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5

2013.04.29

“계약직…매순간 설움이 울컥”

반전 없는 직장생활 불안한 미래가 가장 큰 걱정

  • 정리·이윤진 객원기자 nestra@naver.com

    입력2013-04-29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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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약직…매순간 설움이 울컥”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드라마 ‘직장의 신’의 높은 인기와 더불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떻게 생활해나갈까.

    이런 궁금증을 풀려고 비정규직 노동자 3인을 모아 방담 자리를 마련했다. 20대 비정규직 대표인 장민경(29·여) 씨는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 과목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다. 미혼인 장씨는 “소개팅을 나가면 처음엔 교사라고 다들 좋아하다가도 ‘기간제’라는 딱지를 밝히면 표정이 굳는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30대 대표인 김지은(34·여) 씨는 계약직 경력만 12년째인 ‘베테랑 비정규직’ 북 디자이너다. 40대 대표인 조용민(42) 씨는 상장회사 및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20~30대를 보냈지만 “지금은 계약직으로 아슬아슬한 직장생활을 이어간다”는 자학적 멘트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거짓말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와 그들에 대한 대우가 같지는 않다. 하지만 방담에 참여한 이들은 정규직과는 크게 다른 근무조건과 처우에 대한 불만,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공통적으로 안고 있었다. “얼굴이 나가면 일터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한사코 사진촬영을 거부한 이들은 실명 공개엔 동의했다. 동명이인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지은(이하 김) : 우리 가운데 아마도 내가 가장 오랫동안 계약직 생활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23세부터 줄곧 계약직으로 일했으니 계약직 경력만 12년째다.



    장민경(이하 장) : 12년 동안 계속 계약직으로 일할 줄 예상했나.

    김 : 그럴 리가. 처음 들어간 출판사에서 인턴기간 3개월을 마친 후 계약직으로 채용됐다. 당시 상사가 일만 잘하면 계약기간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약속해 이를 철석같이 믿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니 정규직 얘기는 쏙 들어가고 계약해지를 들고나왔다. 그때의 배신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다. 내가 나간 후 대학을 갓 졸업한 초보 디자이너가 새롭게 계약직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감을 잡았다.

    조용민(이하 조) : 무슨 감?

    김 : 그 출판사에선 처음부터 정규직을 채용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월급을) 조금만 줘도 열심히 일할 머슴 같은 막내 디자이너가 필요했을 뿐이다.

    조 : 그다음 직장도 계약직이었나.

    김 : 그렇다. 두 번째 출판사에서도 계약직이었다. 정규직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대다수 출판사가 내거는 북 디자이너 채용조건이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장 : 김지은 씨는 ‘2년 후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꿈이라도 꿀 수 있었지만, 나 같은 기간제 교사는 그런 꿈도 꾸지 못한다. 나처럼 임용고시에 붙지 못한 기간제 교사는 운이 좋아 사립학교에 채용되지 않는 한 계속 기간제 교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조 : 두 사람 얘기를 들으니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인 듯하다. 10년 넘게 정규직으로 일했으니 말이다.

    김 : 그런데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이 된 데는 사연이 있을 것 같다.

    ‘가족’이 될 수 없는 계약직

    조 : 첫 직장은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코스닥 상장사가 된 정보기술(IT) 업체였는데, 내가 맡았던 사업부가 실적 부진으로 해체된 후 인사발령을 받지 못했다. 사원 신분이긴 하지만 소속이 없는 유령직원이 된 거다. 그 후 지인 소개로 중소기업에 입사했지만 회사 상황이 나빠지면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장 : 다시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 계약직 생활을 하게 됐나.

    조 : 솔직히 나 자신도 계약직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첫 직장을 그만둔 후 곧바로 두 번째 직장을 구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 있었는데, 막상 구직 시장에 나오니 그렇지 못하더라.

    김 : 역시 나이 때문인가.

