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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인생

‘나에게 불리하게, 상대를 이롭게’

골프 룰 탄생 배경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나에게 불리하게, 상대를 이롭게’

골프 룰과 관련해 가끔 시비가 붙는다. 이게 옳네, 저게 옳네 하면서 캐디에게 심판을 봐달라고 하고, 아니면 얼굴 붉히며 한바탕 입씨름을 한다. 한 타에 1만 원짜리 내기를 하면 룰 자체를 가지고 시비가 붙기도 한다. 한 푼이라도 잃지 않으려고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판정을 기대하는 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보기플레이어 시절 어떤 친구가 러프에 들어간 공을 치려고 연습스윙을 하면서 주변의 키 큰 잡초들을 다 쓰러뜨렸다. 보통 연습스윙은 두세 번 하는데, 이 녀석은 열 번 넘게 연습스윙하면서 인근 잡초를 아이언으로 다 쓸어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제거해놓으니, 일견 치기가 쉬운 듯도 했다.

이 상황을 두고 시비가 붙었다. 벌타를 받아야 한다. 아니다, 무벌타다. 캐디에게 물어보니 할 말이 없단다. 자연훼손이므로 당연히 벌타다. 아니다. 그럼 연습스윙하면서 디보트 낸 것도 자연훼손 아니냐. 설왕설래하다 프로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아는 프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단한 대답이 돌아온다. 당연히 벌타 받아야죠. 하지만 룰 가운데 최고 룰은 합의 룰입니다. 그 아래가 로컬 룰이고 그 밑이 시합 룰이에요. 공식 경쟁이 아닌 아마추어 간 시합에서는 합의 룰을 적용하세요. 그래서 내가 간단하게 정의했다. 합의한다. 무벌타다! 단 다음부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벌타 두 개다. 규정대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자연을 훼손한 경우 벌타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그래서 그 상황은 넘겼지만 뭔가 찜찜했다. 룰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봤다.

1744년 스코틀랜드 리스라는 고장에서 사상 최초로 골프클럽 조직 ‘오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The Hono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가 탄생했다. 그와 동시에 골프 룰 13개항이 제정됐으나 현재 내용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그후 1754년 영국 세인트앤드루스에서 문을 연 골프클럽이 1834년 윌리엄 4세로부터 ‘Royal · Ancient’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영국왕립골프협회(The Royal ·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R·A)로 발족해 영국 골프클럽 조직과 룰을 총괄하는 권한을 갖게 됐다.

홀 수도 제각각이었다가 1764년에야 22홀로 정해졌다. 골프 성지인 세인트앤드루스 코스도 22홀로 구성돼 있었다. 현재와 같은 18홀 경기는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난 1858년에야 비로소 시작됐다. 당시 룰을 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은 인간과 자연의 합일, 젠틀맨의 요건 등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 그리고 젠틀맨

1800년대 중반부터 골프는 룰대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 골프의 총본산은 R·A로, PGA(미국 프로골프협회)와 협의해 4년마다 룰을 개정하고 이 룰을 둘러싼 의문이나 문제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룰이 제정되면서 골프는 단순한 놀이 차원을 넘어 예의와 체력, 자연과의 투쟁으로부터 인생을 배우는 젠틀맨의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됐다. 현재의 골프 룰은 34개 조항이 근간을 이룬다.

사람 사는 세상의 룰은 도덕에 기초한다. 이를 압축한 것이 법이다. 법에 따라 세상살이 틀이 정해지며 이것이 기초가 돼 규정, 조례 등으로 불리는 단체 법이 운영된다. 자그마한 시비의 원인도 도덕이다. 도덕은 천도지덕(天道地德)의 준말이다. 하늘의 길을 도라 하고 땅의 후덕함을 덕이라 하는 바, 결국 자연 이치대로 살아가라는 것이 도덕이요 법이다.

자연은 또 무엇인가. 명사로서의 자연은 사람 외의 대상을 뜻하지만, 철학적 의미로 따져보면 ‘스스로 그러한 상태’를 뜻한다. 즉 자신을 드러내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들꽃도 자신을 드러내려 피며 물도 자신을 나타내려 흐른다. 바람과 구름과 비도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작용한다. 태양은 빛나고 달빛은 반사한다. 동물은 먹이를 잡고 잠자고 교미한다. 인간도 이 범주에서 보면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자연 법칙을 따르는 존재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모든 룰은 이 자연 상태를 온전하게 유지하려고 온갖 의미를 갖다 붙인 것이다. 문화라는 것도 그렇다.

