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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죽음 맞이

너와 나 모두를 위한 ‘웰다잉’

아름다운 마무리 ‘죽음 교육’ 없이는 ‘웰빙’도 없어

  • 최철주·웰다잉 칼럼니스트

너와 나 모두를 위한 ‘웰다잉’

너와 나 모두를 위한 ‘웰다잉’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죽음을 다룬 영화나 연극 혹은 드라마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죽음이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 죽음을 무심코 지나쳐 왔다. 그게 그렇게도 중요한 문제였던가 하고 느끼게 되는 건 어느 날 정색하고 들여다본 삶의 현장에서다. 문화와 예술은 다양한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이야기하고 고뇌한다. 그래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죽음은 언제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언제나 가슴을 저리게 하는 죽음

최근 몇 달 동안 계속 상영되는 프랑스 영화 ‘아무르(Amour·사랑)’를 두 차례 관람하면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상영이 끝난 후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관람객 표정이 너무 무거웠다. 온통 침묵에 빠졌다. 어떻게 이런 분위기가 빚어질 수 있을까. 소곤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퇴장이었다. 다른 곳에서 같은 영화를 본 후배 이야기를 들어봐도 분위기는 똑같았다. 영화가 관람객의 가슴에 던져준 메시지가 너무 강했던 탓일까. 아니면 새삼 ‘웰다잉(well-dying)’이라는 주제가 무거웠던 탓일까.

자연스러운 삶의 마무리에 고뇌하는 프랑스인의 사생관에 나는 주목했다. 프랑스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한국의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재작년 파리에서 타계했을 때 그의 죽음에 경외감을 갖게 됐다. 그는 고려시대 직지심체요절이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들어진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사실을 세계가 인정하도록 만들었고, 외규장각 도서의 한국 반환에도 앞장섰다. 그런 그가 파리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미 직장암 수술을 받았던 그는 현대 의학에서 더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는 시점에도 저술을 계속하며 죽음을 준비했다. 아주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호스피스 치료를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소박하고도 의미 있는 인생 마무리 작업이었다. 한국인이 미처 주목하지 못하는, 그러나 가슴 터질 듯한 결단이었다.

나는 또 한 사람의 아름다운 이별을 기억한다. 암 투병 중이던 미국의 유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턱까지 잃어 말도 못하고 음식조차 먹을 수 없는 상태에서 공식 석상에 나타나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던 모습을 2년 전 인터넷 동영상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 봤다. 그가 지난주 마지막 영화평을 인터넷 블로그에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도 성명까지 발표했다. 아름다운 이별은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웰다잉이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그것 자체가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 또는 ‘의미있는 죽음’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 웰다잉은 삶의 여러 현장에서 끊임없이 나타난다. 아무리 불경기라 해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웰빙(well-being)을 찾는다. 그런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웰빙 테두리 안에서 웰다잉도 생각하게 되는 삶의 패턴을 우리는 밟고 있다. 4년 전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할머니에 대한 대법원의 존엄사 판결이 이런 사회 현상을 대변한다.

너와 나 모두를 위한 ‘웰다잉’

죽음준비학교 하늘소풍 준비교실 수료식.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환자의 삶에 보탬이 되느냐, 아니면 그의 인생을 더욱 힘들게 만드느냐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은 웰다잉에 관한 유권자의 이런 여론을 정책에 반영하고자 했다. 앞장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관련 법률을 제정하자거나 기존 법률을 고치자는 운동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삶의 질은 죽음의 질을 높여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는 뜻이다.

전국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 40여 곳을 찾는 말기 환자들은 노인이 대부분이지만, 곳에 따라서는 젊은 사람 또는 어린이도 섞여 있다. 암환자도 많지만 기타 질병에 걸린 사람도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통증완화 의료와 영적 도움을 받으며 삶을 마무리한다. 종합병원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서 치료받는 환자와는 처지가 다르다.

호스피스 환자 찾는 미국 초등생들

병동보다 자택에서 가정간호사 등의 도움을 받으며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말기 환자도 적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통증완화 의료를 선택하는 것이 마지막 삶을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을 통해 환자 자신의 이 같은 뜻을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경향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웰다잉 강사를 교육하는 현장에 가보면 80%가 50대 초·중반 여성이다. 그들은 말기 치료를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웰다잉을 안내하는 구실을 맡고 싶어 한다. 이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건강한 사람에게 웰다잉 교육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자고 호소하는 강사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들은 고달프고 외롭고 힘든 죽음이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사는 이웃을 돕고 싶어 하며, 웰다잉 도우미로 나서고자 한다. 오래전부터 웰다잉 강사를 육성해온 각당복지재단이 도우미 희망자로 늘 붐비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암 치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은 후 5년이 지난 생존자 100만 명 가운데 상당수가 암환자를 돕고 싶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웰다잉을 위한 도우미 구실을 하고 싶어서이다.

미국 뉴욕 호스피스센터에 가면 초등학생들이 말기 환자들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어린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은 환자의 말동무를 하면서 어른들의 옛 꿈을 듣고 인생을 배운다. 학교와 가정에서 어떻게 생활하면서 크는 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지도 알아차린다. 환자들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나눠주며 건강하게 살라고 당부한다. 어린이들은 이런 시간을 통해 삶과 죽음을 들여다보며 자란다. 그리고 봉사활동을 통해 웰빙과 웰다잉을 동시에 배운다. 살아 있는 교육이다.

우리나라는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교육에만 열중하기에 학교생활이 고달프다. 성적이 나쁘거나 왕따 등으로 자살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이유도 아직 죽음 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다 떠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도 어린이들에게 하나둘 가르쳐줘야 할 때가 됐다.



주간동아 886호 (p26~27)

최철주·웰다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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