    조 : 그렇다. 38세와 40세 사이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의 거리가 존재한다는 걸 그때 실감했다. 정규직을 뽑는 구인공고는 대부분 30대를 대상으로 했기에 계약직 외에 길이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내 월급만 바라보는 가족을 생각하면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장 : 정규직을 오래했으니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 것 같다. 가장 큰 차이는 뭔가.

    조 : 월급에서 차이가 나지만, 정규직이라도 회사에 따라 월급 차이가 난다. 두 번째 회사의 경우 정규직이었지만, 첫 번째 회사의 계약직이 받던 월급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직원들과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 정규직일 때는 회사 직원들과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경조사도 챙기고,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고…. 사이가 좋지 않은 상사와도 술자리에선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계약직이 되니 다른 직원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잘 지내긴 해도 친해지진 않는 그런 서먹함이 있다.

    김 : 맞다. 내 처지에선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계약직만 빼고 창립기념일 같은 회사 이벤트를 챙길 땐 정말 소외감이 든다. 한 번은 정규직과 언쟁을 벌였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그 직원 편만 들더라. 내 잘못이 아닌데도 무조건 정규직만 감싸고도는 모습을 보면서 소외를 느꼈다. 정규직의 실수를 내 실수로 바꿔치기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 직원은 인사고과에서 감점을 받지만 나는 그런 게 없으니 괜찮지 않느냐며 상사가 나서서 내 실수로 처리해버린 것이다.

    장 : 그런 경우 내놓고 싫은 소리를 할 수 없는 게 계약직의 비극이다.

    김 : 괜히 밉보였다간 계약연장이 안 되거나 계약기간 중에도 잘릴 수 있으니 싫어도 웃고 억울해도 웃어야 한다.

    장 : ‘직장의 신’을 보면 장규직(오지호 분) 팀장이 계약직 직원들에게 이름이 아닌 ‘언니’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 안 있어 떠날 계약직의 이름까지 외울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폭풍 공감’을 했다. 한 학기 동안 같은 교무실에 있어도 나이든 남자 교사 중에는 내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냥 ‘영어’라고 과목명을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학생 앞에서 그렇게 불리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무안하다.

    김 : 기간제 교사야말로 정규직 교사와 차이가 크지 않나.

    장 : 정규직 교사는 정규직이자 공무원이고, 임용고시를 통과한 ‘능력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물론 허물없이 잘 대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간제 교사를 한수 아래로 보는 시선이 있다.

    조 : 어떤 점이 그런가.

    장 : 기간제 교사의 본래 업무와 관계없는 잡무가 많이 주어진다. 정규직 교사가 해야 할 일인데 자기들은 일이 많으니 우리더러 하라는 식이다. 받는 월급이나 처우를 생각하면 그들이 기간제 교사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일해야 할 것 같은데, 월급이나 처우는 낮은데 일은 똑같이 해야 한다고 하니 억울하다 못해 화병이 날 지경이다.

    김 : 초등학생 조카에게 들어보니 학생들도 기간제 교사한테는 함부로 한다더라.

    장 : 아이들이나 학부모 중에선 ‘기간제 교사=임시직’이란 생각을 가진 경우가 꽤 있다. 수업 태도를 지적하거나 숙제를 안 해왔다고 야단치면 “선생님도 아니면서”라고 대들기도 한다.

    계약직이라도 일만 준다면…

    “계약직…매순간 설움이 울컥”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이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계약직으로 2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 가능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주위에서 그렇게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가 있느냐”고 묻자 세 사람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 : 나를 포함한 내 주위에선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조 : 마찬가지다.

