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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한국 경제 뒤뚱뒤뚱 ‘장기불황 초기 단계’ 의구심

정부, 성장률 전망치 낮춰…구조적 내수 부진 차단하고 경기부양 서둘러야

  •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moonjong.huh@woorifg.com

한국 경제 뒤뚱뒤뚱 ‘장기불황 초기 단계’ 의구심

한국 경제 뒤뚱뒤뚱 ‘장기불황 초기 단계’ 의구심

4월 13일 디폴트 상태에 빠져 공사가 중단된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용지.

한국 경제의 장기불황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새 정부는 3월 말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3%로 대폭 낮췄다. 그만큼 최근 경기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증거다. 정부가 전망하는 올해 경제성장률 2.3%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 경제는 2011년(3.7%)과 2012년(2.0%)에 이어 3년 연속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이 이어지게 된다. 더욱이 내년에도 경기가 빠른 회복세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의 초기 단계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내년 빠른 경기회복세 장담 못 해

흔히 일본식 장기불황은 버블 붕괴 이후 성장률이 1% 내외에서 유지되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10년 이상 지속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진행된 엔화 절상 추세는 일본 경제의 급격한 위축을 낳았고, 경기 방어를 위한 공격적 금리 인하는 자산시장의 버블을 심화했다. 이후 일본 정책당국은 자산버블을 차단하려고 다시 금리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자산시장 버블이 붕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부동산시장의 위축은 금융 부문 부실 확산과 함께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게 된다. 민간 부문의 수요 위축을 막으려고 일본 정부는 공격적으로 재정지출을 단행했는데, 이는 1990년대 이후 진행된 일본의 인구고령화에 따른 재정수요 증가와 함께 정부재정 악화를 가속화한 요인이 됐다.

최근 한국 경제도 부동산값 하락과 함께 내수 부진이 심화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인구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돼 일본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점에도 한국 경제가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되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산시장의 버블 형성과 붕괴가 급격히 진행된 일본과는 상황이 다른 데다, 금융기관 부실이 실물경제로 전이될 개연성 측면이나 정부의 정책 대응과 재정건전성 면에서 일본보다 양호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갈 확률은 현재로선 낮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글로벌 경기 회복 지연에 따른 수출 둔화 등 대외 부문 충격이 심화하는 가운데 구조적 요인에 의해 내수 부진도 장기화하고 있어 성장률 2~3%대의 저성장이 지속되는 한국식 장기불황이 현실화할 개연성은 점차 커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계부채와 인구고령화 문제가 1990년대 일본보다 더 심각해 일본과는 또 다른 형태의 불황이 진행될 개연성마저 엿보인다.



외환위기 후 내수 성장견인력 타격

한국 경제 뒤뚱뒤뚱 ‘장기불황 초기 단계’ 의구심
구조적인 내수 부진은 사실 최근 몇 년간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결정적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라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성장기여도가 급속도로 약화하면서 전체적인 내수의 성장견인력이 타격을 받았다.

특히 고용불안은 소비 부진을 야기한 직접적 요인이 됐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내 구조조정이 상시화하고, 임시·일용직 취업자 비중도 크게 늘면서 고용시장 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러한 고용 불안은 실질소득 증가율을 크게 둔화시켰고, 그에 따라 소비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래의 소득이 불안하다면 현재의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는 또한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핵심 소비계층인 중산층이 감소한 반면, 소비 여력이 약한 빈곤층이 증가하면서 국민 경제 전체적으로 소비여력이 약화했다. 1990~2011년 우리나라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 비중은 73.7%에서 63.8%로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빈곤층은 7.8%에서 15.0%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소비 외의 지출, 즉 비소비지출이 과거보다 늘어난 것도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계신용)는 2003~2011년 연평균 7.8%씩 증가한 반면, 가계(개인) 가처분소득은 5.7%씩 증가하는 데 그쳤다. 즉 소득보다 부채가 더 빠른 속도로 늘면서 빚을 갚느라 소비를 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세금이나 연금, 사회보험 등의 공적 비소비지출이 증가하는 것도 소비 여력을 약화시킨다. 1990년 가처분소득에서 그 비중이 5%에 불과하던 공적 비소비지출 항목은 2011년 기준 10.8%까지 상승했다. 앞으로 인구고령화 등으로 복지 지출이 늘어날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설비투자 증가율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락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보수 및 안정 중심의 경영전략을 추구하면서 장기적인 설비투자를 기피하는데, 기업들의 과다한 현금 보유는 투자 부진과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 저하를 초래한다. 1990년대 평균 303%에 달하던 제조업체의 부채비율은 2011년 기준 109%까지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자기자본비율은 25%에서 48%까지 상승했다. 기업들이 투자보다 재무건전성 관리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의 해외투자 증가는 국내투자에 대한 구축(驅逐)효과를 낳았다. 즉 해외투자를 늘리면서 오히려 국내투자가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기업들은 글로벌화와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 동남아 같은 저임금 지역으로 생산기반을 확대했는데, 2000~2011년 내국인의 해외직접투자가 53억 달러에서 258억 달러로 5배가량 증가한 반면, 외국인의 국내직접투자는 2000년대 들어 하락 내지 정체되는 추세를 보인다.