이러한 의미에서 골프 룰을 음미해보자. 34개 조항으로 구성됐다고는 하지만 단 하나의 의미만 제대로 새기면 구태여 다 공부할 필요가 없다. 자연 상태, 있는 그대로가 규칙이다. 자신을 드러내되 욕심을 내지 말라는 뜻만 제대로 이해하면 별도로 규칙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를 한 꺼풀만 더 벗겨보자. 하나의 기본 틀이 있으면 이를 세분화한 룰은 셋으로 나타낸다. 하나의 틀이 세 개의 룰로 이해되는 것이다. 삼일신고(三一神誥)! 우리 조상의 철학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 있는 그대로가 하나의 틀이라면 여기서 두 개가 불거져 나온다. ‘나에게 불리하게, 상대를 이롭게’가 그것이다.

나에게 불리하게 적용하라는 것은 남에게 이롭게 적용하라는 뜻과 같다. 여기서 남이란 동반자뿐 아니라 모든 자연 상태를 이른다. 이유 없이 나무 꺾지 말고 물 훼손하지 말고 잔디 파지 말라는 것이다. 내 공이 치기 어려운 자리에 있다고 주변을 고르고 수정하면 당연히 벌타가 부여된다. 인공적인 수정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동반자끼리 합의한 사항도 이 범주를 벗어나면 합의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남을 이롭게’가 어려운가. 나는 아주 쉽다.

남을 이롭게 배려하라는 것은 동반자가 잘 칠 수 있게 도와주라는 얘기다. 살벌한 인간세상, 경쟁과 투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경쟁이 아닌 서로 도움을 주는 골프를 하라는 것이다. 동반자가 샷을 할 때는 소리와 움직임도 그쳐야 한다. 아울러 미스샷이 나오면 같이 안타까워하고,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멀리건을 주는 것도 한 방편이다. 실수한 스윙은 빨리 잊어버리라고 격려하는 배려. 이것이 남을 잘되게 하면 내가 잘된다는 비결이다.

아무리 모호한 상황이라도 이 기준만 적용하면 다 해결된다. 예를 들어보자. 벙커 고무래에 공이 걸렸다. 고무래를 치우자 공이 굴러 벙커에 빠졌다. 이런 경우 원래 자리에 놓아야 하나, 아니면 벙커에서 쳐야 하나. 이 중 나에게 불리한 상황이 어느 것인지를 적용하면 쉽게 판정할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친구의 러프 풀 깎기도 이 기준에서 보면 당연히 벌타 대상이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인공적인 수정을 가했으니 그 자체가 도덕에 위배되는 것이다. 어프로치하다가 스윙 한 번에 공이 두 번 맞았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공이 와서 맞았는가. 무벌타다.

같이 사는 세상 반드시 필요한 룰

이 룰을 인생에 대입해보자. ‘있는 그대로, 남을 배려하고, 나에게 불리하게.’ 이 세 가지만 준수한다면 삶이 팍팍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단체나 조직, 국가라 해도 이 룰만 준수한다고 가정해보라.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 즉 환경이나 성문제, 노인문제, 경제문제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골프 룰을 상기하고 환경에 접근하면 인공적인 제재도 필요 없다. 성문제? 있는 그대로 접근해보자. 난 네가 싫은데 넌 내 몸만 보고 덤비느냐. 나에게 불리한 상태로! 덤벼드는 놈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태지만 당하는 나는 인공적으로 불리한 상태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태로 덤비는 친구에게는 2벌타를 부여해야 한다. 그래도 같이 사는 세상인 만큼 함께 라운딩하는 정신으로 징역살이라는 벌타를 베풀어주는 것이다. 많이 가진 자가 없는 놈 것을 빼앗아 먹는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아닌 인공적인 수정 상태다. 2벌타에 추후 골프장 출입금지까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한 뿌리에서 나온 다른 열매다. 그 어떤 미물도 하늘의 다른 분신이다. 좀 고급스럽게 표현하면 빛의 원질에서 다양한 색깔이 나오고 그 색의 조합이 만물을 다르게 나타내는 것이다. 빛의 삼원색만 알면 다 아는 이론을 우리는 왜 잊고 사는가. 우리는 다른 존재가 나의 또 다른 분신이란 사실을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나’라는 단어에 네모를 붙이면 ‘남’이 된다. 그 네모가 나를 닫아버린 것이니, 모든 갈등과 투쟁이 여기서 나온다. 나를 여는 세 가지 방법이 골프 룰과 직통한다. 있는 그대로, 남을 배려하고, 나에게 불리하게 하라.



주간동아 2013.06.03 890호 (p54~55)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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