    김 : 애초 2년 이상 계약직으로 일할 수 없게 계약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내 경우 5년 넘게 일한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에선 2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한 달간 프리랜서 계약을 하고, 그 한 달이 지나면 다시 계약하는 식으로 계약연장을 했다. 연속 계약이 아니므로 ‘2년 이상 재직’이라는 조건에 맞지 않아 정규직 전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장 :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학교에서 3년 동안 음악 과목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학기 중 3개월만 계약한다. 방학 중엔 월급이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계약기간이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로 11개월 동안만 일한다. 처음엔 무작정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기간제 교사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후회막급이다. 그래서 요즘은 영어학원이나 학습지 전문 출판사 등을 알아본다.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면 굳이 교사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김 : 잘 생각했다. 나도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 들어왔지만 요즘 많이 후회한다. 가장 큰 고민은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40세가 넘어서도 나와 계약해줄 회사가 있을지 자문했을 때 ‘있다’고 확답하기가 어렵다. 이 분야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니 차라리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조 : ‘직장의 신’을 보면서 ‘미스 김’ 캐릭터에 크게 공감했다. 좀 과장한 측면이 있긴 해도 직장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역시 실력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도 미리미리 어학공부를 하고, 자격증도 따놨더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얼마든지 일을 골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장 : 나도 그렇다. ‘미스 김’처럼 만능 직원은 될 수 없어도 내 능력이 닿는 한 실력을 닦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 만능 계약직이 돼서 정규직한테 큰소리도 한번 쳐보고….

    장 :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선 쉽지 않을 것 같다.

    조 : 정규직 자리를 거절하는 계약직(미스 김)이라니…. 사실 정규직으로 일할 땐 속편하게 계약기간에만 일하고 나머지 기간엔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 생활을 동경하긴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계약직이 돼보니 여유고 자유고 없더라. 계약기간이 끝난 후 다음 일을 잡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

    김 : 그러니까 드라마 아니겠나.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카타르시스. 비록 ‘미스 김’이 되진 못해도 ‘직장의 신’을 보는 동안만은 꼭 내가 ‘미스 김’이 된 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질 수 있어 좋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는 유쾌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유쾌 상쾌 돌직구 어록

    “저는 교회가 아니라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계약직…매순간 설움이 울컥”

    정규직 사원증과 비정규직 출입증.

    드라마 ‘직장의 신’의 인기엔 미스 김(김혜수 분), 장규직(오지호 분), 장주리(정유미 분), 무정한(이희준 분)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돌직구 명대사도 한몫한다. 가슴 뻥 뚫리는 통쾌함을 안겨주는 명대사를 모아봤다.

    “누구나 한때는 자기가 크리스마스트리인 줄 알 때가 있다. 하지만 곧 자기는 그 트리를 밝히는 수많은 전구 중 하나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하찮은 전구에도 급이 있다는 것을.”(계약직의 애환을 비유한 정주리의 내레이션)

    “점심시간입니다만.” “퇴근시간입니다만.”(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을 챙기는 미스 김의 일명 ‘다만’체 한마디)

    “싫으시면 그냥 정규직 직원 세 명을 쓰시면 됩니다. 하지만 그 세 명분의 월급이 아까우시면 그냥 저 하나만 쓰시면 됩니다. 그럼 3개월 동안 본전은 뽑고도 남으실 겁니다.”(계약을 꺼리던 장규직에게 한 미스 김의 대사. ‘정직원 1명분 월급=계약직 3명분 월급’이라는 통념을 뒤집는다)

    “나는 우리 집 허드렛일을 하러 온 뜨내기들한테 이름 부르는 것도 아까워.”

    “그러는 당신들은 그런 잡일 하나 못해 계약직들한테 기대서 기둥서방질입니까?”(계약직을 무시하는 장규직과 그런 그를 비꼬는 미스 김의 대화)

    “팀장님, 저는 교회가 아니라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회식에 ‘가족으로 참석할 것을’ 권하는 무정한에 대한 미스 김의 대사)

    “내가 직장 다닐 때 가장 듣기 좋은 네 마디가 뭔지 아나? ‘도장 찍자’? ‘계약하자’? 아니. ‘내일 보자’ 이 말이 가장 좋아. 안심이 되거든. 내일 또 볼 수 있다는 게….”(미스 김에게 무시당한 장규직이 무정한에게 한 하소연)

    “어쩌면 다음 달도 내 통장 잔고는 똑같겠지만 그래도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월급이라는 기대가 있어 오늘도 하루 더 버틸 수 있다.”(월급날을 앞둔 정주리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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