국내 건설투자의 부진은 국내외 경제 및 부동산경기 둔화라는 경기적 요인에서 비롯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내 건설업이 이미 성숙단계에 이르렀다는 견해에도 힘이 실린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주택 수÷가구 수)은 2008년 이미 100%를 넘어섰고, 2011년 현재 102.3%를 기록 중이다. 반면, 가구증가율은 2000년대 중반 이후 1.5~2.0% 수준에 그치고 있다. 향후 인구 증가 둔화로 우리나라 가구증가율은 이보다 더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면 주택수요가 추세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 같은 굵직한 건설투자가 마무리되고 도로 포장률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른 점 등을 고려한다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도 점진적인 감축이 예상된다.

이처럼 건설수요가 점차 하락세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1999년 이후 건설업 허가제의 등록제 전환 등 규제 완화는 건설업의 경쟁 심화와 건설 부문의 과잉투자로 이어져 건설업 전반에 극심한 어려움을 야기한 원인이 됐다. 특히 2000년대 중반 건설사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과도한 건설투자는 부동산경기가 침체하면서 중견 건설업체들의 부도와 함께 전반적인 건설투자 위축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용·물가 안정 가계부채 해결 필요

새 정부 출범 이후 쏟아지는 정책은 한국 경제가 구조적 부진 요인을 탈피하지 못하고 장기불황이 현실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정부는 3월 말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하향조정하는 동시에 추경 편성 조기화,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4월 1일), 기업투자 활성화 대책(5월 중 예상) 등을 통해 경기부양책을 적극 시행할 것을 천명했다. 4·1 부동산 대책은 당초 예상보다 강도 높은 대책으로 평가되고, 발표된 추경 규모 역시 17조3000억 원으로 외환위기 당시 규모를 뛰어넘었다. 그만큼 최근 경기상황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회복이 가시화할 경우 수출 부진은 점차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내수 부진은 경기 및 일시적 요인 외에 구조적, 장기적 요인을 반영하는 만큼 쉽게 회복되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단기 부양책뿐 아니라 내수 부진으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점을 고려해 구조적 내수 부진 요인을 차단하기 위한 중·장기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식 장기불황은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을 경험한 데는 부적절하고 효과적이지 못한 정책 대응이 일조했다. 버블 형성과 붕괴 과정에서 초기 대응이 느렸으며, 1990년대 중반 경기가 반등하는 상황에서 재정건전화를 위해 소비세를 인상하는 등 성급한 출구전략을 단행하는 우(愚)를 범했다. 또한 적극적인 재정 확대가 필요한 시기에 통화정책에 치중해 유동성 함정에 효과적인 정책조합(policy mix)을 구사하지도 못했다. 금융기관 부실채권 처리와 기업 구조조정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해 경기침체를 장기화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 실패는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경험이다.

한국 경제가 장기불황을 피해가려면 구조적 내수 부진 요인을 차단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고용안정을 통한 미래 소득의 불확실성 해소,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통한 소비 여력의 회복, 물가안정을 통한 실질소득의 둔화 방지 등으로 소비 부진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한 설비투자 회복을 위해 정책의 일관성 유지와 투자환경의 불확실성 제거, 국내 투자환경 개선을 통한 해외투자 유입 촉진 대책이 필요하다. 건설투자 부진은 부동산경기 침체 외에 과잉경쟁에 따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건설업의 점진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건설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해 우량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과 함께 해외 진출 확대 등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재정 확대를 통한 적극적인 경기부양도 시급하다. 재정건전성을 일정 부분 희생하더라도 추경 편성 등 확장적 재정정책을 실시해 경제를 선순환으로 전환한 후 경기회복을 통해 세수를 늘리는 정책, 다시 말해 재정에 의한 경기회복의 마중물 구실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간동아 2013.04.29 885호 (p22~24)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moonjong.huh@woorif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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