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6

2013.05.06

‘신포괄수가제’ 다 너 때문이야?

공공병원 위기의 주범 주장 잇따라…복지부 “경영 악화 원인은 난센스”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13-05-06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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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포괄수가제’ 다 너 때문이야?

    2012년 9월 13일 오후 서울역 앞 광장에서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국민건강 위협하는 의료악법 규탄대회’에서 포괄수가제 전면 재검토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진주의료원 사태가 4월 23일 이뤄진 ‘폐업 발표 한 달 유보’ 결정으로 일시 소강상태다. 경남도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간부의 도청 신관 철탑 농성을 해제하는 조건으로 폐업 유보에 일단 합의했다. 하지만 전원(轉院) 환자의 잇단 사망과 경남도의 노조 비방 전단 대량 배포를 둘러싼 도(道)와 노조 간 날선 공방, 의료원 정상화를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 통과 등에서 보듯 여진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원가에 못 미치는 낮은 의료수가가 공공병원 위기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복지부)가 공공의료기관에 한해 시범사업으로 실시 중인 신포괄수가제가 경영난 악화의 핵심 원인이라는 것. 실제로 4월 15일 충남천안의료원에서 열린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과 충남도 및 인천지역 소재 5개 지방의료원장의 간담회에서도 신포괄수가제가 공공병원 경영수지 악화를 불러온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09년 4월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을 대상으로 20개 질병군에 대한 1차 시범사업과 76개 질병군에 대한 2차 시범사업을 실시한 신포괄수가제는 지난해 7월 전국 지역거점 공공병원(34개 지방의료원과 5개 적십자병원)으로까지 확대돼 현재 553개 질병군에 적용 중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취지로 도입

    신포괄수가제는 입원환자에 대해 일정한 질병군에 따라 미리 정해진 포괄수가를 적용하는 제도. 7개 질병군(백내장수술, 편도수술, 맹장수술, 탈장수술, 치질수술, 제왕절개분만, 자궁수술)에 대해서만 시행 중인 기존 포괄수가제의 운영상 문제점을 개선해 전체 질병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게 한 새로운 건강보험 지불제도 모형으로, 복지부가 개발했다. 이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포괄수가제 하에선 환자에게 제공하는 진찰, 검사, 수술, 투약 같은 진료행위의 횟수와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한꺼번에 지급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횟수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행위별수가제가 진료 횟수가 늘수록 환자 비용 부담이 늘고 의사와 병·의원의 수입은 증가해 과잉진료를 부추겨온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포괄수가제를 도입했다. 이에 비해 신포괄수가제는 기존 포괄수가제에 행위별수가제와 일당정액제 등을 혼합한 형태다. 즉, 기본 진료는 포괄수가로 묶되 의사가 직접 시술한 일부 특정 진료비와 10만 원 이상의 고가 약제 및 치료재료엔 행위별수가를 적용해 별도로 보상하는 것이다.

    복지부는 신포괄수가제가 불필요한 진료행위와 환자 진료비 부담을 줄임으로써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정작 신포괄수가제를 실시 중인 공공의료 현장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가장 큰 불만은 신포괄수가제가 사실상 최소한의 진료를 강요하는 폐해를 낳아 환자에 대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이 접수한 공공병원 전공의들의 하소연이다.

    “관절이 세균에 감염된 화농성 관절염 환자가 왔다. 수술이 한 번으로 끝날지 여러 번 수술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신포괄수가제 하에서 수술비는 무조건 한 번만 인정된다. 의사가 신의 영역에 들어야 병원이 적자를 안 본다.”

    “피부가 찢어져 온 환자인데, 꿰매놓고 보니 만성신부전으로 다른 병원에서 혈액투석 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투석을 3회 시행했다. 투석 값을 받느냐, 피부 봉합 값을 받느냐 갈등이 심했다. 신포괄수가제에선 두 가지 질환에 대한 비용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투석 값만 받았는데, 피부 봉합은 공짜로 해준 게 돼버렸다. 그만큼 병원 적자가 누적된 셈이다.”

    입원환자에 대한 협진이 인정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의총이 접수한 또 다른 전공의 사례.

    “발목이 부러져 장기 입원한 환자인데, 고혈압과 당뇨 때문에 다른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병원에서 수술한 후 입원기간이 길어져 약이 떨어졌다. 환자는 당연히 의사인 내게 비슷한 성분의 약을 처방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신포괄수가제 하에선 이 환자가 발목골절 진단명으로 입원했기에 의사가 혈압약과 당뇨약을 처방할 길이 막혀 있다. 만일 처방하면 병원에서 다 물어내야 한다. 결국 환자에겐 ‘우리 병원 정형외과에 입원한 상태로 휠체어를 타고 예전 병원 내과로 가서 약을 처방받으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시범사업 평가 후 추후 적용 검토 중

    ‘신포괄수가제’ 다 너 때문이야?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이 최초로 시작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전의총 관계자는 “신포괄수가제의 폐해는 각종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어르신 환자가 유독 많은 정형외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며 “환자에게 최적이 아닌 최소의 진료만 해야 하므로 당연히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진다. 협진도 이뤄지지 않으니 입원환자가 퇴원한 후 외래로 가서 다시 진료를 받아야 해 환자 처지에서도 불편이 크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신포괄수가제가 공공병원 경영 악화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에 경영을 책임진 상당수 지방의료원장들도 동의한다. 김진호 충남홍성의료원장은 “아직 통계를 내보지 않아 신포괄수가제로 인한 경영 손실 발생 여부를 단언할 순 없지만, 꼭 필요한 검사마저 주저하는 등 의사들의 진료활동 위축에 일정 부분 보이지 않는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사실”이라며 “신포괄수가제 하에서 수익을 내려면 병상을 빨리 회전시켜야 하는데, 만성질환자와 장기 입원환자가 많은 공공병원 처지에선 그럴 수도 없으니 적절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은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이후 공공병원 손실이 더 커졌다면, 이는 거꾸로 해당 병원들이 그동안 불필요한 진료행위를 했다는 방증”이라며 “인센티브를 부여해 기존 행위별수가제보다 높은 수가를 책정해놓은 신포괄수가제의 특성상 이 제도는 과잉진료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신포괄수가제가 공공병원 경영에 부정적이라는 의료계 주장을 일축한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은 당초 공공병원들의 재정 안정 요청에 따라 실시한 것”이라며 “아직 실시한 지 채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아무런 구체적 데이터조차 없이 신포괄수가제가 경영 악화의 한 원인이라 주장하는 건 난센스”라고 답했다. 이어 “국비와 도비 등을 통해 갖가지 예산을 지원받는 공공병원이 최소 진료와 협진 문제를 운위하면서 일부 사례만 들어 신포괄수가제 전체가 불합리하다고 오도하는 건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일방적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현재 실시 중인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 결과에 따라 추후 공공병원에 대해 신포괄수가제를 당연적용할 것을 검토 중이다. 진주의료원 사태로 공공의료기관의 구실과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한창인 지금, ‘공공’과 ‘경영’의 가치 충돌은 이렇듯 한껏 정점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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