 보다가 동양화의 “필선과 필세에 대한 감상안을 갖지 못한 나로서도 오원 그림의 일격에 여지없이 고꾸라지고 말았다”고 했다. 그는 1939년 장승업의 ‘무섭게 치밀한 사실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필법은 규모가 웅대하며 대담, 솔직하거나 혹은 그 반면으로 고요한 선율을 듣는 듯 우미(優美)한 작품도 있다. (중략) 그때까지 기명(器皿)과 절지(折枝)는 별로 그리는 화가가 없었는데 조선 화계에 절지, 기완(器玩) 등 유(類)를 전문으로 보급해놓은 것도 오원이 비롯했다. 그가 절지, 기명 등의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그의 나이 사십 고개를 넘었을 때 고(故) 오경연 씨 댁에 자주 출입하게 됐던 게 인연이었다. 오씨 댁에는 중국으로부터 가져온 명가의 서화가 많았는데, 오원은 그중에서도 기명, 절지 등에 흥미를 갖고 깊이 연구했다. 그는 명가의 작품을 방모(倣摹)했을 뿐 아니라 깊이깊이 탐구하는 열은 실재한 물상(物象)에 응해 사형(寫形)하기를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그가 화단 앞에서 모란이나 작약 등을 열심히 사생했다는 것은 자주 듣는 이야기다.”

선문대박물관 소장 ‘묘작’ 오원 아닌 안중식 작품

10 민영익의 ‘노엽풍지도’.

장승업의 가짜 그림 중엔 유명 서화가가 만든 가짜도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장승업의 ‘기명절지도’(그림7)는 김용진(1882~1968)이 그리고 쓴 작품이다. 김용진은 ‘그림7’에서 “장승업 필치는 매우 맑고 고상해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지만, 그 운치의 고아함을 배워서는 얻지 못한다”고 했다. 김용진은 장승업 예술세계의 가치를 분명히 알고 그를 우상으로 흠모했다.

‘그림7’의 수선화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장승업의 ‘백물도’, 김용진이 1930년 그린 ‘화훼’, 김용진이 1960년 그린 ‘화훼’ 등과 비교하면 ‘그림7’은 김용진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그림8). ‘그림7’ 속 난초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장승업의 ‘백물도’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김용진의 ‘지란’과 비교하면 ‘그림7’은 김용진 작품이다(그림9). 김용진은 민영익(1860~1914)의 난초를 배웠는데, 예전엔 그가 소장했지만 지금은 서울 한남동 리움이 소장한 민영익의 ‘노엽풍지도’(그림10)를 보면 알 수 있다.



주간동아 2013.06.10 891호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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